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을 이야기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완벽한 사랑이란 존재하는걸까.
글 입력 2019.03.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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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선척적 또는 후천적으로 생긴 것일 수도 있으며 가시적이거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하나쯤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부족함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를 안정시켜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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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며 기준도 애매하다. 대상도 광범위하다. 대중가요에선 매일 같이 사랑을 노래한다. 다른 예술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드라마, 소설..., 사랑이 가장 빈번하게 예술 문화의 소재로 등장한다.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쉽게 공감하지만, 또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의심한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하고. 나 또한 그랬다. 사랑이 뭔지 몰랐다. 이런 나에게 사랑의 개념에 대해 명확히 알려준 작품이 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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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인공인 조제는 다리가 불편하다. 그녀는 평생을 집안과 유모차 안에서 살아왔다. 바깥 세상은 그녀에게 호랑이같이 무서운 존재이다. 그런 그녀에게 츠네오가 다가온다. 여러 사건들을 겪은 후에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간혹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장애를 극복한 로맨스 영화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적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이다. 그 외에 소재들은 스토리의 재미를 부여하기 위해 넣은 부가적인 장치일 뿐이다. 조제가 다리가 불편하지 않아도 아마 둘은 언젠가 만나 사랑했을 것이다.

 

조제의 원래 이름은 쿠미코다. 그녀는 스스로를 조제라 부른다. 조제는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이름이다. 그녀가 원래의 이름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제는 그렇게라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끔찍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아름다운 소설 속 인물로 살아가길 꿈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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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녀를 더욱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는 존재가 있다. 조제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남들이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아 볼까봐 새벽에 유모차에 태워 담요로 덮은 뒤 외출을 한다. 조제에게 “넌 불구야. 불구면 불구답게 주제를 알아야지.”라며 막말을 한다. 조제가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끊임없이 자각시키며 그녀를 심해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그녀의 상처는 덧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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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인 츠네오는 바람둥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하룻밤의 불장난이다. 진지한 만남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따듯한 ‘밥’이었다. 특별한 것이 아닌 자신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제가 이를 채워줬다. 츠네오는 조제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그녀를 알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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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개월 후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진다. 아주 담백하게. 조제는 츠네오에게 야한 잡지를 선물로 주고 츠네오는 조제 집에서 나온 뒤 바로 새로운 애인인 카나에를 만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이별은 어쩐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 같다. 츠네오는 결국 길 한복판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반면 조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하며 맛있는 요리도 해 먹는다. 이 점이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온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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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더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하고 또 상처받는다. 우리는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자신을 업고 다니던 츠네오를 더 힘들게 떠나보낼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조제는 츠네오와 헤어진 후 누군가 끌어줘야 움직일 수 있는 유모차가 아닌 전동휠체어를 타고 바깥 세상을 다닌다. 반면 츠네오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조제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사실 이런 아이러니는 영화 시작부터 계속됐다. 조제의 성격 때문이다. 조제는 까칠하며 엉뚱하다. 또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한다. 츠네오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틱틱대는 그녀를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장애인이라면 이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그녀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사랑에 있어서 장애는 큰 문제가 아이었으며 둘 사이에 갑을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 사람이 조제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해 헤어진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사랑이 식었기 때문’과 같은 보편적인 연인들의 문제점 때문일 것이라 예측한다. 또는 서로의 상처가 생각보다 너무 컸기에 만남이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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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런 것이다. 누가 더 우위에 있지 않다. 장애 같은 것은 사사로운 문제로 여겨진다. 가끔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조제의 상처를 부러워하며 “나도 너처럼 다리가 없었으면”이라고 말하는 카나에처럼 말이다. 어쩌면 사랑은 누군가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있던 시간을 통해 성장했다. 그녀는 더 이상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에 갇힌 호랑이가 그녀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완벽하지 않다. 개인을 안정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결국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제와 츠네오는 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조제의 이름을 따온 <한 달 후, 일 년 후>엔 이런 대목이 있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조제는 대답한다.


“나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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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조제가 이별에도 덤덤했던 까닭은 이미 그녀가 이 사랑의 끝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한 사랑이 없음을 알고 그가 떠난 후에 무너지지 않게 스스로 더 단단하게 만들어왔을 것이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꼽는 명대사가 하나 있다. 조제와 츠네오와 잠자리를 가진 후 하는 대화이다. 이 짧은 말 안에 조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겨있다. 조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랑을 만나 어떻게 변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가 말이다.

   


-눈 감아봐. 뭐가 보여?

-아무것도. 그냥 깜깜해.

-거기가 내가 살았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밑. 난 거기에서 헤엄쳐 나왔어.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바다 밑에서 살았구나.

-그 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딱히 외롭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신 거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야. 언젠가 네가 떠나고 나면, 길 잃은 조개 껍질처럼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하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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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김도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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