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썰썰] 내 안의 그놈

방 빼라, 외이도염!
글 입력 2019.03.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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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이도염에 걸리다. 음- 아니야. 아닌 것 같아. 가제로 지은 제목을 몇번이고 쓰고 지웠다. '독감에 걸리다', '바이러스에 걸리다', 'ㅇㅇ병에 걸리다'처럼 심각한 질병도 아니고 고작 '외이도염'이라니. 사소한 걸 부풀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치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유난 떠는 것 같잖아. 그래서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 지독한 녀석을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런지. 은유적인 표현이었으면 좋겠다. 그때 떠오른 영화 '내안의 그놈'. 그래, 이거야말로 녀석과 나의 관계에 제격이다.


# 내 안의 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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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등학생의 몸에 아저씨의 영혼이 들어왔다는 설정이지만 내 몸엔 사람이 아닌 염증이 들어왔다. 말하자면 긴 이 사건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 샤워 후에 귀 안 파니?"
"그게 뭔 소리야. 그러다 귀에 상처 나 엄마."
"아니 그래도. 귀는 정리해줘야지."

평소 습자지만큼 귀가 얇다는 소리를 듣던 나는 아니나 다를까 샤워를 마치고 면봉을 들었다. 아야. 귀를 파다 너무 시원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조금 쓰라려서 귀를 문질렀다. 귀에 물이 들어간 후 면봉으로 후비면 상처가 난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는데 그랬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인데 별일 없겠지, 시원하면 장땡이니까. 그렇게 넘겼다. 잠깐의 시원함과 3년의 고통이 바뀐 순간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며칠 뒤 귀가 살살 간지럽기 시작했다. 또 누가 내 얘기 하나보다. 우스갯소리를 하며 귀를 파는 빈도가 잦아졌다. 잠이 들기 전에는 귀가 가려워서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럴 땐 다시 면봉을 꺼내들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나도 모르게 귀를 파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진물이 흐르고 귓속이 땡땡 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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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너무 간지러워요. 세상 모든 질문에 답한다는 초록창 포털사이트에 여덟 글자를 검색했다. 간지러운 고통만큼 엔터키를 세게 치자 같은 글자들이 페이지를 넘어간다. 대한민국에 귀가 가려워 미치겠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중 '전문의'라는 태그가 유독 잘 보이는 답변이 달린 글을 클릭했다.


귀가 너무 간지러워서

면봉으로 귀를 팠더니

더 가렵고 따가워요ㅜㅜ



너도? 야 나도! 마치 내가 썼다 해도 믿을 정도로 증상이 똑같은 질문에 고개를 거세게 끄덕이며 스크롤을 내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진을 프로필로 내건 전문의가 답변을 달아 놓았다.


귓속 피부가 지나친 자극으로
상처가 생겨 염증이 난 겁니다.

흔히 '외이도염'이라고 말하지요.
귀에 손대지 마시고 속히
이비인후과에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작은 충격을 안고 그 길로 이비인후과에 갔다. 멋도 모르고 귀를 맡겼는데 꽤 시원하다. 왠지 오늘로 완치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모든 병원의 단골 멘트 "왜 이제야 오셨어요."는 "오늘부턴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어요. 환자분."으로 초월 번역했다. 그것이 외이도염과 내 악연의 시작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렇게 수년간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녀석은 정말 지독하다. 고작 염증 따위가 고집이 대단해서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찌나 영악하고 끈질긴지 밀당도 수준급이다. 나을 듯하다 다시 재발하고 또 나을듯하다 다시 미치게 가렵다. 게다가 재발할 때마다 몸집을 불리는데 얼마나 얄미운지. 녀석을 영원히 쫓아내려면 귀를 만지지도 물이 들어가서도 안 되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 가려우면 절로 손이 가는 법이요, 샤워를 할 때 물이 들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어폰, 귀마개, 헤드셋 같은 귀를 막는 도구는 잠깐도 사용할 수 없다. 제 영역을 막는 누구라도 녀석은 참지 않고 발악을 하니 말이다. 이어폰으로 음악에 취해있다가 귀가 가려워 현실로 돌아오는 건 생각보다 더 짜증 나는 일이다.

