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것, 하거도 [공연]

진짜 삶이란 어떤 것인가
글 입력 2019.03.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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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를 극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번 연극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새롭다. 줄거리만 보았을 때는 그 연극을 어떻게 눈앞에서 구현시킬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막상 연극을 보러 극장에 들어가 앉으면 단편적인 장소와 제한된 시간으로, 엄청난 시간을 축약해서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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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도라는 곳

<하거도> 극 내에서 주된 배경은 법원과 하거도 두 장소였다. 법원에서 심문을 당하는 큰 틀 안에서 회상장면마다 하거도 내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보인다. 피의자 하거도를 심문하는 법원과, '하거도'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그 말이 사실인지를 따지며, 하거도 내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보여주는 하거도 두 가지 장소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 법원마저도 사실은 <하거도>의 주인공 '하거도'의 가상 세계일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법원에서 검사와 법원장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도 원래는 죄수복을 입고 있었고, 방청객으로 앉은 사람들 모두 죄수복을 입고 있다. 재판에 진지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 가장 진지한 사람들은 하거도와 검사밖에 없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하거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억울한 삶에 대한 한탄으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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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도라는 사람



'하거도'는 하거도에서 태어나서 하거도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말을 할 수조차 없는 환경에서 자라 그는 하거도에서 말을 하면, 자기마저도 더럽혀질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똑같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꿋꿋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모두 똑같게만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경우, 전자의 경우에는 자신은 타인과 다르다는 우월 의식을 가진 것이고, 후자는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치가 격하되거나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전자와 후자의 두 가지 상황은 전제 자체가 다르다.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과, 경멸하지 않는 사람. 거기서부터 두 가지의 논리가 펼쳐진다. '이해할 수 없다'와 '이해는 못 하겠지만, 조금 알 것 같아.'의 차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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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도의 친구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거도는 하거도의 주민들과 발전소 내의 죄수복 입은 사람들을 모두 경멸하고 있었다. 강제 노역소 속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과 같아지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외로웠다. 인생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딱 한 사람,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그를 구해준다. 하거도는 유일하게 그 사람을 친구라고 부른다. 섬에서 도망치자고 할 때도 친구를 데려가고 싶어한다.

친구는 발전소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 발전소 밖이 어떤 세상인지를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세상은 바뀐다.

그런데 극의 마지막 부분에 친구가 갑자기 하거도의 아들로 바뀌어버린다. 교도관에게 아첨하고, 자신을 내어주고 그러면서 먹을 것을 받아먹고, 하거도의 상태가 어떤지 일러바치며 온갖 이득을 취하는 하거도의 아들이, 사실은 하거도의 친구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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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도 아닌 하거도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던 삶. 누군가 주는 별것 없는 밥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사라고 생각하고 먹고,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동료들에게 돌을 맞아 죽어야 하는 삶은 어떤 것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러면 극에 나온 대로, 원래는 자유를 누리다가 갑작스럽게 노예가 된 삶이 괴로울까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삶이 괴로울까. 자유가 있다가 없어진 삶이 견디기 힘들 것인가, 애초에 규칙으로 가득 찬 삶이 힘들 것인가. 그것이 비교가 가능해지는 때는, 자유가 애초에 없던 사람이 '자유가 있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작된다.

하거도는 그런 비교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여기 안에 사람들은 여기가 지옥이라고 생각하지만, 바깥도 사실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하거도의 발전소는 우리의 삶을 축약해서 물리적으로 한곳에 모아놓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평생 살면서 느낄 괴로움과 두려움, 공포, 부정적인 감정들, 힘듦, 등 온갖 육체적인 고통을 그 작은 공간에 다 모아놓은 것이다. 발전소 밖에 있는 우리도 사실은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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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은 <하거도>라는 연극을 전부 보여주지는 못한다. 쓰고 싶은 것만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의 머릿속에 담긴 것을 쓰고 있기에 <하거도>를 직접 관람하면 분명 나와는 다른 것을 느끼고 다른 것을 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 선과 악에 관한 이야기, 부정부패, 비리들, 잘못된 법, 등 아주 수많은 것을 다루라고 하면 다룰 수도 있고 그것을 글로 쓰라고 하면 쓸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하거도>라는 연극에서 이번에도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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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볼 때 답답해하면서도 계속해서 다음 편을 보게 된다. 암 걸리는 주인공을 욕하고, 바보 같은 주변 사람들을 욕하고, 자기 트라우마 때문에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을 욕한다. 좀 더 좋은 해결방안이 있는데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들을 욕하기도 한다.


진짜 화가 난다면 아예 그 드라마를 보지 않겠지, 그런데도 당신이 그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정말 할 일이 없어서라거나, 아니면 해야 할 일에서 회피하기 위해서라거나, 또는 진심으로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계속해서 보겠지.


<하거도>와 같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부류의 작품을 보다 보면, 내가 살아가다 마주친 문제들은 사실은 별것 아니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아주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의 문제들은 사실 미뤄질 수도 있고, 쓸모없을 수도 있고, '고차원적'이라는 핑계 하에 사실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이라는 사실도.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쥐꼬리만 한 음식을 먹고 버티는 것을 보며 나는 사실 먹지 않아도 될 것들을 얼마나 많이 먹고 있는 것인지를 느낀다.


사람 인생의 목적은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이 없다면 자기가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많다. 모든 사람의 목표는 다르고, 삶의 목적이 살아가는 것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살아감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생의 의미는 남다르다.


바보같이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같은 문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몇 년이 지나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정말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작품을 보기를 추천한다.


아마 그렇게 하더라도 쉽게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추천하는 방식이 자기 삶의 문제에서 회피하는 것일지라도, '문제'란 것은 사실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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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도
-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


일자 : 2019.03.08 ~ 03.17

시간
화-금 20:00
토 15:00, 19:00
일 15:00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작
극단 작은신화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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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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