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과 상상, 그리고 현실의 의미에 대하여 [영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글 입력 2019.03.1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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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글에는 해당 영화에 대한 줄거리와 결말이 담겨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고,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은 유의해 주세요.



몇 주 동안 영어시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공부만 했다. 어찌어찌 끝이 나고, 오랜만에 글을 쓰려 앉았다. 뭔가 마음이 공허해진 묘한 기분과 함께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 하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아끼는 영화 하나를 다시 보기로 했다.


바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다.


처음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를 본 후 나는 영화의 여운에 꽤 오래 잠겨 있었다. 찝찝함이나 자극적인 여운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훈훈하고 따뜻한 그런 여운이었다. "정말 감명 깊게 봤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듯하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너무 맘에 드는 걸 찾으면 익숙해질까 봐, 닳아버릴까 봐 자주 못 꺼낼 때가 있다. 이 영화가 나에게 그랬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다 보는 순간 이 영화와의 첫 만남이 끝나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다시 보더라도 처음 봤을 때만큼의 감정은 느끼지 못할 테니깐. 이 여운과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이 느낌이 바래버릴까 봐, 이 영화를 자주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소중한 영화를 2번째로 다시 꺼내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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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란 현실 속에서 우리가 꿈꾸는 것들



사실 영화의 서사는 단순하다. 제목이 곧 스포인데, 정말로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이야기다. 곧 폐간될 시사저널 사진잡지 '라이프'에서 일하는 정말 평범한 회사원 월터가, 없어진 마지막 호의 표지 사진을 찾아 떠나면서 그가 꿈꿔왔던 여러 가지 것들이 그의 현실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다.


월터는 제목에 나온 것처럼 '상상 멍 때리기'를 자주 한다. 보통 사람들이 가끔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과 수준이 다르다. 아예 공상 속에 빠져 현실의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는 정도다. 그의 상상은 참 유치하고 솔직하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말도 못 거는 월터가 라틴계 모험가가 되어 말을 붙인다던가, 재수 없는 직장상사와 히어로처럼 싸운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이런 그의 상상은 그냥 무지막지한 상상 더미가 아니라 그가 좋아했던 영화나, 노래 같은 것들에 영향을 받는데, 감명 깊게 본 영화나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 모험 소설 들을 읽으며 한 번쯤 그 주인공이 되는 것을 꿈꿨던 우리네 모습과도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상상은 항상 그가 꿈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 내가 하고 싶은 것 같은 그의 로망과 취향이 담겨 있는 '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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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초반에 그의 상상들은 좀 당황스럽다. 장르도 제각각이고, 너무 뜬금없이 갑자기 상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항상 누군가가 멍 때리는 그에게 정신 차리라며 깨우는 걸로 그의 상상은 깨진다. 그의 상상들은 '현실'인 회사생활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철저히 '상상'으로 묘사된다. 꿈꾸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


극 초반부 영화는 이런 식으로 회사원이라는 현실과 그의 로망-취향이 가미된 상상 속 세계를 대립하며 이 둘이 확연하게 분리되어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고 꽤 긴 러닝타임 동안 이 분리가 지속된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월터가 없어진 필름의 25번째 사진을 찾기 위해, 그 사진을 찍은 모험 사진가 '숀'을 찾기 위해, 다짜고짜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현실과 상상-꿈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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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가 숀을 찾기 위해 결심을 한 후 떠나는 장면
뒤에는 실제 '라이프' 표지 사진 패러디인 월터의 사진이 있고,
MAKING OF A BRAVE MAN 이라는 글귀가 있다.



현실과 상상, 그리고 꿈



영화에서는 '현실'과 '상상'이라는 가치를 계속해서 강조한다.


처음에 현실과 상상이 대립되는 구조였을 때 '현실'을 상징하는 것은 그의 '회사 생활'이었다. 원하는 것을 맘대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구조조정 결정권자로 사무실에 새로 온 무례하고 재수 없는 상사에게 말 한마디 못하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이 시대의 '현실'이 그의 현실이다.