차라리 손에 닿지 않는 몸속 어딘가에 염증이 났다면 만지지라도 못할 텐데 떡하니 손이 자주 오가는 귓구멍이 가려우니 안 긁곤 못 배긴다. 오죽하면 손을 묶고 잘까 생각했다. 이맘때에 나는 간지러움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걸 뼛속까지 가렵게 깨달았다. 그리고 난 아직도 인간에게 최고의 고문은 간지러움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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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에 출석 도장을 찍은 지 2년이 지났다. 그새 옆 동네 병원까지 진출했지만 결국 나는 녀석에게 패배했다. 이깟 염증으로 병원을 다닐 힘과 시간도, 자투리 시간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냥 포기한 채 귀가 가려우면 긁었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실컷 들었다. 그러나 사실 병원을 끊은 진짜 이유는 혼이 날까 봐였다.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진전이 없는 나를 보며 의사들은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찼다. 안면을 트고 나서는 그만 좀 만지라며 짜증을 내더라. 소심하고 내향적인 나는 의사에게 혼이 나서, 무서워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주 미련하게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어폰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주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당황한 나는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어보았다. 건드리는 곳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아픔을 참고 귓구멍을 가늠해보았다. 엄지손가락이 꼭 맞던 곳은 이제 엄지는커녕 새끼손가락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좁아져 있었다. 염증과 부종의 콜라보였다. 그 다음날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눈물을 머금고 [외이도염 청력] 따위를 검색했다. 이번에도 하얀 가운을 입은 전문의가 답변을 달아 놓았다. 외이도염이 심각해지면 청력 손상이 올 수도 있다고. 아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 순간 밀려드는 상상 속의 나는 외이도염을 방치했다가 한쪽 귀를 잃은 비운의 장 모 씨로 뉴스를 탔다.

불치병 환자를 앞에 두고서 뜯어진 자신의 손가락 거스러미가 더 아픈 게 인간이랬나.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고작 외이도염 때문에 칭얼대는 내가 같잖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이만큼 괴로웠으니 알아달라 으스대는 건 아니다. 알다시피 외이도염은 생명에 지장이 없고 비교적 흔한 질병이기에 그럴 건덕지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외이도염 이 녀석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별거 아닌 조그만 염증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든단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면봉으로 쑤신 귓구멍이 3년째 나를 괴롭힐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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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귀에서 피를 보고 반년 만에 병원을 찾았다. 또 혼이 날까, 오늘은 뭐라고 쓴소리를 들을까. 그런 걱정에 전날부터 시름시름 앓은 것도 모자라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석에서도 심란했다. 특히 의사선생님을 마주한 의자에선 거세게 흔들리는 동공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겁먹은 것과는 달리 혼나지 않았다. 물론 귀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어렴풋이 인상을 쓴것 같지만. 아마 한소릴 하려다가 한껏 쭈그러든 내 어깨를 보았나 보다. 치료를 끝내고 병원을 나서는 길, 혼이 날까 두려워서 방치한 시간이 밀려왔다. 허무했다. 녀석에게 시달리는 것보다야 혼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녀석과 나의 지긋지긋한 악연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니 찍은 것 같다. 언제 심술궂은 녀석이 나의 안온한 일상에 침범할지 모르니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안에서 기생한 녀석은 제 분신들을 놓고 갔다. 자꾸만 귀를 만지는 버릇과 언제고 다시 가려울 것 같은 불안함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가끔 제 존재감을 찾는 환상통처럼 멀쩡한 귀가 가렵기도 하다. 마침 이 글을 쓰는 데도 귀가 가려워 온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사소한 질병이 생겼지만 내 일상을 뒤흔든 끔찍한 이 외이도염. 아- 녀석은 언제쯤 내게서 방을 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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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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