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제의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 <그린 북>의 흑과 백 (2) [영화]

<그린 북>, 안전 지대를 향한 외로운 여정을 그리다
글 입력 2019.03.1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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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편에서 우리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영화 <그린 북>을 둘러싼 세간의 논란들을 살펴보면서 작품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재고해보았다. 그리고 창작자의 도덕적 평판과 예술 작품이 분리되어 해석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보았다. 본 글 (2편)에서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호평을 샀던 <그린 북>의 텍스트와 주제 의식을 살펴보면서 위 질문에 대한 필자 나름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제작진의 도덕적 해이에도 불구하고 <그린 북>이라는 작품 자체만큼은 긍정하는 관객들이 존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 가지 키워드의 도움을 받아 영화 애호가들의 갈채를 누린 <그린 북>의 내부를 속속들이 파헤쳐보자.




1. 직관성



<그린 북>은 꽤나 많은 은유와 상징을 통해 플롯, 인물 구도 및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영화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은유와 상징들이 상당히 직관적이고 관객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린 북>은 으레 함축적이며 간접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이 수사법들에 직관성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이 자칫 조급해지거나 식상해지는 위험을 감수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린 북>은 신선함을 잃지 않으면서 관객들에게 작품의 구조를 쉽게 설명하는 데에 성공했다.


대표적인 예로 아래 장면을 들 수 있겠다. 해당 장면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로, 미국 전역을 휩쓴 뛰어난 음악가이나 투어 중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겪는 인물이다. 왼쪽에 위치한 사람은 그의 백인 운전 기사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이다. 이 장면은 두 인물이 처음 대면한 상황을 보여주는데, 셜리 박사가 앉아 있는 의자가 토니의 의자보다 훨씬 화려하고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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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셜리(오른쪽, 마허샬라 알리)와
토니 발레롱가(왼쪽, 비고 모텐슨)
출처: pz-news.de



이러한 구도는 높은 명예를 가졌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셜리 박사의 처지, 기득권층에 속한 백인이지만 서민 가정의 가장으로서 넉넉지 못한 삶을 사는 토니의 입지,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발산되는 ‘불편한’ 에너지를 단 번에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전복된 권력 구조를 상징하는 의자의 높이 차를 통해 약자에게 일시적으로나마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씁쓸한 통쾌함도 준다. 즉 이른바 지위불일치 상태에 놓여있는 두 인물의 상반된 입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면서 즉각적으로 관객의 집중력과 인지 활동을 자극하는 것이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흰 피부, 파란 눈을 가진 ‘백인’ 아기 예수 등의 소재도 비슷한 작용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또다른 예로는 작품의 색채 활용 방식을 들 수 있다. 작품 속에서 토니를 비롯한 기득권층은 주로 붉은색으로 치환되고, 셜리 박사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층은 푸른색 물체나 공간에 접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색채 구도는 특히 영화의 초반부에서 양 인물군 간 대립과 소통의 경색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토니와 셜리 박사가 소통과 이해를 통해 함께 폭력으로부터의 안전 지대를 찾아가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빨강(토니)과 파랑(셜리 박사)은 전혀 다른 색인 초록색을 통해 매개된다. 이것은 영화의 중심 소재인 ‘그린 북’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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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 /출처: shahrvandemrouz.com



‘그린 북’은 과거 흑인 운전자를 위해 제작된 운전 지침서로,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숙박 및 편의 시설 등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명 ‘그린’을 따서 책의 이름이 지어졌는데, 공교롭게도 ‘그린(green)’이 뜻하는 초록색은 실제로 ‘그린 북’이 흑인들에게 소개해주는 그들을 위한 '안전 지대'와 맥을 같이하는 색이다. 이 단순한 색채 문법을 통해 관객들은 영화의 플롯, 즉 두 주인공이 폭력으로부터의 안전 지대를 향한 여정을 함께 걸어나가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작품의 중심 소재 ‘그린 북’의 기능과 재치있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포착할 수 있다. ‘그린 북’이라는 소재와 작품의 직관적 색채들이 인물과 주제 의식을 매개하는 셈이다. 색채의 단순함과 직관성에서 오는 안정감을 우리는 영화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셜리 박사의 사무실의 양극에 붉은색과 푸른색이 각각 배치되어 병존함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붉은색은 외부로 향하는 문과 같이 방 바깥쪽에 위치한 사물들의 색깔로 사용되고, 푸른색은 셜리 박사의 주 공간인 방 안쪽에 위치한 물건들의 색깔인 경우가 많다. 마치 커다란 치즈 조각을 자르듯이, 영화는 우리 삶의 한 단면을 꽉 찬 네모 화면으로 포착한다. 셜리 박사의 삶은 외부로 향할수록 빨간색에 점점 가까워지는 형상이다. 이러한 색채 활용법은 관객의 시선을 즉각 집중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향할수록 폭력에 더욱 노출될 수밖에 없는 셜리 박사의 처지를 공감하게 한다. 이렇게 별다른 철학적 거점을 거치지 않고서도 간단한 상징 회로로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아니 각인시키는 <그린 북>은 직관성과 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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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leinburd.ru




