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계의 악동 뮤지션 공연, 금호악기 시리즈 이수빈 ​

글 입력 2019.03.1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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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클래식계의 악동 뮤지션 공연

금호악기 시리즈 이수빈


공연장을 나오면서 클래식 문화가 대중화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이브 클럽처럼 캐쥬얼하게 나초를 치즈에 찍어 먹으면서 노래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딱딱하게 일렬로 앉아있는 대신 편한 의자에 걸터앉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사없는 음악의 감동이 우리의 마음을 반죽하듯이 휩쓸고 지나갔다. 공연은 듣기 매우 편했다. 공연의 수준이 캐주얼한 것은 아니지만, 듣기 편한 공연이었다. 연주자의 표현력과 기량도 대단했지만, 최고의 바이올린이 내는 섬세한 울림은 차마 텍스트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시 유튜브로 음악을 돌려보는 지금도 제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라도 현장에 울려퍼지는 감성을 따라가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클래식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지만 듣고 보니 굳이 지식이 있어야 하나 싶다. 부적절한 비유일 수 있지만 뉴에이지나 재즈를 듣는 것처럼 가만히 음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떤 영감이 차오른다.

사실 연주회의 첫 번째 곡이 이수빈*박진형 연주회의 전체적인 감상을 만들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 8번 G장조는 내가 베토벤이라는 작곡가에 가지고 있었던 느낌을 깨는 동시에 클래식에 가지고 있었던 편견도 깼다. 내가 알고 있던 베토벤은 다소 무겁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천재 음악가였다.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이 곡은 두 소년 소녀가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마침 연주가 이수빈(바이올린)과 박진형(피아노)도 소년 소녀처럼 나이가 어려보였다.) 느껴졌다.

반복되고 고조되는 멜로디와 두 악기의 절묘한 '티키타카'는 가끔씩 산을 오르는 바람처럼 상승하고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공처럼 떨어졌다. 사실 이 섬세한 과정을 한가지 감정이나 장면으로 요약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지만, 그들은 초원을 달리기도 하고, 천천히 햇볕을 느끼며 걷기도 했다. 젊은 두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첫 곡을 끝낸 두 연주자는 악동뮤지션을 생각나게 했다. 괜한 긴장감을 가지고 들어간 연주회였지만, 첫 곡이 끝나자마자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젠 이자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슬픈 시 d단조, Op.12. 사실 나는 두 번째 곡만 알고 연주회에 왔다. 그래서 사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두 연주자가 들어갔을 때는 속으로 "음, 이렇게 상큼한 노래를 듣고 이 음악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이상하겠군. 그 전환이 쉽게 이뤄질까?" 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이 노래는 내가 한창 '슬픈 것'들을 그려내고 싶었을 때 찾았던 음악이기 때문이다. 낮게 깔려 가끔은 신음하는 것처럼 들리는 피아노의 멜로디와 그만큼 길게 끄는 바이올린으로 구성된 연주의 중간 부분은 수채구멍에 말려들어갈 것 같이 잠겨들게 했다. 미세하게 찌푸려진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제로 이런 음을 내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전 곡이 팡팡 뛰는 악동 뮤지션 같았다면, 이 곡에서는 어린아이같은 익살스러움을 지우고 무거운 음을 흘려내보냈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멜로디와 그 안에 휘몰아치는 수많은 음의 혼합, 바이올린 특유의 특성과 피아노 특유의 구성력(?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은 감상자를 즐겁게 했다. 뭐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바이올린의 섬세한 소리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고악기의 장점을 마음껏 펼치려고 끼워넣은 곡인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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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된 음의 하모니를 중요시하는 엄마의 취향은 영 아니올시다 였지만, 세 번째 곡 벨러 버르토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랩소티 제 1번은 내 취향이었다.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계속 좀 바보같아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수많은 서사를 가진 해적을 떠올렸다. 해적이 아니라면, 조르바라도 괜찮다. 여기서 해적이라 함은 하드보일드한 리얼한 해적이 아니라 후크정도의 유쾌함을 가진 해적이다. 코가 빨간 해적의 팔 하나와 다리 하나는 절뚝 거리면서 불협화음을 내지만 수많은 이야기가 그 상처에 묻어나온다.

피아노는 현대음악처럼 쾅쾅 내려치고 바이올린은 기묘한 소리를 낸다. 이들의 불협화음은 때로는 깜찍하고 좀 무섭기도 하지만 템포가 빠르다. 곡의 중간부분에는 바이올린이 짹짹거리고 부리를 콕콕 두드리듯이 빠르게 연주하고 바이올린이 그런 다음에는 피아노가 날개를 퍼덕이듯이 빠르게 건반을 두드리는 부분이 있다. 그 다음에 이 멜로디를 반복해서 변형하고 점차 빠르게 연주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너무나 앵무새와 해적 같아서 재밌었다. 개인적으로는 곡이 왠지 게임 ost같았다. 만약 수염을 길게 기른 선장이 선술집에서 이 음악을 배경으로 건배사를 읇는다면 나도 기꺼이 두건을 매고 그를 위해 일할거다.

카미유 생상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 1번 d단조. 피날레 곡이었다. 듣는 중에는 와! 생상스(가 나한테 더 익숙하다)! 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어느 부분이라고 콕 찝어 말하기 어려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이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였던 내가 느낀 생상스러운 부분이 느껴졌다. 그래서 왠지 생상다운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특이한 곡을 들었더니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다가오고 멀어지는 생상스러움(?)에 금방 빠져들었다. 바이올린의 선율과 피아노의 빠른 건반의 움직임이 귀에 콕콕 들어와 기분이 좋았다.

피날레 선곡 곡답게 마지막 악장에서는 그야말로 양 악기가 폭발했다. 계속 빠르게 움직인 피아노였지만, 마지막 악장에서는 모터라도 단 것처럼 바이올린이 달린다. 두 악기가 달리면서 왠지 모르게 내 발도 빠르게 까닥거렸다. 내 발의 까닥임보다 더 빠르게 악기가 선율을 만들어낼 때는 숨을 틀어막고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음이 어쩜 저렇게 화려하고 빠를까, 불이 붙지는 않을까 생각도 들지 않을만큼 빛처럼 전개되는 기교로 가득찬 마지막 부분에서 두 연주자가 손을 떼자마자, 관객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당연히 나도 감동에 차서 박수를 쳤다. 어려보이는 소년 소녀는 기어코 멋진 생크림 케이크의 정상에 완벽한 모양으로 체리를 얹었다. 우리는 모두 앵콜을 바랬고, 이 멋진 아티스트들은 기꺼이 우리를 위해 한번 더 연주 해줬다. 센스있게도 그들은 어딘가 들어본 곡을 선곡했다. 엄마는 알았지만 사실 나는 그 곡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둘다 집에 갈때는 같은 말을 했다. "정말 완벽하게 멋져". 그래, 완벽하게 멋진 공연이었다.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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