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니쉬 걸 - 내 눈에 보였던 또 다른 대니쉬 걸 [영화]

글 입력 2019.03.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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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을 통해 알게 된 배우 ‘에디 레드메인’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젠틀하고 세심한 연기톤이 너무나 매력적인 배우라 생각했고 바로 그 배우의 전작들 중 하나였던 ‘대니쉬 걸’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느꼈던 ‘대니쉬 걸’ 속 에디 레드메인 배우의 연기가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 두 번째로 이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보는 순간, 영화를 보는 내내 처음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묘한 기분과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여자가 되고 싶었던 아이나르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은 여자의 삶을 살다 온 듯했다. 초반의 과묵하고 조용한 신사 아이나르의 모습은 영화 중후반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만큼 세밀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 대니쉬걸 화가 아이나르.jpg
 


어릴 적, 한스와 함께 했던 동네의 풍경을 그리던 아이나르(에디 레드메인)는 릴리로 변하면서 더 이상 그러한 풍경화를 그리지 않는다. 아이나르는 그 풍경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 풍경은 아이나르의 것일테니까. 이제는 아이나르가 아닌 릴리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영화 내에서 보여주는 몇몇 불규칙적인 어릴 적 한스와 함께 했던 기억과 장면들은 아이나르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릴리를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릴리를 밖으로 꺼내기 전까지의 아이나르는 자신도 모르는 성정체성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왔던 것이라 느꼈다. 하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 속 릴리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고 점차 외부로 끄집어내게 되면서 더 이상 그림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듯, 영화 ‘대니쉬 걸’에서는 아이나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에 따라 그림과의 상관관계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이나르 한 명만이 아니라 느꼈다. 영화 제목의 ‘대니쉬 걸’은 릴리이자 아이나르인 에디 레드메인일 수도 있겠지만 부인 역할을 했던 게르다 또한 어우를 수 있는 명칭이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는 릴리(아이나르)의 성 정체성을 함께 찾아주려 조력자 역할을 했던 부인 게르다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릴리의 감정선에 몰입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고통과 혼란스러움을 함께 감당해야 할 게르다의 감정선에도 동시에 자연스럽게 몰입되었다. 둘의 감정선을 동시에 따라가다 보니 마치 끝까지 닿지 않는 평행선을 그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 대니쉬걸 게르다.jpg
 


혼란스럽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아이나르와 릴리로 살아가고자 하는 남편에 대한 낯섦, 백 프로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럽지만 한편으로 인생의 동반자로서, 또 서로의 인생에 조력자였던 존재로서 힘들지만 지지해주려는 게르다에게 모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좀 더 아쉬웠던 점은 아이나르만큼 게르다의 감정 변화가 세밀하게 표현되지 못하다고 느꼈던 점이다.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주인공은 아이나르였기에 어쩌면 에디 레드메인에게 치중된 감정선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표현된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찾아가는 아이나르의 모습이 보는 이의 몰입을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 한 생각만큼은 자꾸 아이나르를 보는 감상을 방해하였다.



[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 게르다의 혼란스러움.jpg
  


‘결국 아이나르가 릴리로 산다면 게르다는? 아이나르와 평생 소울메이트처럼 살아왔던 게르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쩌면 아내로서 남편을 붙잡고 싶은 마음과 인생의 조력자로서 릴리로의 인생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 두 사이 간극 때문에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게르다의 감정 표현 또한 아이나르의 감정 변화 만큼 입체적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화 초반 아이나르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게르다로 표현되었는데 정작 아이나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게르다와의 교감이 충분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이나르의 인생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흐름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게르다의 감정은 인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평면적인 모습만이 보여 아쉬웠다. 현실을 부정하고 힘들어하고 심지어 원망하는 등의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고 소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게르다의 당당하고 현명한 성향을 고려한다 치더라도 마치 이상적인 아내, 조력자의 모습만을 그려 아이나르를 강조하는 느낌이라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다소 현실적이지만 서로 좁혀질 수 없는 입장이 부딪히는 모습을 더 보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로 살아가는 아이나르의 모습, 또 그를 응원하는 릴리의 모습이 그다음으로 나왔다면 보다 더 입체적으로 표현된 게르다의 성격 덕분에 편하게 아이나르의 인생에 몰입하며 영화를 보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게르다의 사랑은 젠더를 넘어선 사랑이라는 것임을 느꼈다. 조금 부족하고 아쉬웠던 게르다의 감정 묘사는 알리사 비칸데르 (게르다를 연기한 배우)의 연기로 조금이나마 채워졌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대니쉬 걸’을 보고 나면 범성애자,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젠더와 성에 관련해서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된다. 사실 최근 갈수록 젠더를 규정하는 단어가 LGBTQ 그 이상으로 늘어가고 있다. 이처럼 계속해서 젠더와 성에 관한 단어들이 나오고 이야기되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영화를 통해 젠더를 규정하는 것은 그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단어 하나로 인해 한 인간의 성향, 취향, 성격 등이 함께 욱여 넣어져 규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또한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에 대해 특별한 편견과 생각을 갖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예전에 ‘어차피 다 같은 사람인데 뭐.’ 하며 크게 의식적으로 노력할 것도 없다고 어떻게 보면 오만한 생각을 했다. 막상 영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표현들을 접해 보니 나에게 아직까지 익숙하진 않구나 느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렇지 않을 때까지, 익숙한 분위기와 당연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나 또한 노력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나 자신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당연하고 평등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려면 말이다.


또한, 성 정체성을, 젠더를 정확한 단어로 구분 지을 수 있을진 몰라도 사랑에 있어서는 경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여자이길 원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며, 여자로서의 결혼 그리고 아이 갖기를 원하는 전 남편을 여전히 사랑한다. 영화 속 게르다가 ‘사랑한 것은 나와 아이나르가 아니라, 당신과 나야’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서 맴돈다.



[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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