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일을 잃더라도 해가 뜨지 않는 밤은 없다 [영화]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 Review
글 입력 2019.03.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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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어요



일본은 학교 동아리 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학원물 영화, 애니메이션을 보면 거의 교내 동아리 활동 이야기뿐이다. 알다시피, 동아리는 학창시절 아이들의 진로에 꽤나 영향을 주는데,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에 나오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특정 동아리에 소속이 되어있다. 그중에는 동아리 활동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고,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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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인 부분도 재밌었지만, 첫 번째로는 영화의 구성 방식이 눈에 띄었다. 영화 초반에 ‘금요일’의 장면이 다른 관점으로 계속 반복이 되면서, 같지만 전혀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키리시마가 돌아올 거라던 ‘화요일’에도 똑같은 플롯으로 진행이 된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 감독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 독특한 것은 학생들이 하나같이 다 영화제목에 나오는 키리시마를 찾는 것이다. 학생들의 설명에 의하면, 키리시마는 배구 동아리 대표이자 에이스로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은 학생이었다. 추측하건대, 예쁜 여자친구와 잘생긴 친구들을 둔 걸로 봐서는 ‘엄친아’ 쪽에 속한 학생인 듯 했다.



“키리시마가 팀대표로 선발 됬다며?”


“오늘 키리시마 안 나왔네?”


“도대체 어딨는 거야, 키리시마.”



표면적으로 영화를 보면 학교 내 보이지 않는 계급 간의 갈등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기엔 영화는 너무 복잡하고 인물 개개인의 이야기와 대사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키리시마가 누구길래 이토록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걸까?


결과적으로 영화에서 키리시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친구들만 남겨져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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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말야, 우리들 농구 왜 하는 거지?
키리시마 기다리려고 시작한 거잖아.
그럼 지금은?
그건 뭐... 그냥 농구가 하고 싶으니깐.




제각각 키리시마를 찾는 학생들



영화에 등장하는 12명의 인물은 모두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다. 주인공은 한 명(히로키)이지만, 사실상 감독은 관객들에게 12개의 표본이자 주인공들을 준비해뒀다. 아마도 누구나 이 영화를 볼 때, 비중이 적더라도 마음이가는 인물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은 누구일까?'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4명의 학생들(야구부 히로키, 취주악부 사와지마, 배구부 코이즈미, 영화부 마에다)을 중점으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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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히로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


2학년 2학기 진로조사표를 건네받은 아이들. "1학년 때도 똑같은 이야기 했잖아" 하면서 툴툴대고 있지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이 막연하게 살고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도 다니고, 또 내신점수를 딴다고 동아리에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방황은 당연한 거라고 하듯이, 불투명한 미래만 있고 시간은 계속 흐른다.


“어떻게 해야 될까?”가 아닌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일. 나 또한 학창시절에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다..) 주변에 목표를 확실히 정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는데, 또 그 친구들은 자기 나름대로 힘들다며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마저 나에겐 부러움에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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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는 야구부 부원이다. 하지만 야구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지금은 부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매일 무거운 야구 가방을 메고 학교를 등교한다.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 덕분인지 여자애들은 히로키가 뭐든 잘 해낼 거라고 속닥거린다. 친구들은 같은 대학을 가자고 말하고, 야구부 3학년 선배는 신인 선발 때까지 야구배트를 놓지 않을거라고 무심히 말한다. 같은 반 영화 동아리 친구들은 열심히 영화를 찍으러 돌아다닌다. 그리고 배구부 에이스이자 친한 친구였던 키리시마가 갑자기 배구부를 그만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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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지마 아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히로키의 뒷자리인 사와지마. 취주악부 부장으로 색소폰을 연주하는 걸 좋아한다. 히로키를 짝사랑해 그와 그의 친구들이 농구를 하는 곳 근처 옥상에서 매일 색소폰 연습을 한다. 동아리 부장인지라 연습에 집중해야 하지만, 눈길은 자꾸 히로키에게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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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촬영을 하려는 마에다와 갈등 중인 사와지마>


이 곳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니?


