[Opinion] 가버나움, 자기앞의 생 -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본 세상, 그 차가움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3.0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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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이라는 책을 주제로 4주간의 독서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한 지 2주째 즈음이었을 것이다. 우연하게도 영화 ‘가버나움’을 보게 되었는데 주인공 남자아이 특유의 (그 나이에 맞지 않는) 시니컬한 시선이 책 ‘자기 앞의 생’ 주인공 ‘모모’를 계속 떠올리게 했다. 영화가 끝난 후 지하철에 올라타 내용을 계속 곱씹어 보았다. 무엇이, 어떤 요소가 그 책과 이 영화를 자꾸 연결하는 것인지 정리하고 싶었다.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자기 앞의 생’을 읽다 ‘가버나움’을 접한 것은 정말 우연한 축복이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마치 소설 ‘자기 앞의 생’의 분위기가 영상화된다면 그것은 바로 ‘가버나움’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와 책은 신기하게도 여러 군데 닮아있다. 먼저, ‘가버나움’의 포스터를 보면 주인공 ‘자인’의 모습이 영화 속 분위기를 압축한 듯 보여준다.



[아트인사이트 기고용] 가버나움 포스터.jpg
 


'사는 게 개똥 같아요.'
 

실제로 이 영화의 주인공 ‘자인’을 포함하여 출연진들 모두 난민 출신이다. 12살 아이치고는 너무나도 사회에 찌든 모습으로 연기를 보여주는데 속된 말로 ‘이 세상 연기가 아닌’, ‘경험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것이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알아보니 역시나 실제 난민 출신 연기자였던 것이다. 줄거리를 간략히 말하자면 영화 ‘가버나움’은 제3국 난민 아이들 그리고 여성들이 제도 속에서 얼마나 방치되어 있는지 또한 얼마나 보호받지 못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난민 아이들의 생활을 주 서사로 풀어나간다. 즉, 형식적인 난민 구제 제도 속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을 주 내용으로 풀어나가는 영화이다.



[아트인사이트 기고용] 가버나움 스틸컷.jpg
 


주인공 ‘자인’은 아이를 돌볼 여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난민 가정의 맏아들 역할로 나온다. 고작 12살이, 부모님과 동등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혹은 그보다 더 궂은일을 도맡는다는 사실에 안쓰러움을 초반부터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그 경제활동들도 적법해 보이진 않는다. 단적인 예로, 뭔지 모를 가루약들을 약국에서 사와 수감자들에게 몰래 들여보내고 돈을 받는 경제 활동은 누가 들어도 어린아이가 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 처한 ‘자인’은 당연히 ‘애 어른’으로 자라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 초연하고, 비관적인 ‘자인’이지만 자신의 동생들을 위해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그 와중에 어린 여자아이들의 조혼 풍습이 만연한 사회에 어린 여동생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조혼으로 가정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모님과 부딪히며 12살 어린아이 ‘자인’은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최악의, 그러나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를 둔다.



[아트인사이트 기고용] 가버나움 스틸컷2.jpg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자기 앞의 생’ 주인공 14살 소년 ‘모모’도 ‘자인’과 닮은 점이 많다. ‘모모’ 또한 알 수 없는 부모님의 존재, 제3국 빈민가에서의 출생 등을 기반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냉소적이고 심지어 어른들을 비웃는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다.


‘모모’는 자신을 포함해 엄마가 없는 아이들과 자라며 엄마라는 존재에 굉장한 갈망이 있다. 자신을 키워준 로자 아주머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더 특별한 존재일 것이라며 상상하고 또 상상한다. 이때, 자신과 같이 자란 아이들의 엄마는 대부분 창녀, 성매매 여성들이다.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당시 제도에 따르면 창녀의 아이들은 경찰에 발견될 시 고아원으로 넘겨지고 엄마와 아이는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이의 출생신고도 못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들의 아이를 위조 서류에 능통한 로자 아주머니께 맡기고 일을 보러 떠난다. ‘모모’ 또한 자신의 엄마가 성매매 여성이겠거니 생각하며 언젠가 자신을 찾아와 주길 바란다.


책은 ‘모모’가 빈민가 주변 어른들과 그 세상을 바라보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서류로 등록되지 않아 몇 살인지도 모르는 ‘모모’의 출생 배경, 그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며 위조서류의 뒤에 숨어 버티는 ‘모모’와 아이들 그리고 빈민가 성매매 여성들, 세계대전직후 고통 받는 유태인과 아랍인들의 모습은 이 ‘모모’의 냉소적이고도 특유의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모모’가 가진 애 어른적인 성향과 14살 순수한 아이의 시선이 뒤섞이며 보는 이의 마음을 쿡쿡 찌르는 어록들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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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 할아버지는 매우 슬퍼 보였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슬플 대는 눈에 그것이 나타나는 법이니까.’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그걸 못하면 살아가는 데 지장이 많으니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어진다.’



빈민가 출생,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나 정작 약자들 (이 영화와 책에서는 주로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의 인생에 위협을 가하는 법적 제도들을 배경으로 탄생한 주인공 아이들 ‘모모’와 ‘자인’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성격이 상당 부분 겹쳐 보인다. ‘모모’는 자신과 자신을 키워준 로자 아줌마 그리고 빈민가 가족들에 대한 연민, 애증을 느끼며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인’은 빈민가, 난민 사회에서 여동생을 지키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과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몬 부모님 그리고 세상을 고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이 공통점이 바로 ‘가버나움’을 보면서 ‘자기 앞의 생’을 떠올리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책과 영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면 어떠한 상황들이 초래되는지, 또한 약자들을 보호할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명목상의 서류 절차로만 존재하게 되면 어떠한 불행을 초래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영화, 책 등 문화 매체를 통하여 사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약자들을 조명하는 것이 문화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순기능을 최대치로 보여주는 영화 ‘가버나움’ 과 책 ‘자기 앞의 생’을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공유하고 싶다.



[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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