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은 마블 대신, 디씨 어떠세요? [TV/드라마]

어벤저스가 아니어도 괜찮아
글 입력 2019.03.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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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믹스 계의 양대 산맥인 마블과 디씨 코믹스는 창간 이래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왔다. 스파이더맨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낮은 인지도의 캐릭터들로 인기를 연명했던 마블과는 달리 디씨 코믹스는 배트맨, 슈퍼맨 등 압도적인 인지도의 히어로들을 등에 업고 코믹스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2008년 아이언맨 개봉 이후 MCU(Marvel Cinematic Universe)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그 격차를 좁혀오기 시작했고 부랴부랴 준비한 DCCU(DC Cinematic Universe)의 연이은 실패로 이제 밀레니엄 이후 세대에게는 배트맨보다 아이언맨이, 슈퍼맨보다 캡틴 아메리카가 더 친숙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영화가 별로였다고 해서 디씨 코믹스 자체가 별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자를 히어로의 세계에 입문시킨 것은 마블이지만 히어로 영화를 맹목적으로 좋아하게 한 것은 디씨일 정도로 그 매력이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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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보다 한 발 앞서 론칭한

DC UNIVERSE 스트리밍 사이트 메인화면

출처: dcunivers.com



물론, 영화판에서 마블이 이룬 업적과 디씨가 저지른 실수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바로 옆 동네인 브라운관에서 이들의 위치는 순식간에 역전된다. 디씨의 경우 이미 1950년대부터 다양한 히어로들의 실사화가 진행되어 온 반면, 마블은 MCU가 인기를 얻은 이후인 2013년이 돼서야 실사 드라마들을 방영하기 시작했으며 드라마의 수나 인기도 디씨에 비해 떨어진다. 또 디씨에는 성인을 주 독자층으로 한 산하 계열인 DC Vertigo가 있어 디씨의 메인 세계관과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독립적인 작품들도 많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실사화는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2013년부터 애로우를 기점으로 플래시,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 등이 애로우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Arrowverse(Arrow+Universe)'가 진행 중이며, 네 개의 드라마 모두 캔슬 없이 브라운관에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2018년에는 MCU가 속해 있는 디즈니보다 한발 앞서 론칭한 DC UNIVERSE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타이탄즈, 둠 패트롤의 실사 드라마를 선보였고, 2019년에는 스왐프 띵, 스타걸 등이 방영 예정이다.




1. 1950-2010년



누가 뭐라 해도 명실상부한 디씨 코믹스의 메인 캐릭터인 슈퍼맨이 50년대에 실사화된 이후로 60년대에는 배트맨이, 70년대에는 원더우먼 드라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담 웨스트가 배트맨 역할을 맡았던 60년대 배트맨은 지금과 같이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배트맨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주 시청자인 어린이들을 공략해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밝은 분위기의 줄거리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배트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우스꽝스러웠던 것은 아니어서 배트맨이 사용했던 온갖 장비들과 코스튬은 후대의 배트맨 실사화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아담 웨스트의 배트맨을 최고의 배트맨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70년대 방영한 원더우먼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명작으로 칭송받는 드라마로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당시 원더우먼을 연기했던 린다 카터는 현재 슈퍼걸에서 미국 대통령 올리비아를 연기하며 히어로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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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몰빌 포스터



이 외에도 디씨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이 방영되었지만 아마 애로우버스 이전에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시리즈는 'Smallville'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슈퍼맨 리턴즈>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스몰빌은 슈퍼맨이 본격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하기 전 고등학교 생활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시즌 10까지 진행되다 보니 후반에는 거의 저스티스 리그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양한 히어로가 활약했다. 비록 스몰빌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관에 묶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애초에 솔로 무비일 수가 없는 엑스맨을 제외하고는 거의 최초로 여러 히어로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드라마였던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혁신적인 드라마임이 분명하다.




2. The beginning of Arrowverse



저스티스 리그 멤버도 아닌 애로우가 실사화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애로우는 예상 밖의 호평을 받았고 애로우 총괄 프로듀서였던 그렉 벌란티(Greg Berlanti)와 만화가이자 디씨 코믹스 CCO인 제프 존스(Jeff Jones)는 드라마 내에서 MCU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방대한 계획을 세웠다. 애로우 시즌 1 이후 2년 만에 더 플래시(The Flash)가,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인 2016년에는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Legends of Tomorrow)가 방영되었으며, 2015년 CBS에서 방영된 슈퍼걸(Super Girl)의 경우 초기에는 방송사가 달라 컬래버레이션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으나 시즌 1 이후 The CW로 방송사를 옮기면서 애로우버스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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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verse 등장인물들

