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 가뭄 지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타]

문화가뭄에 대처하는 자세: 너튜브 산책
글 입력 2019.03.1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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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Iker Ayestaran illustration


문화사각지대. 문화 가뭄.


지난 달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간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 받다 우리는 서로가 문화 가뭄을 겪고있다며 놀려댔다. 이 단어가 나온 배경은 얼마 전 이 친구가 떠난 지역의 특징 때문이었는데, 이 친구가 간 곳은 중국의 작은 도시였기에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한 인프라가 철저히 부족했고, 그 덕택에 ‘문화 가뭄현상을 겪고 있다’며 이 친구는 서점과 영화관의 필요성을 강렬히 촉구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란 SNS를 통해 즐기는 간접적인 것 밖에 없다며 농담조로 덧붙이기도 했는데, 당시에 그저 웃으며 넘겼던 이 말이 계속해서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나는 중국 지방의 소도시에 살지도, 한국의 외딴 섬에 살지도 않는다. 한때는 한국의 각종 문화예술 인프라가 모여있는 수도권에 살았고 지금은 고향이던 광역시에 잠시 정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 구직자의 입장에서 수도권에만 집중된 문화 관련 일자리들을 배치를 절실하게 느끼기는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미디어를 통한 문화생활은 그리 결핍되어 있지는 않다.

영화, 도서, 드라마부터 작은 규모지만 연극, 음악회, 미술 전시도 누릴 수 있다. 인프라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에 간 친구에 비해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환경에 살고 있지만 서도, 친구의 말은 마음 한 구석에 남아 나를 찝찝하게 만들었다.



문화란 거창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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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나며 이제 막 새로운 패턴의 일상을 그려나가던 나는 최근 2주간 눈에 뛸 만한 문화생활을 한 적이 없었다. 고작해야 가볍게 소설책을 한 권 읽고 좋아하는 월간지를 한 권 읽는 중이다. 영화관을 가지도, 드라마를 몰아보지도, 전시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긴 무기력을 딛고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막 끌어올리기 시작한 미약한 단계의 체력은 이를 허락하지도 않을뿐더러,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취업준비생’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있는 나는 당장 아르바이트에 묶였다. 그리곤 친구들에게 ‘현실적이다 못해 현실에 찌든 분’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팩트폭격기로 군림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지난 2주를 돌아보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해야 하는 것’에 얽매인 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위로는 아니더라도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비겁하게도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리곤 그 달래어진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우리의 ‘일상’에 박혀있는 문화생활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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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별스타그램, 너튜브, 블로그, 책….

내 경우엔 대부분의 경우 짧게 짧게 흘러가는 자투리 시간을 스마트폰에 투자했던 것 같다. 웹툰을 보고 SNS를 하면서 피드를 살피고, 블로그의 글을 읽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상들을 본다. 무작정 소비되는 대중문화의 단편이라고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이 역시 나의 일상을 구성하는 문화생활의 단편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SNS는 일상이고 SNS를 통해 접하는 각종 문화 콘텐츠들 역시 일상이라면 우리들의 일상이 그리 팍팍하지는 않구나 위로할 수 있었다.



너튜브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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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플랫폼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동영상 플랫폼이다.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외에도 브이로그, ASMR, 홈 카페 등 영상미와 소리에 집중된 콘텐츠들을 주로 보며 마음을 달랜다.

잠깐이나마 짧게 영업 시간을 가지자면 한창 빠져있는 크리에이터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과 디테일을 자랑한다. 새벽 4시 채널은 고요한 밤 울려 퍼지는 따뜻한 소리들로 채워져있고, 슛뚜의 브이로그는 다른 일상 채널의 긴 설명과 번잡함 대신 차분한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내며, y. na__ homecafe 채널은 한국어로 진행되는 홈카페 채널 중에서는 단연 가장 섬세한 디테일을 뽑아낸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의 조화를 맞추는 것은 ASMR 전문 크리에이터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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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다른 이들의 톡톡 튀는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채널도 많다.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이상 커플의 이상적인 라이프’, ‘겨울서점’, ‘성장문답’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나는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가장 빠르면서도 간편한 대화를 경험한다.

시간을 더 투자해서 조금 더 폭넓은 문화 생활을 누릴 것이고 (그러고 싶지만) 당장 해야 하는 것들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혹은 나의 친구처럼 문화생활이 힘든 지역 조건이라면 우선 우리의 일상 속 무심하게 지나치던 콘텐츠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음미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오늘 밤도 그럼 너튜브 문화산책을 떠날 준비를 하며 글을 마친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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