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물지 않는 상처’에도 미(美)가 존재하는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3.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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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오사카에 방문해서 촬영한 사진.

보랏빛 하늘이 참으로 오묘했다.




0. 진부하지만, 그만큼 사랑받는.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동원되는 서사 구조가 있다. ‘성장물’이 그것이다. 주로 작품의 주인공은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 온갖 시련을 겪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모든 것을 극복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진흙탕에서 꽃밭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구조가 진부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러한 구조를 활용한 수준급의 작품을 감상한 후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인생을 살아갈 교훈을 얻기 위해” 꼭 보아야하는 작품이라며 말이다.


보는 사람이 눈물이 날 정도로 이런저런 고생을 다 겪다가, 후반부에서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룬 주인공을 보며 크나큰 감동을 받는다. 실제로 국내외 유수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영화 및 소설, 드라마 등에 활용하며ㅡ소위 ‘인간승리’를 구현하여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1. ‘아픔’은 미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 ‘인간승리’가 이러한 서사 구조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 때 주인공은 첫 번째로 어떠한 형태로든ㅡ신체적, 정신적, 환경적인 측면에서 등등ㅡ아픔을 지녀야 한다. ‘고칠 수 없는’, ‘회복이 불가능한’ 등의 절망적인 수식어가 붙으면 붙을수록 좋다. 최대한 난관에 처한 상태여야 이후에 성공을 이루어냈을 때 더욱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주인공은 감히 이룰 수 없는, 이루어내기 매우 힘든 무언가를 꿈꾸어야 한다. 세 번째로,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 설사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말이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주인공에겐 행복할 결말을 맞을 ‘자격’이 생긴다. 이러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주인공이 견뎌야 할 아픔은 당연한 과정이며, 성공을 달성한 후에 미적으로 승화ㅡ다시 말해, ‘미화’가 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아픔은 미화가 되어도 괜찮은가? 찬란한 성공을 위해 그 당시의 그들이 체험해야 할 절망과 시련의 상황은 ‘당연하다’는 말로 넘길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가지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까지는 당연하다. 하지만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 속에서 때로는 끔찍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심하면 꿈을 이룬 다음의 자기 자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일까. 아름다운 서사의 일부로 마땅히 인정하는 것이 그들에게 실례가 되진 않을까. 

   


 

2. 흉터는 길게 남는다


 

아무리 영광을 손에 쥔 다음에도, 그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서 남은 흉터는 지워지지 않는다. 아니 지워지더라도 그 시간은 아주 길다. 흉터가 남을 정도의 깊은 상처가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예시로 들어보도록 하자.

 

영국의 한 탄광촌에 사는 11살 소년 빌리는, 당시에 남자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발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발레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며 빌리는 매일매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발레 연습을 해 나간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와 형은, 탄광촌에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가난하다. 이들 가족은 빌리를 지원해줄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또한 아버지는 ‘남자답지 않은’ 스포츠인 발레에 반감을 가져서, 빌리에게 발레가 아닌 복싱을 배우라고 위협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빌리에게는 시련이다. 자신에게 닥쳐온 고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발레를 포기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들에게는 ‘꿋꿋하고 강인한’ 것으로 비추어졌지만 이를 감내해야 했던 아이의 마음은 무너졌을 것이다. 적어도 고통이 존재하는 그 순간은, 아이에게는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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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

 


영화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빌리의 재능을 알아보면서 빌리를 위하여 학비를 대주고자 하지만, 그 역시 만만치가 않다. 함께 파업에 힘쓰던 동료들을 등지며 다시 돈을 벌어야 했고, 평생 지내왔던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자신의 아들이 화려한 무대 위에서 마음껏 재능을 펼치고 있을 동안 말이다. 능력이 다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아들의 꿈을 지지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들은 깊은 ‘감동’을 느낀다. 부모로서의 희생정신이 보여주는 그 ‘고결함’, ‘숭고함’ 때문에 말이다.


학비가 비싼 발레학교에서ㅡ빛과 따사로움이 현현하는 그곳에서 열심히 발레를 연습하는 빌리와 달리, 아버지와 형은 햇빛이라고는 한 줄기조차 발견하기 힘든 깊은 탄광 속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희생정신은 과연, 그저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로 우리가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아버지와 형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우리만의 단편적인 해석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흉터는 길게 남는다. 빌리라는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환경적인 요인과 한계, 그리고 발레를 계속하는 매순간마다도 아이를 따라다녔던, 그리고 아이의 가족들의 뒤까지 따라다녔던 ‘돈’이라는 문제. 이 모든 게 합쳐져 아주 깊은 상처를 내게 되어, 결국에 상처가 다 아물어도 흉터만은 아물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3. 그럼에도 우리는 성장 스토리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성장물을 사랑한다. 이를 다루는 작품 하나쯤은 감상하게 된다. 왜? 하나의 서사를 만들기 위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내고자 동원하는 일종의 시놉시스 같은 것인데ㅡ이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작품으로부터 감동을 받고, 여타의 감정을 체험하는가. 설사 미적인 체험이 동원되지 않았더라도, 영화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기 마련이다.

 

감히 단정하긴 어렵지만, 필자는 이런 이유를 들어 본다. 어쨌든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성취하려는 무언가가 크고 작든 간에, 사람은 평생 제자리에만 있을 수 없다. 결국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야 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차이점은 이 과정을 즐기느냐, 혹은 싫어하느냐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빌리 엘리어트와 같은 성장물을 다룬 작품을 볼 때,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플롯에 친근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혹자는 ‘진부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언제 그 목표에 도달할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성장이야기를 다룬 여러 작품들을 보며, 그가 마침내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떠한 형태로든 울림을 느낀다.


아마 그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이 수반된 울림을 많이 경험하기에 주인공의 상처 역시도 이의 일부로 포용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번 글을 작성하는 에디터조차도, 아물지 않는 상처와 미를 결부시킬 수 있냐고 물으면서도 이러한 플롯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울림’을 체험하니 말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이와 같은 반문을 던져보는 것도ㅡ우리의 감상을 다채로이 할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의견을 내는 바이다.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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