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변하지 않는 외로움과 부끄러움 <Shame> [영화]

글 입력 2019.03.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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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영화다.

자주 찾고 싶지는 않지만 잊을만하면 떠오른다. 브랜든의 낮고 그르렁대는 목소리와 씨씨의 노랫소리가 그립다.

그녀가 불렀던 New york New york은 원곡보다 흥겹지 않지만 가장 좋아하는 버전이다. 노래를 부르며, 들으며 눈물이 고이는 두 사람의 눈빛이 따스하면서도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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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과 씨씨 모두 중독자다. 섹스중독자와 관계중독자라고 불러볼까. 둘은 사람을 정반대로 대한다.

오빠인 브랜든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섹스에 빠져있다. 일은 거뜬히 잘 하고 사람을 사로잡는 법도 안다. 잘 아는데 이게 감정을 이성으로 배운 사람 같다. 씨씨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뭐든지 내줄 수 있을 정도로 관계에 빠져 있다. 자기 앞가림은 못하는 편이고 이별당하거나 거절당했을 때 드라마틱하게 감정이 변해서 자해로 이르기도 한다.

이들에게 중독은 결핍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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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고 미쳤지만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이다.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이유나 설명은 없지만 그들은 계속 고통 속에 허덕인다. 중독자라고 해서 바보는 아니니까.

자신의 모습이 혐오스럽고 지긋지긋해서 새로 시작해보려해도 늘 제자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싫어하면서 내는 상처가 그렇게 쌓여가지만 이걸 아는 사람도, 도울 사람도 없다. 작은 자극에도 반응해버리는 이들에게 세상은 인내심을 길러주지 않는다.

그들을 나약하고 의지가 없다고 비판하고 싶지 않다. 타인의 마음은 잠깐 즐길 때 빌리기는 쉬워도 말없이 바라볼 만큼 오래 빌리기는 어렵다. 그런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자신들은 더 한 것들을 하면서 괴로워하지도 않는 세상 속 사람들이 훨씬 더 야속했다. 여태까지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증명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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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과 매달리는 것 중 무엇중 어느 쪽이 더 괴로울까. 씨씨는 결국 브랜든의 변태같은 상사와 하룻밤을 보내고 매달렸다. 브랜든이 그런 씨씨에게 말로만 미안하다, 바뀌겠다 하지 말고 행동하고 변화하라는 말이 동생에게만 하는 소리 같진 않았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진 않지만 그야말로 혼자서 속으로 질식할 것 같은 삶을 살지 않는가. 일을 멀쩡하게 잘하는게 대단할 정도로 섹스는 그의 머리와 컴퓨터와 방을 채웠고 매일 아침 그는 모든 걸 잃어버린 표정으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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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브랜든의 말에 동의한다. 진지한 사이는 끝이 나지 않던가. 아무리 깊어도 사랑의 결말은 영원하지 않다. 변하면서 상처를 주고 받는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가.

씨씨의 말에도 동의한다. 헤어지고 떠나가는 것은 언제 겪어도 마음이 아프다. 매달려서, 내가 노력해서 좀 더 오래갈 수 있다면 자존심이, 질척거림이 대수인가. 이 둘의 생각이, 외로움의 허기를 달래듯 온기와 살결을 좀 나누는 게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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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한숨이 나오고 마음을 찔러오는 것은 왜일까. 이게 아니라고,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았다고,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냐고, 우리가 찾는 외로움의 답은 여기 없다는 걸 목도하면서도, 번번히 반복되는 그 과정.

변하지 않고 채워지지 않은 외로움과 채우고 싶지 않은데도 넘쳐 흐를 듯한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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