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러블 트래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다. [여행]

글 입력 2019.03.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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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 Travel


처음으로 혼자 나온 해외여행. 첫 유럽. 첫 장기여행. 단어 하나씩만 들어도 심장 떨리게 하는, 설렘이란 단어보단 긴장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단어들. 저 모든 단어들의 합이 내 여행이다. 처음으로 싸 본 캐리어, 처음으로 혼자 나온 해외여행, 처음으로 가보는 유럽, 처음으로 해보는 장기여행. 시작부터 무모했기 떄문일까? 내 여행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길치라 길을 잃는 건 이제 일상이 돼버렸고, 워낙에 조심성이라고는 없는 성격인데다 술까지 좋아하니 가는 곳 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있다. 게다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데는 선수라 행선지마다 내 흔적 하나씩 남기고 있다.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는 길만 잃지 않고,  죽을 사건사고만 일으키지 않고, 내 오장육부만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다니는 여행. 그야말로 좌충우돌 천방지축 트러블 트래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반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처음과 달리 6개월 넘게 여행을 지속중이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고, 또 무엇이 그럼에도 여행을 지속하게 만드는 걸까. 이제부터 나의 여행 이야기를 담아내보고자 한다.


IMG_83832.jpg▲ 번역기로 크로스체킹하며 열심히 써본 엽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다.

여행 전 들었으면 개소리라고 생각했을 말이다. 감정과 생각은 표현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언어로 이를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눌 수 없다고 믿었다. 감정과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내뱉는 건 내게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였다. 제대로 말할 수 없으면, 제대로된 관계도 나눌 수 없다. 그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오기 전 가장 걱정했던 부분도 언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영어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남들 다 준비하는 토익조차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살 거고 내 전공은 국문관데
왜 영어를 열심히 해야해?
모두가 영어를 공부해야하는
현재 한국사회 구조가 문제야!"

당연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영어 실력은 감퇴해갔고 그건 곧 내 자존감을 깎아 먹었다. 영어가 내 자존감을 깎아먹는다는 것을 알기에 영어가 더 싫었다. 영어 실력이 바닥을 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

더 큰 문제는 그 덕에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이었다는 거다. 영어로 말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극에 달해서 누군가랑 영어로 대화한다 생각하면 긴장부터 됐다. 지나가는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면 더듬더듬 "고 스트레이트 앤 턴 라이트..." 라고 답하는 수준. 그 누구와도 영어로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최악의 영어실력으로 감히 외국에 나갈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나처럼 말하는 거 좋아하는 애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그럴까.  외국인 친구의 ㅊ자도 못 만들고 혼자 외롭게 울면서 돌아오는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도 고군부투하고 있다. 왜 바벹탑 신화에서 신이 인간들을 갈라놓기 위해서 '언어'를 찢어놨는지 절감했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부족한 영어실력은 늘 내 발목을 잡았고, 아무리 영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언어가 다르기에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언어에 그렇게까지 크게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더 잘할 수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 느끼고 나눌 수 있다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IMG_8232.JPG▲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마음을 나눴던 사람들


 
말없이 말많던 시베리아횡단열차

그 시작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다. 영어를 못하는 나에겐 다행스럽게도(?) 러시아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불과 40여년전까지만 해도 소비에트연방이었던 탓에 영어를 배울수 없었고, 아직도 일부 젊은 사람들을 제외하고서는 기본적인 영어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 영어실력과는 별개로 열차 안에서는 구글 번역기를 오프라인으로 다운받아서 사람들과 소통해야했다.

구글번역기로 하나하나 다 쳐서 얼굴에 들이밀어 읽게하고, 대답도 구글 번역기를 기다려야하는 상황. 그마저도 구글번역기의 오번역으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질문하고 답하고 그 한번을 위해 5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부지기수. 그나마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라도 소통에 성공하면 모를까,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서도 결국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몰라서 포기해버린 경우들도 많았다. 그마저도 젊은 사람에게나 사용가능하지, 나이드신 분들께는 죄송해서 차마 들이밀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관계는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 힘겨운 방식으로도 별 이야기를 다 나눴다. 시시콜콜한 일상과 열차에 탄 목적부터, 서로의 신상정보, 심지어는 러시아와 한국의 임금 상황이나 거주 문제까지도. 느리고 답답한 방식이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럼에도 나랑 대화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나야 모두가 외국인이라 할 지라도 이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훨씬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러시아인들이 주변에 널렸는데 나랑 대화를 지속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기에 소통이 더욱 소중해지는 아이러니.