반대로 그의 공상에 대한 상징적인 요소는 잘되고 싶은 '세릴'에 대한 공상 즉 '사랑'과, '자연-모험'이다. 영화는 현실-상상의 대립구조를 가장 간단하게는 회사-자연의 대립구조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에서 '상상'은 '상상-꿈-사랑-자연-모험'과 같은 맥락의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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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공상은 단순히 허무맹랑한 공상뿐만은 아니다. 자신의 로망이나 꿈, 하고 싶은 것들이 그의 공상에 담겨 있다. 그런 그에게 라이프 잡지에서 일을 하며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숀'은 어쩌면 그 존재 자체가 그의 로망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보고, 겪고, 느끼고, 때론 사진을 남기는, 월터의 현실과 반대되는 인물.


바로 그 '숀'을 찾으러 월터가 여행을 떠나면서, 월터의 현실-상상의 대립구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저먼 곳의 대자연이 그의 현실로 들어오고, 아마 살면서 거의 만날 기회가 없을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예기치 않는 마치 상상 같은 다이내믹한 일들을 '현실'로 겪는다. 그가 숀을 찾아 떠난 2번째 여행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대충 이해한 단어인 '작은 거인', '라즈퀴위', '워로드'를 직접 겪는 장면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에서 이 단어들의 글씨를 같이 보여준다. 글로만 존재했던 단어를 직접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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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현실'이 된 상상 같은 다양한 일들은 그가 회사에서 상상했던 것만큼 터무니없게 완벽하지도 쿨하지도 않다. 그린란드로 가겠어! 라며 멋있게 비행기를 타러 가는 장면 속 열정 넘치고 멋있는 노래와 라이프지 슬로건이 화면에 보이지만, 막상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 그 노래는 갑자기 '뚝' 끊긴다. 상상처럼 완벽하고 쿨-하지 않다고, 이것들도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월터의 여행은 실제로는 다이내믹하지만 꽤나 '현실'적이다. 맥주집에서 만난 술에 절은 헬리콥터 조종사와 시비가 붙기도 하고, 금방 풀릴 줄 알았던 일은 잘 안 풀리고, 눈앞에서 숀을 놓치기도 한다.


기존의 '현실'-회사생활과 연결되는 양복, 가방, 엄마의 케이크, 동생과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쭉쭉이 암스트롱(ㅋㅋㅋ) 인형, 파파존스 등과 같은 요소들을 그의 여행 중간중간 등장시켜 이 상황도 '현실'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그의 여행이 생각보다 멋지지 않은 현실적인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뒤로 갈수록 월터의 '공상'은 줄어들고 그가 알고 있는 기존의 '현실'을 상징하는 소품들도 하나둘씩 없어진다는 것이다.


바다에 잘못 떨어져 상어에게 먹힐 뻔할 때 양복과 가방을 버리고, 쭉쭉이 암스트롱을 롱보드와 바꾸고, 돌아가신 아빠가 엄마에게 주신 피아노를 판다. 그가 오랫동안 일했던 라이프지도 이제는 온라인 잡지사가 되어 버렸고, 그도 결국 라이프지에서 해고된다. 그에게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던 것들이 과거의 것이 되고,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상상을 하지 않는다.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이 '현실'에서 할 수 없는-그렇기에 '공상'으로만 가능했던 것이 '공상'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만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결과는 결코 알 수 없고, 항상 세상에 타협하며 살 수밖에 없지만, '현실'이란 정해져 있는 벗어날 수 없는 새장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겪는 이 모든 것이 '현실'일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되었다.


