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개미의 '일'상이 조금 더 가벼워지길 바라며 [기타]

글 입력 2019.03.13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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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무엇일까,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업이 될 수도, 삶 자체가 될 수도 있는 것.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이 공존하는 사회인만큼 일이란 더욱 다양한 가치로 자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일생에서 별개가 될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2017년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나는 공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경기도에 사는 나는, 서교동에 있는 사무실과 서울 곳곳에 있는 현장으로 출근했고, 나의 출퇴근 길은 늘 왕복 세 시간에 달했다.

디자이너는 늘 비상한 아이디어를 지녀야 하는데, 아이디어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나오는 듯 나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말라 있었다. 이렇게 업무적, 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내게 도움이 된 건 동료의 조언이나 곧 다가올 주말이 아닌, 나의 마음을 꿰뚫어본 어느 책의 구절, 반복되는 어느 노랫말이었다. 그것들은 나의 꽉 막힌 머릿속에 시원한 풀 바람이 부는 듯 걱정을 모두 환기시켜주었다. 그 책 두 권과 음악 앨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이유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당신에게도 자그만 도움이 되길 바라며.



BOOK
스와가라 요헤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멍, 때리기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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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세 시간의 출퇴근은 금세 익숙해졌다. 나는 보통 이 시간을 핸드폰으로 여러 디자인 플랫폼을 드나들며 프로젝트에 참고할 디자인을 찾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팡 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리는 만무했고, 정신을 차려보면 난 초점 없는 눈으로 스크롤만 연신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점점 멍 때리기의 달인이 되어갔다. 그리곤 이런 출근길에 지쳐 오전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멍때리기의 힘을 강조하는 책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소개하는 책 <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다. 저자 '스와가라 요헤이'는 뇌 재활 치료사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멍 때리기를 책에 썼다. 그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란 머릿속에 있는 답을 깨닫는 것'이며, 이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 목욕 중 밀도 측정법을 발견해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 생각해보니 이들도 사실 멍하니 있다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 책은 좋은 멍 때리기를 위한 방법 또한 소개한다. 그것은 '꼭꼭 씹어먹기', '잠들기 시작할 때 가볍게 졸기' 등 쉽고 기분 좋은 행동이다. 덕분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실천했고, 보다 쉽게 아이디어를 발견하며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쳐보기도 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치 거울을 보는 듯 나와 같이 멍하니 휴대폰만 응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감정은 방해가 되므로 감정이 없는 상태에 좋은 멍 때리기를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에 따르면 오히려 몽롱한 아침이 아이디어를 위한 멍때리기에 좋은 시간이 아닐까?

아침. 멍 때리기의 힘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유레카!"를 외치는 아침이 찾아올 것이다.



MUSIC
Natalia Lafourcade <Limosna>

Dame un poquito de tu vacación, siquiera' (휴가를 주세요, 조금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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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잎이 선물처럼 흩날리던 즈음, 나는 방대한 일감을 선물 받았다. 때문에 벚꽃이 모두 질 때까지 휴식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사무실에서 새어 나온 독특한 멜로디가 내 귓가에 불시착했다. 그리곤 축 처져있던 몸의 마디마디를 깨웠다. 나는 단지 음악 제목을 묻기 위해 통'통'통' 리듬을 실어 노크했다.

그 음악은 멕시코 싱어송라이터 Natalia Lafourcade의 앨범 Mujer Divina - Homenaje a Agustín Lara이다. Natalia는 음악가 부모님의 영향으로 기타, 색소폰, 우쿨렐레 등 다양한 악기를 섭렵해 14세에 밴드 twist를 이끌었다. 이 앨범도 여러 악기의 풍부한 리듬감과 함께한다. 어느 곡은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를 연상하는 연주로, 또 어느 곡은 우리의 신명 박자인 트로트(스러운) 리듬으로 시작한다. 전주만으로 이미 몸 어딘가를 들썩이게 하고, 이어서 레몬에이드처럼 상큼하고 톡톡 튀는 그녀의 음색이 합쳐진다.

이 중 내가 특히 즐겨들은 곡은 두 번째 수록곡인 Limosna다. 경쾌한 도입부는 구름 위를 뛰노는 듯 가볍고 상쾌한 상상을 일으키다가 노랫말에 반복되는 단어와 멜로디가 귓속 깊이 안착한다. 검색 엔진의 힘을 빌려 직역했다. 제목 Limosna의 뜻은 ‘구걸’. 그리고 내 귓가에 맴돈 구절 'Dame un poquito de tu amor, siquiera' (그대의 사랑을 조금만 주세요, 조금만요!). 사랑을 귀엽게 구걸하는 노래가, 휴식을 간절히 원하던 내게 3분 50초간의 여유를 선물했다. 휴가를 떠난 듯한 설렘까지도.

이후로 나는 유난히 지치는 날, 습관처럼 Limosna를 틀고 마음속으로 따라 불렀다. Dame un poquito de tu vacación, siquiera' (휴가를 주세요, 조금만요!)



BOOK
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

일상 속, 검색어를 찾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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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인도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지내지 않는 이상 평생을 많은 것과 연결된 채 살아간다. 일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중에도 사실상 가장 필수적으로 연결된 것은 ‘인터넷’이다. 업무 중 갑자기 인터넷이 끊겨 강제(라기에는 다소 행복한) 휴식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밖에 나서지 않고도 짧은 시간 내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은, 바쁜 일터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가 인터넷에서 머무는 시간이 꼭 원하던 정보를 얻는 일과 비례하진 않는다. 또한 생각보다 다양하지 못한 정보에 실망할때도 있다.

나의 이 실망감을, 보다 쉽게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계기로 바꿔준 책이 있다.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이다. 저자는 ‘내가 이직에 대한 고민을 지인에게 말했을 때 그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할 것을 추천하겠지만, 나에 대한 정보가 없는 약한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추천받고 그것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자유롭게 검색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검색엔진이 취사 선택한 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변의 환경을 의식적으로 바꿔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요약하자면 익숙한 환경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고 생각이 막히거나 원하는 정보가 쉽사리 보이지 않을 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주변의 사물이나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속한 것에 일부 연결을 끊고 점심시간에 혼자 나와 내가 평소 가지 않던 길을 걸었다. 이를 통해 인터넷으로는 얻지 못하던 정보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혹시 옆자리 동료가 컴퓨터를 붙잡고 한숨만 쉬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 그 전에 일단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을 권하길 바란다. 가령, 짧은 산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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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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