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잊는다는 것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3.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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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 '앞'의 생이란


 

지난 주말, 나는 명동으로 향했다. 평일에도 사람으로 붐비는 명동의 '주말 밤'을 생각해보라. 사람들이 많다 못해 넘쳐 흘렀고,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명동의 거리를 수놓았다. 그곳이 설원이었다면 아마 눈을 녹이고도 남을 수많은 발자국을 따라, 나는 명동 예술극장 앞에 도착했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을 보기 위함이었다. 인기 있는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한 덕에 극장 역시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는 그 중 한 명이 되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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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러 극장에 들어섰을 때, 제목만 띄워진 화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자기 앞의 생'이라.. 아, 지나간 세월에 관한 이야기겠구나."


인물과 상황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싶지 않아서, 또 줄거리를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일명 '소포' 당하는 것이 싫어서,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는 그에 관련된 것들을 거의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그렇기에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제목을 보고 내가 예상한 내용이 맞았구나'하는 쾌감, 혹은 예상치도 못한, 새로운 내용이 불러일으키는 짜릿함은 연극과 영화가 내게 주는 또 다른 재미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에 쓰인 단어가 주는 느낌만을 가지고 직감적으로 연극 속 인물들이 지금까지 보내왔던 과거의 세월에 관한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오래 전의 역사를 말할 때에도 '먼저 선' 자를 사용해서 '선사'라 칭하고, 전대(前代)의 사람을 말할 때에도 '선인'이라 칭하는 것처럼, '먼저'의 개념, '앞'의 개념이 들어간 제목만을 보고 '지나온 세월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연극은 흘려보내온 과거의 세월이 아닌, 앞으로의 삶, 남은 삶, 그리고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남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내게 남겨진 생', '내 뒤의 생' 이라고 이야기할 법도 한데, 어째서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왔는지,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이 의문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2. 소년과 중년



이 극은 다른 어떤 연극보다도 건건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일단 등장하는 인물이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다 보니, 웬만해서는 역동적이라는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각 인물의 목소리로 상황의 고조를 알리지만, 연극의 시작부터 품고 있던 건건함과 고요함은 극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잃지 않는다.


건건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잃지 않게 한 요소 중 다른 하나는, 14살 소년 '모모'와 중년 여성 '로자 아줌마'의 관계이다. 극은 매춘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유모 '로자'의 삶을 비춘다. 원작 소설이 발표된 1970년대. 이때에는 매춘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특히 더 많았다. '자기 앞의 생' 역시 과거 매춘부였던 '로자'와 매춘부의 아이 '모모'를 등장시키며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흔히 볼 수 있는 '매춘'이라는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이는 10살 남짓한 소년 '모모' 때문이었는데, 그것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아이들에게 '매춘'을 의미하는 '궁둥이로 벌어먹지 마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로자 아줌마'에게 '모모'가 이야기했다.


'궁둥이로 벌어 먹고살면 뭐 어때요!'


'로자 아줌마'의 옆에 한결같이 존재하는 순수한 소년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그렇게도 힐난했던 자신의 과거에, 꽃 한 송이를 놓아준다. 이 꽃 한송이로, '자기 앞의 생'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사랑을 머금고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되었다.



 

3. 잊고 잊혀짐의 연속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두 가지의 권리가 있다. 죽을 권리, 그리고 잊을 권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의 수레바퀴를 반대로 돌릴 수는 있어도,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을 수는 없다. 아무리 잊지 않으려 해도 자연히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는 일이란 과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여태껏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진리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잊지 않으려 공부를 하고, 치매를 앓지 않으려 병원에 가는 것이겠지.


사람들은 잊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임에도, 온 힘을 다해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가 된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날 힘들게 했던 그때의 고통을 잊지 못하며, 날 아프게 했던 친구의 잘못을 잊지 못한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잊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다해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 또한 그랬다.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잊고 잊히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고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서인데도, 거스르기 위해 애썼다.
 

*


'자기 앞의 생'의 '로자 아줌마'는 나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슬픈 기억은 잊고 자신은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살지만, 정작 슬픈 기억은 잊히지 않고 자신은 잊으며 산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제목만을 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연극 '자기 앞의 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삶이 아니라, 과거의 삶일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것은 과거가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잊고 잊힘의 연속에서 쌓인 과거의 퇴적물이 나의 남은 삶에 영향을 주듯이, '자기 앞의 생'이라는 것이 사실은 나의 남은 삶을 이끄는 과거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은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저, 과거와 미래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는 잊을 권리가 있다는 것, 이 뿐이다.  그러니, 부정하고 싶은 과거는 모두 잊고, 내 남은 삶을 위해 내 앞의 생에 꽃 한 송이 놓아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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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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