그거야... 오늘로 끝낼 거니깐..

난 집중해야만 해.

난 부장이니깐.


그러니깐... 이런건 오늘로 끝내고 싶어.


 

히로키에겐 철없는 여자친구 ‘사나’가 있는데, 그 둘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사와지마는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그러고 취주악부 연습실에 돌아와서는 동아리 부원들과 영화의 클라이맥스 음악을 합주한다.


쓸데없는 고집이라 해도 자꾸만 붙잡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야 된다는 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사와지마에겐 히로키는 또 다른 꿈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히로키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다음을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은 늘 존재하고, 그 상황 속에서 아파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버리는 일은 여전히 힘들 것이다.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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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케 코이즈미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없는 순간



코이즈미는 배구부 부원이다. 키리시마의 서브로 몸집은 작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둔 이후, 리베로 역할을 대신 맡게 되고 역량의 부족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난 이거 밖에 안된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난 겨우 이정도라고.



코이즈미는 자신이 동경해오던 키리시마를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한다. 키리시마가 왔다고 했을 때, 코이즈미는 잠시 멈칫한다. 하지만 “안 가도 돼!”라는 친구에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키리시마를 보러 뛰어간다. 코이즈미에게 키리시마는 올려다볼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니면 그 뒤를 계속해서 따라가야하는 존재인지, 코이즈미가 키리시마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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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료야

▲지금의 우리와 연결되 있는 세계



영화부 부장인 마에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간다. 영화감독을 하게 될 거라는 확신은 없다고 하지만, 단지 지금 이 순간 영화를 찍는 것이 좋다는 이유로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청춘 리얼리티는 무리야!


이왕이면 찍고 싶은 거

찍고 떨어지자.


주제는 반경 10미터 이내, 고등학생스럽게 영화를 만들라는 담당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마에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좀비 영화 제작에 도전한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마에다의 표정은 확실히 즐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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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카스미를 짝사랑한다. 카스미는 마에다가 좋아하는 매니악 영화에 관심이 있고 무엇보다 마에다를 응원해주는 친구이다. 영화에서는 꿈을 좇는 학생들 말고도, 그 꿈을 지지해주는 학생들 또한 비중 있게 다룬다.




싸우자 이곳이 우리들의 세계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깐



학생들은 왜 자꾸 키리시마를 찾는 것일까?


키리시마가 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학생들은 부리나케 옥상으로 뛰어 올라간다. 어떤 학생들은 키리시마를 보고 싶어 서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은 키리시마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를 위해 옥상으로 같이 뛰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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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는 히로키

무엇을 위해 저렇게 뛰는 걸까?



그러나 그곳에 키리시마는 없고, 촬영을 하고 있는 영화부 학생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 헛수고했다고 생각한 배구부 학생이 영화부의 소품을 발로 냅다 차버리고, 그에 화가 난 마에다와 영화 부원들은 카메라를 들고 리얼리티 다큐 좀비 영화라 하며 주변 학생들에게 마구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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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가 들고 있는 8mm 필름 카메라에는 단순히 좀비 영화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키리시마를 때문에 모인 학생들의 고군분투 현장, 마에다가 카메라 너머로 본 사랑하는 카스미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히로키의 처절한 뒷모습 또한 이 카메라 안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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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질러진 소품을 정리하는 영화부
그리고 작은 창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히로키
영화 안에서 또 다른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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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엔 영화감독이 되는 건가요?


뭐 그럴 일은 없으려나.

영화 감독은 무리야.


그럼, 어째서 이런 지저분한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거야?


그건, 음... 아주 가끔씩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가 찍는 영화랑

연결 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그게 '그냥' 좋으니까.



돌아가는 길에 히로키는 키리시마에게 전화를 건다.

계속되는 벨 소리와 점점 커져만 가는 운동장의 소리.


키리시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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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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