출처: comicbook.com



Arrowverse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적당한 시간 간격이다. DCCU의 경우 MCU를 따라잡겠다는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제대로 된 솔로 무비가 개봉하기도 전에 팀업 영화인 저스티스 리그를 제작했고, 비록 손익 분기점을 넘는 수익을 달성했지만 혹평을 면할 수 없었다. 반면, Arrowverse의 책임자들은 이미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 서서히 캐릭터들을 노출하며 인지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서둘러 캐릭터를 등장시키느라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애로우 시즌 1부터 플래시는 종종 얼굴을 비췄으며,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플래시나 애로우에 적어도 한 번은 출연했던 캐릭터들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애로우의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플래시로, 그리고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로 유입되며 Arrowverse는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설정 오류다. 각기 다른 프로듀서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로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세계관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DCCU의 경우 원더우먼이 개봉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저스티스 리그에서 이전의 설정들을 모두 폐기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고 10년이 넘도록 이어진 엑스맨 시리즈는 매번 설정 오류로 팬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rrowverse에서는 총괄 책임자인 그렉 벌란티와 제프 존스가 모든 드라마 제작에 관여해 시즌 당 1-2회 정도 다른 드라마의 캐릭터들과 꾸준히 컬래버레이션 이벤트를 진행하며 세계관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특히 슈퍼걸과 플래시 배우들이 뮤지컬 배우 출신인 것을 활용해 뮤지컬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에피소드(플래시 시즌 3-17)는 자칫 진부해질 수도 있는 히어로 드라마에 신선함을 선사했다. 2018년에는 Crisis on Earth라는 이벤트를 열어 네 개의 독립된 드라마에서 한 회씩 연속적인 이야기를 진행했는데 시간 관계상 영화에서는 다뤄지기 힘든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코믹스 팬에게는 선물과도 장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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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걸과 플래시의 크로스오버 포스터



벼락을 맞고 세상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 된 플래시와 슈퍼맨의 사촌 동생인 슈퍼걸. 배가 난파되는 사고를 겪고 자경단이 된 애로우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의 균열을 해결하는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까지. 영화보다 비록 규모는 좀 작을지 몰라도 히어로들의 인간적인 면에 좀 더 초점을 맞춘 Arrowverse는 히어로 팀업 무비에 대한 팬들의 갈증을 말끔히 해소해 줄 것이다. 덧붙여 위의 드라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이번 주말에는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Arrowverse에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3. DC UNIVERSE Streaming Service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틴 타이탄즈는 원래 10대인 히어로들로 구성된 팀을 가리킨다. 디씨 유니버스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최초 공개된 타이탄즈(Titans)는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작화로 유명한 프랭크 밀러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10대라는 뜻의 '틴(Teen)'이 빠져있다. 여전히 레이븐과 비스트 보이는 10대로 나오지만 스타파이어와 로빈을 성인으로 설정함으로써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 가능해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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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즈. 왼쪽부터 비스트 보이, 레이븐, 로빈, 스타파이어



시즌 1인만큼 현재까지의 타이탄즈는 히어로들의 능력과 정체성 형성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로빈으로 폭력이라는 배트맨의 방식에 반기를 들고 자경단 활동을 그만두고 형사가 된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폭력의 불씨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를 괴롭힌다. 레이븐은 엄청난 힘의 소유자로 내면의 악마로 보이는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스타파이어는 기억을 잃어버려 혼란스러워한다. 비스트 보이 또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처럼 타이탄즈는 아직 히어로로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네 인물이 공동의 적에 맞서 싸워가는 과정을 선혈이 낭자한 액션과 입체적인 인물 묘사를 통해 흡인력 있게 그려냈다.


타이탄즈를 제외한 인물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매번 뼈가 부러지고 뇌진탕 진단을 받아도 자경단 활동을 놓지 못하는 호크와 그런 그를 걱정하는 연인 도브의 관계는 꽤 비중 있게 다뤄지며 제2대 로빈으로 활동 중인 제이슨 토드와 1대 로빈 딕 그레이슨과의 미묘한 신경전도 흥미롭다. 그러나 가장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건 비스트 보이가 속해 있던 둠 패트롤(Doom Patrol)이다. 둠 패트롤은 치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사고로 인한 괴상한 생김새 때문에 산속에 숨어 사는 인물들로, 타이탄즈 4화에 등장해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2019년, 디씨 유니버스 스트리밍 사이트에 최초로 둠 패트롤이 공개되었다. 타이탄즈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사이보그와 크레이지 제인이 포함된 둠 패트롤은 초반부터 메타크리틱 등에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DC 유니버스 확장을 예고했다. 두 개의 드라마 모두 좋은 평을 얻은 만큼 앞으로의 디씨 유니버스가 어떻게 발전해갈 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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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패트롤 등장인물

왼쪽부터 로봇맨, 네거티브맨, 크레이지 제인

사이보그, 엘라스티 우먼, 치프






비록 영화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디씨 코믹스지만 브라운관에선 탄탄한 스토리의 원작을 바탕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Arrowverse를 제외한 모든 드라마의 세계관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타이탄즈에 등장했던 둠 패트롤과 드라마 둠 패트롤은 배우들까지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이 다른,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임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물론 시즌이 지나면서 크로스오버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타이탄즈를 통해 또 다른 DC Universe를 구축할 것이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마블 또한 드라마에 등장했던 히어로들이 영화에 등장할 일은 없을 것이라 못을 박았지만 영화와의 연속성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뿐만아니라 마블은 MCU의 흥행 이후 흩어진 판권을 다시 회수하는 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디씨는 영화 부서와 드라마 부서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드라마의 제작사나 방송사가 모두 달라서 디씨의 풍부한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브라운과에서 디씨의 다양한 시도는 놀랄만한 성과이지만, 이미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힘이 증명된 상태에서 마블이 흩어진 퍼즐 찾기에 열중하는 동안 디씨가 이미 만들어진 퍼즐마저도 쪼개는 것이 과연 좋은 생각일지는 물음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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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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