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미술계의 두 슈퍼스타, 빛과 그림자

글 입력 2019.03.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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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셀러브리티’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다.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 이들은 자신의 일상을 대중에게 과시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세간의 화제거리가 된다. 그것이 좋은 화제이든 아니든 말이다. 미술계에도 셀러브리티가 있다. 자신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업인 개성 넘치는 이들이 가득한 미술계인데,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번 글에서 소개할 이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부와 명성을 떨치는 슈퍼스타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통해 동시대 미술시장의 판을 바꾸어놓기까지 했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말이다.

   



yBA의 탄생, 전설의 시작



1988년, 런던 도크랜드의 한 허름한 창고에서 전시가 열렸다. 전시 제목은 <프리즈(Freeze)>로, 골드스미스 대학에 재학 중인 16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개최한 그룹전이었다. 아직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미대생들이 조촐하게 연 전시였지만, 영국 현대 미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전설로 남게 되었다. 광고계의 재벌이었던 재력가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가 전시를 방문했고, 이후 그가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yBA(young British Artists)라 불리는 막강한 젊은 예술가 군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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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A 작가 중 한 명인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의
<내 침대(My Bed, 1988)>.
자신이 쓰던 침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
스타킹, 속옷, 콘돔, 피임약 등 성(性)적인 사생활을
암시하는 오브제들이 널려 있다.
 


yBA는 처음에는 <프리즈> 전시를 기획한 골드스미스 출신 작가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쓰이다가, 점차 이들을 통해 촉발된 영국의 새로운 경향의 젊은 예술가들을 부르는 말로 확대되었다. 트레이시 에민, 사라 루카스, 게리 흄, 리암 길릭 등이 yBA 작가였으며, 이 중에는 <프리즈> 전시를 기획하고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데미안 허스트(Damien Hurst, 1965~)도 있었다.

 



허스트와 사치의 만남, 슈퍼스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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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와 작품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데미안 허스트는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스펙터클’ 이미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관객에게 죽음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신을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big enough to eat you)’의 거대한 상어를 포름알데히드에 담근 작품에서부터, 수백 마리의 화려한 나비를 박제한 작품, 황소의 목을 자른 것을 그대로 전시하거나, 수만 개의 다이아몬드를 해골에 붙인 작품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소름끼칠 정도로 직설적이고 화려해서 의식적 판단에 앞서 일단 시선을 붙잡아버리는 힘이 있다. 그런데 한 눈에 봐도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을 것 같은 이런 작품을 허스트는 어떻게 제작할 수 있었을까? 그 시작의 단추를 꿰어준 인물이 바로 찰스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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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사치

 


앞서 소개한 <프리즈> 전시에서 대학생 허스트는 <천 년(A Thousand Years)>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소머리에서 알을 깐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 다시 살충기에 의해 죽게 되는 과정을 담은 역시나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이 전시를 방문한 찰스 사치는 이 도발적인 청년 예술가의 작품에 큰 인상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몇 년 후 허스트가 아이디어 스케치만을 들고 찾아간 상어 작품,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제작에 선뜻 5만 파운드(약 1억원)를 후원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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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사치가 yBA 작가들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개최한

전시회 <Sensation>의 포스터.

 


찰스 사치는 <프리즈> 전시 이후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yBA 작가들의 작품을 후원, 구입하고 전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광고계의 큰 손이라 불릴 정도로 수완을 자랑했던 그였기에 미술계에서도 사치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의 손을 거쳐간 작가들의 작품가는 엄청나게 상승했고, 사치가 작품을 구입하거나 전시를 기획한 작가들의 작품은 일단 사고 보는 그의 추종자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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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

<천 년(A Thousand Years, 1990)>

ⓒSaatchi Gallery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가진 컬렉터 사치, 대범하고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펼치는 데미안 허스트와 yBA 작가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함께 성장한 갤러리 ‘화이트큐브’의 만남은 우연, 혹은 필연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나 미술계에 새 바람을 불어와 급기야는 영국 런던을 1990년대 이후 현대 미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만들게 되었다.

 

작품 자체도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데다, 거액의 돈이 오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젊은 작가들이 연일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내다보니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계에 자연스레 대중의 관심이 모이게 된 것이다. 거기에 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연예인들까지 동원해 화려하게 생중계되는 미술 시상식 ‘터너 프라이즈’까지 합세하여 영국 대중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지고, 국가와 도시 전체에 예술적 활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허스트와 사치가 쏘아올린 공이 생각보다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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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ien Hirst in front of one of his butterfly canvases,

part of his retrospective at Tate Modern.

Photograph: Ray Tang/Rex Features

 



빛과 그림자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 그들의 행보와 그들이 예술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워낙 개성파에 예측 불허한 악동 이미지 때문에 많은 논란을 빚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비판은 그들이 현대 미술 시장의 가격 거품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사치는 yBA를 비롯한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구입했지만, 한편으로는 젊고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사재기하고 그의 갤러리에 전시하면서 명성을 키운 뒤, 다시 가차 없이 되팔아버려 수십 배의 이윤을 남기는 투자 방식으로 악명이 높다. 사치 자신의 안목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결국은 그의 영향력과 마케팅 능력을 이용하여 미술판을 돈놀음하는 데에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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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트는 어떠한가. 전통적으로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 갤러리라는 1차 시장을 통해 작품을 컬렉터에게 판매하고, 그 컬렉터가 작품을 다시 되팔 때 옥션(경매)이라는 2차 시장을 거치는데, 허스트는 관례를 깨고 직접 경매에 자신의 작품을 내다 팔아 수천 억 원 상당의 수익을 가져가기도 했다. 자신만의 개인 비즈니스 매니저(프랭크 던피)를 고용하는 등의 예술가로서 독특한 행보를 이어나가는 그는 실제로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미술가가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술가보다는 사업가에 가까운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허스트의 작품의 미적, 역사적 가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의 작품이 얼마에 팔렸다는 이슈를 가십으로 소비할 뿐이다.


 




사치와 허스트를 둘러싼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쉽게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그들이 예술을 쇼비즈니스의 장으로 만들고 예술에 대한 진지한 애정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자 컬렉터들을 끌어들인 것은 사실이나, 바로 그 이유에서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모이고 예술계에 활력이 생긴 것 또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요즘의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때문에 ‘미술 시장’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키운 입장으로서, 미술을 돈 문제와 연결 짓는 것을 ‘불순하다’고만 바라보는 시선에는 부정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명화, 명작들이 경제적 가치를 떠나 오로지 작품의 ‘본질적인 가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사실 아닐뿐더러 작품의 본질적인, 내재적인 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절대적인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 시각예술이라는 분야의 방향성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이고 균형 잡힌 시선의 날을 세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다양한 예술을 더 오래오래 즐길 수 있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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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2007)>



참고자료

책 김영애, <갤러리스트>, 마로니에북스, 2018

비자트 - 영국 미술을 세계에 알린 찰스 사치

글로벌 이코노믹 - [강금주의 미술산책(14)] yBa와 찰스 사치, 현대미술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매경 이코노미 - [양정무 교수의 Money&Art](16) 미술작품 가격 결정 메커니즘…제작비보다 창의성이 중요

조선 pub - 악평과 호평을 오가는 ‘잔혹한 현대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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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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