말이 통하지 않기에 사람들의 미소 한 번, 말 없이 들이미는 간식 한번이 더더욱 마음 깊게 다가왔다. '스파시바', '빠좔스타' 그 짧고 간단한 대화 한번에 얼마나 수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때로는 바디 랭귀지가 그 무엇보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도 배웠다. 함께 보드카를 마시고 싶을 때, 몰래 사들고 들어온 보드카를 꺼내들고 마시는 시늉을 하는 것만큼 정확한 의사전달이 있을까!

대화를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이 우스운 아이러니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고르, 나쟈언니, 마리나 아주머니, 바샤 할아버지...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름을 생생히 기억할 정도로 그들은 내 삶의 특이점이 돼주었다. '말'이라곤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나눴던 사람들. 이 특별한 경험은 나를 언어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IMG_5799.JPG▲ where are you from? 학교에서 배운 그 한마디를 해보고 싶어서, 또는 말 한마디 못해도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



언어가 아니라 공기로 전해져오는 마음

이는 열차를 벗어나서, 그렇게 시작된 나의 영어고군분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내 영어 실력이 갑자기 는다거나 하는 기적은 절대로 일어날리 없었고, 여전히 내 영어는 거지같았다. 하지만 주눅들지 않고,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된다는 생각으로 부딪혀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나눌 수 있었다. 전형적인 한국인 발음이라 R L, 심지어 B V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문법이나 어휘력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이 영어로도 한국의 역사와, 정치,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까지 나눌 정도니. 말하고자 하는 의지와 듣고자하는 의지가 만나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여행을 하다보니 정말 다양한 영어들을 만나게 됐는데.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 중 하나는 wait을 '와잇'으로, know를 '크노'로 읽는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대부분의 대화는 구글번역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누며 그 어떤 것보다 깊은 교감을 나눴다. 짧은 순간의 헤어짐이 아쉬워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지며 그와 무엇을 나눴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순간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주한 눈빛으로, 그 순간의 공기로 전해지는 그 마음. 그 마음을 서로 나눴던 그 순간.

좋은 말은 못알아들어도 좋은 말인걸 느낄 수 있고, 나쁜 말은 못 알아들어도 나쁜 말인걸 느낄 수 있다는 말은 이번 여행을 하면서부터 믿지 않기로 했다. 분위기와 맥락이 있으면 언어도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며 내가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랐는데  모르는 언어는 모르는 언어였고 아무리 천천히 또박또박 감정을 담아 말한다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모르는 언어는 모르는 언어일 뿐이었다.


IMG_8023.JPG▲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지만 온 마음을 다해 Annem(내 어머니)이라고 불렀던 터키 어머니
 

하지만 언어로 전하고자 하지않고, 마음으로 전하고자 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마음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라도 공기로, 분위기로 전해져왔다. 공기는 거짓말을 할 수 없고, 빈말도 할 수 없기에 때로는 언어로 전한 마음보다  더더욱 깊숙하게 스며들어왔다. 언어로 전해왔으면 의심부터 갔을만한 마음들도, 마음으로 전해져오니 그저 눈물이 날 뿐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무언가를 나누고자,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상대를 위한 진심. 물론,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땐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지만 인터넷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순간부터는 언어의 장벽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나눴던 그 소중한 순간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각인처럼 남아 소중한 보물이 됐다.

여전히 내가 모르는 언어에 둘러싸인 삶은 피곤하고, 또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싶으니 BGM삼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알아들을 수도 없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가만히 내 시간을 허비하고 있던 날들도 분명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못알아듣는다 하더라도 내게 좋은 말을 해주려 노력하고, 사랑해주려 노력하던  그 소중한 마음들이 있기에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여행을 지속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어공부는 더 해야겠지만 말이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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