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나 인간답게 '살 곳'이 필요하다 [TV/드라마]

주거권과 인권은 만날 수 있을까
글 입력 2019.03.13 00: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심규동 작가.jpg
심규동 <고시텔> 中


지난해 11월 9일, 종로구에 위치한 국일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삽시간에 잠자던 사람을 덮쳤다. 7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뉴스를 접한 나는 살아남은 사람을 가려낼 수 있었다. 최저 주거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곳에 스프링클러와 비상 계단은 있을 리가 없다. 창문이 있는 방에 살던 사람은 살아남았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창문 밖 에어컨 배관을 따라 탈출했던 사람들은, 단 4만 원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섬뜩했다. '가난'이 죽음의 순간을 결정짓는다는 걸, 나는 단박에 이해했다. 나의 선명하고도 흐릿한 기억으로.

21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알아본 것은 단연코 '살 곳'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집값은 너무 높았고, 나는 '살 곳'을 찾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고시원에 갔지만, 그 첫인상을 잊지 못한다. "사람이 살 수 있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좁고 답답한 공간. 단 2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하는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처음에 부모님께서는 화장실과 창문이 있는 방을 계약해주셨다. 무보증금에 쌀과 김치가 제공되는 45만 원짜리 방은 그 때 처음 내게 혼란스러운 서울살이를 느끼게 해 줬다. 꿈에 대한 열정을 한 가득 가지고 왔지만, 그 곳에 내 발을 놓을 곳은 없는 느낌. 대도로에 늘어선 초고층 빌딩과 번잡하게 돌아가는 대도시의 풍경으로 애써 어두운 마음을 눌렀다.

하지만, 고시원은 한창 세상에 꿈을 품던 나의 자아를 알게 모르게 흔들었다. 나의 하루를 달래줄 쉼터의 공간도, 내게 원동력을 줄 주방도, 위생적이게 씻을 공간 그 무엇 하나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옆방에서 전화 소리, TV 소리, 발걸음 소리가 내 온 신경을 건드렸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누워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기본적인 삶의 공간이 갖춰져야 일상이 유지된다는 걸 깨달았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내게 충격적인 사실이었달까.

어떠한 심리적인 안정감도 주지 못하는 곳에 있으니, 우울해지는 건 당연했다. 삶에 활력을 찾고 싶어 집어 든 책이 한창 유행하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왜 하필!). 단 2평짜리 방에서 거대한 꿈을 꾸기엔 현실이 너무 초라했지만, 그 간극은 시간과 노력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창문이 없는 방으로 옮기면서, 내 꿈의 크기는 더욱 작아졌다. 기본적인 환기조차 안 되는 곳은 내 정신을 갉아먹었고, '하루'를 망쳐놓기 일쑤였다. 하루가 모여 미래가 된다면, 내 미래는 최악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마저 포기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별.jpg
심규동 <고시텔> 中



고시원은 어떻게 주거난민의 터전이 됐나


1970년, 고시원은 사법, 외무, 행정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1990년엔 이미 서울 시내에 50여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 고시원만 200여개가 있었고, 이곳을 이용하는 고시생이 2만~2만 5000명에 달했다. 그러다 2000년대 무렵, 국가고시 제도 변화로 고시생은 줄고 새로운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 돼 개인은 노동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없었다.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인한 임차 비용의 상승은 노동 소득에 비해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 상승시켰다.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 또한 한 몫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곳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고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그 위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도시 개발"이 돼 빈곤층이 고시원으로 몰렸다고 한다. 국가의 품격을 높이겠다는 이름 하에 진행된 도시 개발은, 판자촌과 달동네 같은 무허가 정착지를 '밀어버렸다'. 저소득 노동자들은 당장 합법 주택에 정착할 여건이 안 됐지만, 국가는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대안책을 지원하지 않았다. 고시원은 선택지가 아니었던 셈이다.



'주거권'은 '인간의 권리'가 될 수 있을까



1991년 유엔 사회 인권위원회는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adequate housing)'를 발표하였는데, 그 구성요소로 '점유의 안정성'을 강조한다. 점유의 법적 보장(legal security), 서비스 물자 인프라에 대한 가용성(availability of service, materials, facilities and infrastructure), 비용의 적정성(affordability), 접근성(accessibility), 사회적 시설로부터 인접한 곳에 있어야 하는 위치(location),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적 적절성(cultural adequacy)등을 구체적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 권세훈(2016)



반면 우리나라는 헌법에 사회권으로 규정된 주거권을 명시했으나,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을 가진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제34조 제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제1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제3항)"를 주거권의 근거로 들 수 있다. 하지만, 헌재는 ‘보편적 주거권’을 보장할 국가가의 작위의무는 명문으로 규정되어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주거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고, 주거권은 이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한 지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주거상태의 안정화는 공동체의 안녕과 개인의 자유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피하기란 어렵다. 아파트를 무작정 쌓아올렸던 과거 건설 정책은 주거문제를 시장 원리에 따라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부분으로 떠넘겼고, 그 결과 현재 부동산은 투기의 대상으로 변모되고 취약계층은 살 곳을 얻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고시원 화재를 통해 기본적인 주거권이 박탈당한 사람을 목격했다. 필요한 것은 가난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닌, '살 곳'이라는 기본권에 대한 논의다. 예컨대 통풍, 햇빛, 방음, 난방, 공간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주거권은 공권으로서 국민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소구할 권리인지 등 역사적인 접근과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발언할 기회가 골고루 보장될 때 더 잘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우리부터 들어보는 건 어떨까.







출처
* 사진 - 심규동 작가
* 인용 - 권세훈, 「프랑스의 주거정책과 주거권」, 법제논단, 법제처, 2016, 162p-181p




[이다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