2. 냉철함



<그린 북>은 폭력을 저지르는 인물들을 벌하기보다는 인물 간, 혹은 인물과 사회 간의 화해를 선택한 영화이다. 영화에 특정 인물에 대한 직접적 질책은 적으나, 동시에 도덕적 태만이나 무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작품 내부의 일관되고 명확한 기준을 고수하고, 푸른색을 작품 전체에 끌어안으려 한다.


또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던 것은 작품이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희화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린 북>은 이 모든 것을 소화하면서도 재미를 유지하는 특별한 영화이다. <그린 북>과 같이 해학을 추구하는 영화는 으레 그러한 사람들을 고리타분한 인물군으로 묘사하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린 북>은 그렇게 게으른 영화가 아니다. 작품은 원칙을 고수하는 자의 순진함이 아닌, 두 주인공의 순수한 의견 대립과 성격 차에서 웃음을 찾는다.


그리고 인물의 성격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짜여진 대사와 특별히 공들인 단어 선택, 손짓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그리고 이 모든 역동적 요소들을 아우르는 작품의 적당한 템포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토니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품격을 지키려 하는 셜리 박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셜리 박사도 마찬가지이며, 둘은 그저 서로에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뿐이다. <그린 북>은 비겁한 방식으로 관객의 웃음을 탐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른 자세로 '관심과 소통'이라는 나름의 가치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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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estranger.com




3. 사회상 조명



앞서 잠시 언급했듯 셜리 박사와 토니, 두 인물의 관계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은 곧 안전 지대의 확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두 인물이 소통을 거듭할수록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셜리 박사의 안전 지대는 고립과 은신의 공간에서 이해와 동행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영화는 개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게 평화적 공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아울러 <그린 북>은 그렇게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 전체의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연결성을 조망한다. 특히 집단적 갈등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형태를 토니와 셜리 박사 개인 간의 갈등 상황에 재현한 부분이 인상깊다. '흑인답지 못하게' 음악이나 연주하며 사치를 누리는 흑인이었던 셜리 박사는 흑인과 백인, 어느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자신의 처지에 눈물을 흘린다.


약자가 약자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과, 사회가 은연중에 약자에게 요구하는 ‘약자다움’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셜리 박사의 길은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여정이며, <그린 북>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영화다. ‘그린 북’은 이러한 외로움이 슬프도록 짙게 함축된 소재이다. 셜리 박사의 삶에서 문득 느껴진 치열한 고민의 흔적은 그의 외로움의 크기에 비례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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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iuly.io



지금까지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영화 <그린 북>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작품의 가치에 대해 재고해보았다. 많은 관객의 호응을 받은 영화인 만큼 고유의 개성과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듯싶다. <그린 북>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창작자의 도덕성과 배치되어 더욱 극적으로 부각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술 작품 그 자체의 긍정적 면모, 즉 ‘작품성’은 하나의 비평 단위로서 창작자와 분리되어 평가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상업성과 사회성을 띠는 현대의 예술 작품들이 어떠한 매커니즘으로 소비되는지를 주의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 예술의 소비는, 자본의 흐름에 따라 아주 당연하게도, 창작자의 사회적 지위 획득 및 막대한 부의 축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그러한 명예 부여는 작품이 함축하는 창작자의 가치관과 예술 문법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일일 터이며, 작품 뿐 아니라 창작자의 손에 사회적 힘을 쥐여주는 행위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작품 자체가 가지는 예술적 가치만을 바라보고 창작자의 도덕성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외면하게 되는 것이 비단 그뿐일까? 예술 작품의 자율성 존중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사회의 사각 지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외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몇몇의 경우, 부도덕한 제작진의 행실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미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수많은 소비를 행해야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 더더욱 절실한 물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정말 '재미있으면 그만'일까?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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