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 읽다] 박완서 - 엄마의 작가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가버렸나_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글 입력 2019.03.1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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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대로 읽고 싶던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나도 모르게 [작가를 ; 읽다] 가장 끝에 배치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이 생각의 원천은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는데, 박완서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늘 내게 말해왔다. 글을 아주 쉽게 쓰는 작가라 술술 읽힐 거라고. 자신은 박완서의 책 중에서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누가 다 먹었을까”가 가장 좋다고.


고향이 생각난다고 했다. 난 그 말 속에서 고향에 대한 엄마의 그리움을 느꼈다. 엄마 또한 영월이라는 곳에서 뛰어놀며 자란 소녀였으니까.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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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 작가 본인의 유년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이야기이다. 참 기나긴 인생사다. 파란만장한 인생사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사랑 아래 개성에서 야성의 시절을 보냈던 유년 시절. 엄마의 반란이라면 반란인 서울 상경. 6.25로 처절히 무너진 가정. 그 삶을 견디고 헤치며 살아온 박완서란 사람.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p. 287



누구의 인생도 파란만장하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박완서의 삶은 내가 듣지 못한 시대의 사람 이야기를 한다. 6.25 후 태어나 비교적 안정적인 축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자신이 지나쳐온 삶을. 그게 이 책이 한국문학으로서 지니는 가치일 것이다. 소시민인 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누가 진격했고 누가 후퇴했고, 누가 싸웠고, 누가 나라를 구했느냐보다 그런 건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그 밑에서 남모를 전쟁과 투쟁을 치른 소시민 한 명으로서의 삶. 내가 살기 위해 견뎠던 삶.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 잊지 않은 삶을 나는 국사책이 아닌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알았다.


마음이 아팠다. 악착같이 기억하려 했구나. 잊지 않고 전하려는 의무를 느꼈구나. 고통 속에 여렸던 것이 단단해짐에 나까지 쓰려왔다.




당신의 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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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시절이 그에게 아주 아팠고, 힘들었어도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무한한 사랑을 주었던 할아버지라서,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오빠라서, 할머니와 작은 숙부라서. 그리고 미워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엄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박완서의 엄마가 그에게 때론 야멸차고 상처도 고생도 준 사람 같았다. 그런데 또 그런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박완서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서울에 말뚝을 박을 생각을 한 강인하면서도 대담하고 용감한 여성이라서. 과부로서 남매를 악착같이 키워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엄마에 대한 애증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모든, 따뜻하기도 했고 춥기도 했던 그 자체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싱아는 그런 게 아닐까? 내 한때. 내 과거. 지금은 잘 볼 수 없게 된, 그 특정한 때를 공유하는 것. 그래서 마치 있었던 게 맞을까 꿈결 같지만, 분명히 있었던 것. 안쓰럽기도 가엽기도 사랑스럽기도 했던 그때. 그것이 싱아일 것이다.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누가 다 먹어버린 걸까. 그 단내 나며 시큼 달콤했던 그 시절은. 춥고 아팠던 그 시절은.


우리 모두에게 싱아는 있을 것이다. 그게 각자의 파란만장한 인생 중 찬란한 부분이겠지. 그 싱아를 가슴 깊은 곳에 키우고 있어 어른들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나 보다.


내가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다고 할 때면 엄마도 그런다. ‘나도 내 나이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 지난날들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느껴져서 그런가 그럴 때마다 엄마의 안색엔 아련함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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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엄마에게 물었다. 이 책의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그 재주가 부러웠단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그토록 상세히 묘사하고 풀어내는 능력이. 엄마의 처녀 때 꿈이 작가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벌써 몇십 년은 지났을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그렇게 생생히 풀어낼 수 있는 재주가 부러웠던 것 같다.


그건 박완서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나 또한 읽는다는 느낌보단 눈에 선히 그려진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얀 하늘에 물감을 친한 양 그의 유년 시절부터 성장하는 과정이 지워졌다 그려지고를 반복했다.



저녁 노을이 유난히 새빨갰다.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의 풍경도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그냥 딴 동네 같았다.

정답던 사람도 모닥불을 통해서 보면 낯설 듯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내 갑작스러운 울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건 순수한 비애였다.


p.29



박완서가 유년 시절 바라본 하늘의 빛깔과 수수이삭의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이 나에게 벅차게 전해져 왔다. 그라는 작가를 우리의 시대에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작가를 ; 읽다]의 마지막 작가가 박완서라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책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바라봤다. 내 24살의 하늘을. 꼭 봐두어야 할 것 같았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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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는 1931년 경기 개풍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였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엄마의 말뚝 』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1년 8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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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 사진 출처 : 네이버 나는 문학이다 박완서편

책 사진 출처 : 웅진출판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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