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무리를 위한 장가계 여행 [여행]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마무리
글 입력 2019.03.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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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동안 중국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교환학생의 묘미는 여행이라는 말은 어쩌면 나의 교환학생 생활을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넓고 넓은 중국이라는 대륙, 내게 주어진 4개월 반이라는 시간, 다시없을 교환학생이라는 기회. 내게 주어진 이것들을 어떻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러기 위해선 여행을 열심히 다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다녔다. 공휴일마다, 주말마다 최선을 다해 중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그사이에 나의 중국 생활도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을 장식해준 것 역시 결국 여행이었다.

 

종강하고 귀국하기까지 2주 남짓의 시간이 남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더 소중하게 기억하기 위해 나는 홀로 장가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중국 곳곳을 열심히 여행하면서 내 여행 스타일을 알게 되었는데, 여럿이 단체로 다니는 것보다 나 혼자 다니는 것, 예쁘고 화려한 곳보다 웅장한 자연이 있는 것이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내가 장가계 여행에서 바란 건 나만의 시간, 멋진 자연경관 이 둘 뿐이었다.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중국 생활을 마무리 지을 3박 5일의 장가계 여행이 시작되었다.



 

외롭고 두려운 시작



내가 지냈던 곳인 항주에서 장가계로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 고민 끝에 7시간 동안 대기해야 하는 창사 경유의 비행기를 탔다. 기숙사에서 공항으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두근거렸던 마음은 창사 공항에 도착하자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늦지 않기 위해 창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귤섬의 ‘모택동 청년예술조각상’만 보고 서둘러 공항으로 복귀해 두 번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장가계에 도착하는 순간 긴장감은 피로로 변했다.



모택동 조각상.jpg
 

 

숙소에 가려면 공항에서 한 시간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외국에서 여자 혼자 택시를 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잔뜩 긴장한 상태로 택시에 올랐다. 택시 기사는 늦은 시간 혼자 택시를 탄 나에게 혼자 왔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답하자 기사는 혼자 장가계를 여행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특히 나는 외국인 여자이기 때문에 나를 노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선 어서 지금이라도 가이드나 여행 동료를 구하라며 한 시간 내내 내 여행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택시기사의 걱정으로 불안해진 마음은 허름한 숙소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겪어본 적 없는 처참한 욕실에서 겨우 샤워를 한 뒤 누운 침대는 얼음장 그 자체였다.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며 생각했다. 혼자 장가계까지 오는 건 무리였다고. 내가 너무 겁이 없었다고.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내가 무사히 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따라다니는 여행



두려움과 외로움에 떤 첫날 밤이 지나고 두 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장가계 대표 관광지인 장가계 국가 삼림공원으로 갔다. 공원엔 한국 관광객 단체가 정말 많았다. 어딜 가나 한국어가 들려서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대책 없이 혼자 장가계까지 온 나는 저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다, 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니다 양가계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했다.


 

양가계 케이블카.jpg
 

 

내가 그토록 원했던 웅장한 자연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나는 그제야 내가 장가계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가는 곳마다 위대한 경관이 나를 압도했고 특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바타의 배경이기도 한 원가계를 보자 나는 벅차오르는 감동까지 느꼈다.



원가계.jpg
 


그렇게 신나게 돌아다니다 어느덧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왔고 못 본 곳에 대해 아쉬움을 남긴 채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문제는 돌아갈 길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여행의 흥겨움은 끝났고, 현실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그때 또 다른 한국인 단체를 본 나는 그들을 따라 버스에 올랐고 내리니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나는 정말 대책 없었다.) 이번엔 운 좋게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지만 앞으로 남은 여행은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지, 오늘처럼 무작정 한국인 단체들을 따라다니기만 해서 될 일인지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상태로 숙소에 도착하자 관리자분의 큰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이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밥 먹을 거라는데, 드시겠어요?’

 

그땐 그 말 한마디에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비포 선라이즈의 로망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흉흉한 기사를 계속해서 접하면서 낯선 사람은 곧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나의 로망은 영화라서 가능한,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들을 만나면서 바뀌게 되었다.

 

중국인 네 명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중 유독 한 명이 한국인인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신이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들을 최대한 끄집어내어 최선을 다해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충칭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그는 능숙하게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짧은 식사로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은 그 덕분에 근교 산책까지 이어졌다. 나 홀로 외국인인 상태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 명이 모두 웃는데 나 혼자 알아듣지 못해 억지웃음을 지을 때 그 힘듦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다시 한번 반복해주고, 큰 소리로 또박또박 발음해주는 그의 배려 덕분에 그 힘듦을 잊을 수 있었다.

 

‘모레 천문산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갈래?’

