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느 봄밤에 꾸는 꿈 [도서]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中, '봄밤' 을 읽고
글 입력 2019.03.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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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을 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정이란 신기한 단어다. 술의 어떤 요소이기도 하면서, 술에 취한 사람이 내뱉는 행패나 말을 이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이 술병 안에 갇힌 것 같은 형상을 하는 단어다. 술의 한 요소로써,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


소설집은 총 일곱 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봄밤에서부터 층까지, 권여선이 문예지나 웹진 등에 발표했던 소설을 하나로 엮었다. 나는 그 중 가장 제목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봄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봄밤은 김수영의 시 제목이기도 하며, 그 구절이 소설에 인용이 되어 있다. 절제에 대하여 노래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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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환과 영경은 서로에게 돌아올 행운의 몫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다. 중년 친구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만난 두 사람은 만난 당일부로 애인이 된다. 술자리에서 수환은 술을 퍼마시던 영경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깊게 파인 눈가와 회색으로 석고상처럼 보이는 얼굴을 외면하지 못한 채로, 영경을 집에 업어다 준다. 그리고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서로를 사랑하며 갉아먹는다.

 

영경은 알코올 중독자로 술이 없이는 도무지 버티지를 못한다. 그러나 수환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기 위해 함께 요양원에 들어간다. 영경은 때때로 병원에서 외출증을 받아 술을 마시고 돌아오곤 한다. 알코올 중독 사태가 더욱 나빠지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독기의 힘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그들의 사랑과 무엇이 다를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의 속성은 상대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함께할 때는 서로의 빈 부분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서 회복이란 것이 불가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보통의 관계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여겨진다. 부족한 부분을 상쇄하며 채워주지 않고도 서로를 끊임없이 원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중독이다. 이것을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영경이 하고 있다.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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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수환의 장점이 단점보다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구절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끝없이 늘어나는 분모에 대항하기 위해 분자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수환의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영경이 기꺼운 마음으로 외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그나마 자신의 분자를 조금이라도 늘리는 일이라고, 영경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크게 만드는 일이라고 수환은 생각했다.’


결국 자신과 상대 모두를 갉아먹어가면서 더 큰 구멍을 파는 일. 그들은 그 구멍을 무덤이라 부르지 않고 숨통이라 부르자고 합의한 듯 했다. 숨을 쉰다는 게 단발성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어야 하는 일임은 잊은 채로. 물 속에서 숨이 가빠올 때 다른 사람이 불어넣어주는 숨은 사실 별 소용이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봄밤을 읽고 난 후에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 주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딘가 취해 있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노래하면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러면서 주저앉아 무언가를 읊조리고. 그런 삶의 방식은 반드시 존재한다. 누구든 아주 조금씩 지니고 있는, 말하자면 인간의 생물성이라고.



[이정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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