영화 초반 정반대 같아 보였던 월터와 사진 속 숀과 달리, 숀을 드디어 직접 만났을 때 한 화면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정말 비슷해 보였다. 단순히 회사 밖에서 여행을 해서 혹은 장황한 대자연 속에 있어서가 아니라, 진짜 자신의 선택대로 어떤 틀 없이, 지금 매 순간이-모든 선택이-모든 경험이 현실이라는 것을 아는, 그렇기에 주체적인 사람이 된 월터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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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장면


이것이 영화의 끝에 결국 숀을 만나고 사진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해고되어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 처한 월터가 과거의 월터와는 달리 더 편안하고 더 단단하고 멋있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현실-상상의 대립구조로 시작한 영화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을 뿐인 한 명의 '월터'로 갈무리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에 얽매이는 월터도, 꿈만 꾸며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도 못 거는 월터도 아닌, 자신의 감정과 꿈에 대해 솔직한,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월터로 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상상과 똑같이 완벽하거나 해피엔딩만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꽤 멋지게 자신의 상상대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는데서 나오는 단단함을 그는 이제 가지고 있다. 그의 '현실'은 더 이상 '상상' 그리고 '꿈'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의 '꿈'은 더이상 저 멀리 '현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의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틀'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짜 현실의 전부일까. 어쩌면 우리를 가두는 하나의 틀이 되고 있지 않을까.




나에게 이 영화가 소중한 이유



나는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다. 영화에서 꽤 자주 묘사되는 과거를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되는데, 내가 아끼고 보고 듣는 지금의 것들이 과거의 것이 될지라도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지금을 사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많은 것을 선택하고 경험하고 보고 느끼고 성장하는 것. 이런 것들에 큰 매력을 느낀다. 과거가 되어버릴지라도 우리의 모든 '지금'은 경험이 되어 나의 양분이 된다. '경험'은 다른 습득과 질적으로 다르다. 강력하고 확실하다. 현실에서만 겪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경험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통해 지금 이순간으로 와, 또 꿈을 향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멋지다. 그 생동감이 그 현실감이 참 대단하고 멋지다.


영화 속 등장하는 '라이프' 잡지는 유명한 시사저널 사진잡지로 유명했었으나 실제로 결국 2007년에 폐간되어 온라인 잡지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의 것들을 많이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인형, 피아노, 필름 사진, 곧 폐간될 시사저널 사진잡지. 요샛말로 아날로그라고 하는 것들이 과거의 것이 되어버리고 그걸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인상적인 것은 그것들을 소중히 하면서도 흘려보내고 지금 여기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월터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체로 얼마나 대단한지도 보여준다. 그토록 찾아해맸던 '삶의 정수'라던 마지막 표지 사진이 매번 공상을 하며 현실을 벗어나던 월터 자체라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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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꿈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자연과 여행을 보여줬지만 영화는 결코 일상의 밖에서-현실의 밖에서만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월터가 여행의 과정에서 변화하고 깨닫지만 결국 영화는 그의 일상, 그리고 그의 현실로 돌아오며 매순간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나에게 유독 큰 감동을 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틀을 씌우지 않으며 '현실'에 부딪치고 시간은 항상 흘러가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월터를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지금 이순간의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가 우리 생각보다 얼마나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다. 과거의 영광은 빛이 바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쏟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지금의 것이 아닌 바래버린 지난 추억이 될지라도, 나의 시간들이 기억너머로 흐릿해질지라도, 그럼에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살아있다.


나의 존재는 우리가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존재의 존재'를 잊어버리지만, 생각해보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바로 지금 여기서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고, 행동을 할 수 있고, 준비를 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다.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때로는 꿈을 이룰 수 있다. 지금 누울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고, 달릴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다. 우리가 매 순간 하고 있는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가능성의 증거다. 아주 쉽게 가장 확고하게 눈에 보이는 증거 존재의 증거.


이 얼마나 대단한가.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어떤 것이든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그것이 참 대단하지 않냐고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를 응원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 속 등장하는 '라이프'지의 슬로건

실제 라이프사의 슬로건을 변형했다고 한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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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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