 

내게 먼저 같이 여행하자고 말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 혼자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생각보다 사람을 더욱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대화인데 내 부족한 언어능력이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한다. 그럴 때 먼저 다가와 주는 누군가가 그렇게 힘이 될 수 없다. 그렇게 그와 한 언니, 그리고 나는 남은 여행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날 밤 나와 언니는 약속 시각을 정하고 대화를 나누다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잠들었다. 첫날 밤, 그렇게 나를 벌벌 떨게 했던 잠자리가 더는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삶을 감사하게 했던 하루



같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가 혼자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던 정보 몇 개가 틀린 정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틀린 수준이 꽤 치명적이어서 만약 혼자서 모르는 상태로 여행했으면 크게 고생했을 게 뻔한 정도였다. 마음속으로 이들과 같이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중국에서 중국인들과 여행하다 보니 나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도움은 여행 내내 이어졌다.

 

우리의 첫 여행지였던 대협곡 유리 다리에서부터 나는 미안함에 얼굴을 붉혀야 했다. 입장료가 제법 비쌌는데 학생 할인을 받으면 거의 반값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학생 할인의 혜택을 받게 해주기 위해 내 옆에서 하나하나 온라인 예매 방법을 알려주었고 카운터에 가서 직원들과 대신 얘기해주기도 하였다. 내 실수로 자꾸 입장이 지연되자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들은 계속 괜찮다며 나를 다독여주었고 최대한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분위기를 띄워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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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행지인 황룡 동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황룡 동굴의 관광은 직원이 가이드가 되어 인도하면서 일일이 설명해주는 방식이었다. 의대생 친구가 연신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내게 다 알아들었냐고 물었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답하자 전날 밤의 그 배려처럼 또박또박하고 큰 소리로, 더 쉬운 어휘로 내게 가이드가 했던 말을 알려주었다. 동굴을 돌아다니는 내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나의 일일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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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함께 여행했던 일행들이 짐을 모두 챙겨서 나오는 것이었다. 놀라며 왜냐고 묻자 그 일행들은 더 놀란 표정으로 우리 숙소 옮기기로 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마지막 날 천문산에 가기 위해서 숙소를 옮겨야 한다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가볍게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나는 황급히 짐을 뺐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은 터라 마지막 밤의 숙박비는 환불받을 수 없었다.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었고, 내 실수로 생긴 일이었기에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른 숙소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의대생 친구가 하는 말이 심상치 않았다.

 

‘숙소 가면 내가 숙박비 내는 거 도와줄게!’

‘…설마 그 말이 대신 내주겠다는 말은 아니지?’

‘너 방금 돈 잃었잖아. 내가 대신 내줄게!’

 

맙소사. 이미 결정했다는 그의 말에 최대한 강경하게 나가야 내 돈으로 숙박비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반드시’와 같은 표현을 쓰며 숙박비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겨우 내 돈으로 숙박비를 내게 되고(숙박비 역시 같이 다닌 언니의 도움을 받아 겨우 낼 수 있었다.) 쉬고 싶다는 언니를 숙소에 두고 의대생 친구가 나를 길거리 시장에 데려갔다.

 

중국의 길거리 음식이 잔뜩 있는 곳이었다. 그는 음식들을 볼 때마다 내게 먹어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그 즉시 구매해서 내 품에 안겨주었다. 내가 아무리 거절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내가 최대한 중국을 많이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말만 계속했다. 갑자기 그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영상 속엔 그의 어머니, 고모, 조카, 강아지까지 모두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내 한국인 친구를 보여주겠다며 나를 비췄고 나는 긴장된 목소리로 한국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혼자 여행 온 외국인 여자가 아니었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가족의 정이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그에게 덕분에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다고 정말 고맙다고 연락했다. 문득 살면서 받아온 무수히 많은 도움이 떠올랐다. 오래전 들었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으면서 살아왔었다. 내 지난 삶은 모두 도움의 연속이었다. 만약 그때 주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사람의 소중함이었다.



 

항주로 돌아가는 길



장가계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날의 천문산 트래킹은 실망 그 자체였다. 안개가 너무 심하게 껴서 경치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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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도 속상하지 않았다. 만약 혼자서 여길 왔다면 효율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런 뿌연 안개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라는 생각에 억울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옆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등산길을 지루하지 않게 계속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괜찮았다. 안개가 심하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사실 그 멋진 경치 안 봐도 상관없었다. 그들과 천문산을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트래킹을 마치고 기차역에서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의대생 친구는 고향에, 언니는 다른 여행지로, 나는 항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침대에 눕자 비로소 이 여행이 끝이 났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기차 안에 많은 사람이 보였다. 그 자체로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장가계 여행에 기대한 건 딱 두 가지였다. 나만의 시간. 멋진 자연경관. 하지만 정작 내가 얻은 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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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간 33분 열심히 달린 기차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항주에 도착했다. 한 학기 동안 지냈던, 너무나도 익숙한 항주사범대학교에 오랜만에 발을 디디자 내 중국 생활이 정말 마지막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내 몸을 감쌌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마무리를 했으니까.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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