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들의 세상에 놓여진 아이들 [도서]

동화책 “만국기 소년”을 읽고
글 입력 2019.03.0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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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동화책이 이렇게 슬프고 잔잔한 여운을 남겨도 되는 건가? 내 머릿속에 동화책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인데 말이다. 만국기 소년 속 9편의 단편동화를 쭉 읽어보면 모두 한 아이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단순하게 학교숙제로 써내는 일기장이 아닌 어떠한 상황에서 들었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비밀일기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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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각각의 단편동화의 공통점은 아이가 주인공이다. 어른의 시각으로 비치는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아의 쟁반>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어른의 시각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1인칭 시점이다. <내 이름은 백석>에서 석이의 눈으로 아빠를 서술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말할 때 보면 아빠는 용머리 같다. 결코 닭대가리가 아니다.” 이 문장에서 닭집을 하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석이의 마음이 더욱더 잘 느껴졌다.


<만국기 소년>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주인공인 진수를 한 아이가 보는 시각으로 서술한다. 진수의 가족들이 사는 컨테이너 박스와 헌 옷을 입고 낮고 딱딱한 목소리로 나라와 수도를 외우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분위기가 한층 더 쓸쓸하고 무거워진다.

 



어른들의 세상에 놓여진 아이들


 

그리고 아이와 더불어 그 주변에는 어른들이 항상 등장한다. 아이와 어른들의 틈새가 존재하고, 그 때문에 작품들이 안타깝고 쓸쓸하게 끝을 맺는다. <선아의 쟁반>, <상장>을 읽으며 그러한 예상은 확실해졌다. 이 곳에 나오는 대부분의 어른은 아이를 자신들의 기대에 끼워 맞추거나 아이의 말을 무시한다. 도저히 그 나이대에 이해할 수 없고 답이 없는 현실들을 아이 앞에 죽 늘어놓기도 한다.


이 책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주인공이 어른들로 인해 감정을 억누른 채로 끝을 맺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또한 <만국기 소년>에서 진수의 표정을 차마 보지 못해 고개를 돌려 본 창밖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밝은 날이었다거나, <선아의 쟁반>에서 싸우는 할머니들과 대조되는 아름답고 순수한 마지막 장면, <상장>에서 “밤인데도 길은 환하고 내 이름은 크고 진하게도 박혀 있다.”라는 밝은 문장 등이 주인공의 무거운 마음과 대조되어 더욱더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엄마의 관심은 온통 싱크대에 있었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싱크대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엄마는 내 얼굴보다 싱크대 구멍을 더 오래 들여다봤다.



- <만국기 소년> p. 25




   

공감과 치유의 이야기


  

하지만 그렇지 않고 결말에 마음이 치유되는 작품도 있었다. <보리 방구 조수택>을 읽고 내 어릴 적을 회상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친구를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지고 눈길이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관했다. 윤희처럼 소문이 날까 봐. 주위 아이들 눈치를 보고 눈치껏 행동했다. 그럴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마지막 결말까지 다다르면서 공감과 치유가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좋은 작품이었다.

   


어디서 무얼 했음 좋겠냐고?


음..... 어디서 무얼 하든..... 그날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생각나더라도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그랬으면, 내 친구 수택이가 꼭 그랬으면 좋겠어.


- <보리 방구 조수택> p. 136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내 이름은 백석>이다. 백석의 아빠는 조금 다른 “어른”이었고,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따뜻함까지 마음속에 퍼졌다. 석이는 아빠에게 환하게 웃어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저 입을 다물고 시집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석이가 환하게 웃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환하게 웃어버리는 순간 진실한 마음을 따르지 않게 되는 거니까, 아니면 억지로 웃다가 울음을 터트려버릴 수도 있을까 봐 걱정이었다.


나는 이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석이에겐 아빠의 존재는 한 겹 더 커졌으며 석이 또한 한 겹 더 단단해졌을 것이고 이 이야기를 읽는 아이들 또한 마음의 한 겹이 더 넓어질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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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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