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해하고 싶은 연극 <하거도>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다.
글 입력 2019.03.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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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혼자 연극을 보러가다.



혼자 연극이라니. 두근두근!! 사실 혼자 영화를 본 적은 있어도 연극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혼자 문화생활하는 것에 왜 그렇게 티를 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름 연극에 대해 갖고 있는 애착이 커서 '연극을 아무 때나 함부로 보지 않는다.'라는 개똥철학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색을 낼 수밖에 없다. 이해해주길.


--잠깐!--

내가 하고많은 문화생활 중에 연극을 좋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잠시 여담을 하자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대학에서 교양수업의 일환으로 국립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가게 되었는데, 그날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신입생의 패기로 학교 잠바를 마구 입고 다녔었는데, 친구들과 시끌벅적 떠들며 도착한 극장에는 (같은 교양수업 때문인지) 우리 학교 잠바를 입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왠지 모를 소속감, 특유의 설레는 느낌 때문에 행복했다. 워낙 난해하다고 소문난 연극이라 연극의 내용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날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그 후로 연극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문화생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곤 지금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즐기게 되었다.


하여튼, 그래서 매번 연극을 보러 갈 땐 그때를 떠올리며 '그럴 때가 있었지'하며 회상한다. 그리고 매번 늦는다(...). 너무 설레는 바람에 마음을 추스르고 꽃단장을 하느라 늦는다고 해명... 하고 싶다. 흠흠. 그렇게 연극 시작 4분 전에 혜화역에 내려 대학로 예술 극장 대극장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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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지금까지 본 연극 중 가장 난해한 연극



극이 시작할 때부터 살짝 불안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전등. 절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쉬운 연극이 아닐 것이라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한 연극인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극을 보고 나서 나는 정말 당분간은 난해한 연극을 보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장르 불문 연극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 큰 다짐이다.


정말 어려웠다. 난해한 연극을 많이 봐왔지만, 제일 어려웠다. 물론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왜냐하면 연극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커서, 한 번에 꽤 많은 정보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극장을 나오자마자 인터넷에 검색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기억할 정도는 돼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을 볼 땐 (단순한 스토리나 코미디 연극이 아닌 이상) 배우들의 인과관계와 소품의 의미, 대화 속에 숨은 의미 등을 파헤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게 되면,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연극에 끌려가게 된다.




02-2 지금까지 본 연극 중 가장 난해한 연극



이 연극이 딱 그랬다.


지금까지 본 난해하다고 생각한 연극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버겁긴 해도, 생각을 정리하며 글로 리뷰를 쓰다 보면,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스치듯 떠오르기도 하고, 관련 보도자료와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조각이 맞춰지긴 했다.


그런데 이 연극은 좀 많이 어려웠다. 정부 주도하에 하거도가 공업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수용소 사람들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않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시체와 함께 슬슬 떠오르는 진실마저도 은폐하려는 정부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임을 포기하고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뒤덮인 사람들의 이야기. 전체적인 줄거리까지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연극 초반 하거도 씨의 목을 밧줄에 묶고 올라가 모질게 대하며 그의 과거를 캐내려는 장면, 그의 환영일 뿐이라고 계속 강조하는 엉망진창인 재판, 중간에 나타난 하거도 씨의 아들(게다가 그 아들이 왜 어머니를 고발해 옥수수를 얻어먹는 장면을 넣어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재판장 역할을 맡던 배우가 갑자기 재판장 옷을 벗어던지고 하거도 씨와 탈출을 모색하려는 동지가 된 것, 26-7284의 죽음 등등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물론 서로 치밀한 관계가 이어져있고 당연히 극 중에서 실마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한계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한번 보는 것으로는 이 연극을 이해하려는 것은 정말이지 욕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를 연출님이 보시거나, 연극을 어느 정도 이해한 사람들이 읽게 된다면 '얘 진짜 멍청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진짜 모르겠다.


+중간에 시체 마네킹이 던져졌을 때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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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뒤쪽 공간까지 있어서 공연장이 굉장히 넓다.



03 한국 정부를 비판하려는.



하거도에 떠오른 시신의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과, 덮으려는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러나 덮으려는 자들을 표현하는데 이용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은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린이용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롤러스케이트(그것도 한쪽 발만 착용), 분홍색 킥보드, 지능에 문제가 있어 보일 정도의 동생,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하버드 출신 비서(?), 전(前) 대통령을 연상케하는 노골적인 표현까지. 나는 아슬아슬한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정치에 대한 보수의 입장도, 진보의 입장도 아닌 나였지만 보는 내내 조금은 불안했다. 연극에서의 풍자가 제대로 먹혔는지, 다수의 관객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공감한다는 것일까. 기분이 그렇게 썩 좋지만은 않았다.


좀 격했던 표현을 빼면 나름대로 배경이나, 연출, 소품은 좋다고 느꼈다. 총을 표현한 옷 꽂은 나무막대나 다양한 소품,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정글짐 같은 수용소, 적절한 회색 천막의 사용 등은 아무래도 극에 몰입하는데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04 연극을 잠시 쉬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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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이해못한 나를 해맑게 보고계신(?) 배우분들.



연극의 내용을 거의 이해 못 했기 때문에 이번 연극으로 인해 나에게 드는 자괴감이 정말 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잠시 연극 관람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혼자 연극을 봐서 더 이해가 안 되었던 것 같다. 연극 직후 감상평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이리도 큰 것이었나.


앞으로 있을 <굴레방 다리의 소극>이 심란한 나를 다독여줄 거라고 아주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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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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