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사람이란 결국 가면이 많은 사람일까? [기타]

글 입력 2019.03.0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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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좋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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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 한쪽에 있는 오래된 상자 안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받은 롤링페이퍼를 발견했다. 당시 중학교로 올라가기 전에 반 친구들 모두 원으로 빙 둘러앉아 종이를 돌려가며 서로에게 칭찬 한마디씩 써 내려가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삐뚤빼뚤한 글자로 가득 채워진 종이를 보며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을 그려보니, 13살의 꼬마 아이는 꽤 사회성 좋은 아이였던 것 같다. 종이 안에는 ‘착하다.’, ‘활발하다.’, ‘배려심이 많다.’는 등의 ‘좋은 말’이 빼곡했다. 아마 롤링페이퍼를 받고 나서 아이는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싶은 마음에 괜스레 씁쓸해진 마음으로 꼬깃꼬깃한 모양 그대로 롤링페이퍼를 내려놓고 말았다. 고이 접어 넣으려다, 어딘가 반듯하고 바른 것들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타적인 마음도 좋지만, 나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욕망과 순진함을 너무 일찍이 잃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둥글게 사는 것도 좋지만, 잘린 모난 부분을 잃진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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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윤종신 인스타그램


삐죽한 내 모양이

언젠가 아름다움일 줄 모르고

둥글어졌어 어디든 잘 굴러

누구든 가져다가 어디든 쓸 수 있어

이 세상은 다 좋아해

내가 날 깎아내 삐죽이 뚫고 나오면

잘려진 그 모조각

차곡히 모아 놓은 건

다 그 속에 있어 나란 건


- 윤종신, <모난돌> 일부



어쩌면 ‘보통의 삶’은 위 가사처럼 모난 부분을 조금씩 깎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둥글둥글 사회에서 잘 굴러가는 삶 말이다. 나는 솔직하고 욕심 많은 아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욕먹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이기적이고 못난 모습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 십상이었고, 적당한 선을 지키며 어울려야 했다. 웃으면서 돌려 말하고 양보할 줄 아는 잘 다듬어진 나를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렇게 학교에서도 다른 집단에서도 그런대로 잘 적응할 수 있었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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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한 욕망을 적절히 표출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대신 숨기고 억누르는 습관을 들여온 그동안의 삶에 의문이 들곤 한다. ‘좋은 사람이란 결국 가면이 많은 사람 아닐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노래는 우리네 가면 쓰인 보통 삶을 쉽게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둥그러지는 건 당연하다며, 내 의지의 영역은 벗어난 문제라고 다독인다. 다만 나만의 모조각을 버리지 말고 차곡차곡 모아두는 편이 최소한의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씀, 가면 속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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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수록 「특별한 일」 일부



그리고 여기, 언어를 ‘씀’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모난 자신을 지키는 시인이 있다. 시를 통해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고,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그저 느끼는 그대로의 삶을 기록한다.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것. 와중에 느끼는 외로움을 그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 시인은 시 곳곳에서 오랫동안 곱씹은 그간의 신념을 드러낸다. 과연 외롭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을까. 저마다의 외로움을 간직한 채 최선을 다하는 이들 덕분에 결국 세상은 돌아간다. 세상살이의 모난 조각일 수도 있는 외로움과 투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우리를 섣불리 위로하지 않고,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히 받아들인다. ‘삶은 원래 그런 것이야, 모두 아픈 구석을 간직하고 있어.’하고 말이다.




기록으로 자신을 보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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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노래 가사를 통해, 시인이 시를 통해 잘려나간 모난 조각 같은 마음을 읊조리듯, 저마다 자신의 모조각을 토해내고 보관할만한 곳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잡다한 생각과 감정을 꾹꾹 눌러 쓴 메모장이 바로 모난 조각을 보존하는 작은 공간이다. 모든 순간에 무엇이든 꾸준히 기록한다. 영화를 보든 글을 읽든 전시를 보든 유독 내 마음 깊숙이 박힌 문장과 작품은 일단 적고 본다. 쌓인 기록물을 들여다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어떤 삶을 그리고 있는지가 조금은 명확해진다. 밤마다 기록물을 찬찬히 훑어보는 습관도 실은 낮 동안 여러 사람을 마주하는 사이 조금 흐려졌을 자신을 되찾는 일종의 의식 같은 행위였는지도 모르겠다.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특권과도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데이터는 아주 극소수이기 때문에 어떤 우연이나 쓸데없는 것은 없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 문득 느끼는 감정은 수많은 데이터 중 추려진 것으로, 그냥 놓치고 흘러버리기에는 아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노래로, 누구는 언어로, 그림으로 혹은 사진으로 그 순간을 습관적으로 담아놓는다. 가장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는 건 마냥 둥글게 세상을 굴러다니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위치는 잊지 않아야하는 간절한 생존법과 다름없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가면으로 둘러싼 세상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만의 흔적을 남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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