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는 결국 나가지못했다, <굴레방다리의 소극>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글 입력 2019.03.17 17:1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01 두산아트센터에 가다



연극을 혜화가 아닌 종로 쪽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종로 5가는 명절 전후로 전, 그리고 가끔씩 육회를 먹고 싶을 때 광장시장을 들르는 것 말고는 간 적이 거의 없는데, 이렇게 연극을 보러 오다니 새로웠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건데 두산, LG 등 기업에서 문화예술 향유를 도모하고자 이렇게 아트센터를 설립하고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아트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기업의 이미지,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떼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점심밥을 먹고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서 바로 옆 두산아트 갤러리도 들렀다. 황수연 작가의 <허밍 헤드>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전시에 대한 브로슈어를 갤러리를 나올 때 뒤늦게 읽기도 했고 작품 자체가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흥미는 딱히 없었다. (점점 더 미술에 흥미를 잃어가는 듯하다...)



KakaoTalk_20190317_132744913.jpg
두산아트센터에 이렇게 밟을 수 있는 피아노가 있다.
귀엽고 특이해서 한 컷.



02 굴레방다리의 소극



일단 연극 무대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프리뷰에서도 썼었는데, 무대가 전체적으로 노란 계열의 소품들로 꾸며져서 지하방의 퀴퀴한 느낌이 있다.


저번에 연극 <하거도>를 보고 이해가 안 돼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 연극을 보러 갈 때는 내가 쓴 프리뷰를 다시 읽고 갔다. 제발 연극이 이해되길 바라면서.....


다행히도 연극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처음에 멀티맨 배우들과 함께 극중극이 열심히 굴러갈 때는 좀 헷갈리기도 했지만, 극의 이해를 돕는 소품들도 굉장히 많고, 각자의 심정을 그대로 말하는 대사가 많아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항상 느끼는 건데 내가 보러 갔을 때 캐스팅 배우들은 정말 극중 역할에 어울리는 것 같다. 연극을 보고 나서 다른 블로그들의 연극 후기를 보면 같은 역할의 다른 배우분들의 사진을 보게 되는데,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내가 본 회차의 공연에서의 배우분들이 제일 그 역할에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다른 분들의 연기를 본 것이 아니라서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굴레방다리의소극_공연사진1.JPG
 


이 연극은 (노답) 아버지와 소심한 아들 둘이 지하방에서 소극을 펼치는 것으로 진행된다. 가족끼리 펼치는 연극이라는 점에서 아들들이 여자 역할, 어린아이 역할을 함께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중역할 연기를 보면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중간중간 아버지가 소시지를 던지고 쌓여있는 깡통 캔을 밟을 때에는 살짝 짜증이 날뻔했다. 깜짝 놀라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데, 무서워죽겠는데 자꾸 뭘 던져서 깜짝 놀라게 하니까 너무 화가 났다.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꼽자면 두 아들과 마트 여직원이 합심해서 닭도리탕? 닭볶음탕?에 퍼런 독약을 찔끔찔끔 넣는데, 나는 정말 먹으면 죽는 독약인 줄 알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죽이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철도 먹고, 두철도 먹더니 죽지도 않고 그냥 흐지부지 끝이 났다. 아버지를 없애려는 노력도 허상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인지, 애초에 아들들이 맨날 똑같이 흘러가는 극의 방향을 바꾸고자 해서 '독약'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넣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극이 끝을 달려갈 때, 한철은 다그치듯이 마트 여직원에게 두철과 함께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마트 여직원은 불안에 떨며 하늘에 맹세하고 함께하겠다 하지만, 결국 탈출의 기회가 생기자 냅다 줄행랑을 친다.  나중에 두철을 다시 만나러 갔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왠지 아닐 것 같다.


삽시간에 일어난 비극을 지켜봐야 했던 두철은 결국 지하방을 나오지 못한다. 충격에 헤어 나오질 못하다가, 극을 알리는 트로트 음악을 다시 틀고, 누런 박스를 혼자 들고, 아버지가 때렸던 쟁반으로 스스로를 내려친다.


유리병 속의 벼룩이 바깥에 나왔을 때 제 높이만큼 뛰어오르지 못하는 것처럼, 두철은 지하방 바깥의 세상이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현실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지만, 억압에 길들여져, 익숙함을 잃지 못하고 이내 포기하고 마는 우리들의 모습(정확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잠시나마 유일하게 의지를 했던 마트 여직원에게마저 참혹한 가정사를 드러내버렸으니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고 느꼈을까. 공감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의 비극인 것 같다. 평생 함께할 수밖에 없을 줄 알았던 '비닐봉지'가 어두운 무대에서 강력한 조명을 받고 극은 마무리된다. (가장 긴장감이 고조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KakaoTalk_20190317_132745868.jpg
 


03 극장을 나오며



극장을 나오니 '어우 해방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했던 대로 연극이 전체적으로 밝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보는 내내 답답했기 때문이다.


필리핀 출신 마트 여직원의 어눌한 한국말로 잠깐잠깐 웃을 수 있을 때 말고는 (정말 유일한 정상인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감정은 흥미진진한, 스릴 넘치는 긴장감이 아니라 정말 답답하고 누군가 나를 억누르는 듯한 압박감의 감정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고속도로 탈모의 두철도 불쌍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의미 없는 트로피에 집착하는 아버지도 어이없었다. 게다가 죄 없는 마트 여직원에게 "요리.... 할 줄 아나?" 라고 할 때는 극강의 사이코패스를 보는 듯했다. (두 번이나 말해서 정말 싫었음.. 으)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연극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끝이 찜찜하고 답답한 연극은 신입생 때 처음 보았던 연극 이후로 처음이다. 배우들이 거의 다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황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케이스(산사람은 살아야지!...).


두철은 연극의 막이 내리고 나서도 끝끝내 평생 지하방을 나오지 못했을까?


그 무엇보다도 해피엔딩이 절실히 필요한 연극이다.




전예연.jpg


[전예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