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개의 바람이 되어 [기타]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다
글 입력 2019.03.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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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살던 집 마당엔 큰 목련나무가 있었다.


내가 아직 이름을 부여받지 않은 가녀린 생명일 때부터 교복을 입은 사춘기 소녀가 될 때까지 나와 함께한 나무였다. 아니, 우리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일 때부터 우리 가족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나를 점지한 삼신할매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매년 이맘쯤이면 목련꽃이 활짝 폈고 우리 가족은 집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꽃구경을 했다. 만개한 백목련은 눈이 시릴 정도로 예뻤다.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하얀 꽃잎들에서 소박함과 동시에 화려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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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목련의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언제 피었었냐는 듯 빠르게 져버렸다.


보름달 같던 꽃은 조각조각 부서졌다. 아직 수분을 머금은 보송한 꽃잎들이 차가운 바닥에 닿아 생명력을 잃어갔다. 약간의 분홍빛을 머금던 꽃잎은 금세 혈색을 잃고 탁한 색을 띠며 시들어갔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잎들이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이 원인 모를 통증은 기다란 목련 암술이 검게 말라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곤 했다.


5년 전, 목련 잎이 바닥에 수북이 쌓이던 때였다. 그 때 나는 고등학교 첫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쉬는 시간, 친구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방 구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늘이 어두워지고 야자가 끝날 때까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밤 11시, 스마트폰이 없던 나는 그제야 독서실 컴퓨터로 인터넷에 들어갔다.


여러 뉴스가 그곳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곳이었다. 12시가 됐다. 하루가 지났다. 진전된 것은 없었다. 머리가 아파 독서실을 나왔다. 아직 밤공기가 꽤 서늘한 날이었다. 늦게 핀 목련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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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때문인지 오랫동안 내게서 떠나지 않는 감기 때문인지 봄이 왔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설렘을 안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신입생들 사이에서 혼자 코를 훌쩍이며 다음 수업을 들으러 다닐 뿐이었다. 3월의 파릇한 기운이 내겐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다 학교 정원 구석에서 목련나무를 봤다. 나뭇가지 끝에 어느새 꽃봉오리가 맺혀있었다. 아직 갈색 털옷에 감싸져 있었지만 그 작은 꽃봉오리를 보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곳에선 벌써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는 기사들을 본 것도 같았다. 목련꽃은 그 자리 그대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잠시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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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어쩌면 내 옆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 중에 한 명일 수도, 지루한 수업 틈에서 몰래 수다를 떠는 저 뒤편에 앉은 학생들 중 한 명일 수도 있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도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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