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을 소유한다는 것 [도서]

책을 샀다. 아직 읽지는 않았다.
글 입력 2019.03.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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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샀다. 아직 읽지는 않았다.



메시지가 왔다. 주문한 책이 집을 향해 배송되는 중이란다. 기대와 설렘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배송 추적을 눌러본다. 마침내 초인종이 울린다. 택배 박스를 뜯고 비닐 포장을 뜯는다. 상자 안에 든 책 몇 권에 기분이 좋아진다. 포장을 잘 뜯은 책들은 그 새것임이 자명한 반짝이는 책등이 잘 보이도록 책장에 꽂아 넣는다.


시내를 걷다가 중고서점으로 들어선다. 단단하고 색이 예쁜 뱃지들과 책갈피,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노트들을 구경한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니 겉표지가 보이게끔 누워있는 책들이 보인다. 눕혀 진열된 책들은 꽂혀있는 책들보다도 어쩜 더 매력적이다. 제목을 훑어본다. 마음 든다면 목차까지도 뒤적여본다. 한 권을 집는다. 조금 더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는 빽빽하게 책장에 꽂힌 책들이 보인다. 달리 찾고 있는 책은 없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샅샅이 훑어본다. 한권을 뽑는다. 살까 말까 조금 고민하다가 가격을 본다. 커피 두 잔 값도 채 안 되는 가격이다. 책을 산다는 생각에 지출에 대한 죄책감도 전혀 없다. 두어권 끌어안은 책들을 구매한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온다. 역시 책등이 잘 보이도록 책장에 꽂아 넣는다.


책을 많이 읽느냐 묻는다면 애매한 웃음으로 질문을 넘기겠다. 읽다가 중도에 그만 두는 책이 끝까지 읽는 책보다 더 많다. 조각 조각 읽는 경우까지 합하여 달 평균 1.25권 정도 읽는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근 일년간의 통계로는 그렇다. 애매한 숫자다. 많이 읽는 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책을 안읽는다고 하기엔 억울한 숫자다. 모두가 매년 다시 다짐하는 새해 계획이 있을텐데 나의 경우에는 독서다. 올해엔 꼭 한달에 두권 이상 읽어야지. 2019년 1월, 그렇게 다짐했고 벌써부터 달성이 요원하다.


그러나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한다. 올 해 들어 10권의 책을 샀다. 그것들의 거의 대부분은 구매 후 책장에 꽂힌채 아직까지 그 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죄책감을 느낀다면 글쎄, 내 돈 주고 샀는데 읽든 장식용으로 쓰든 그건 내 마음인 것이 아니냐며 퉁명스레 대꾸할 수도 있다. 혹은 산 책은 언젠가 읽지 않겠느냐며 아직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을 뿐 다 읽을 것이라며 변명할 수도 있겠다. 안 읽은 책들에 대해 말할 순 없다. 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야기하겠는가? 그건 마치 보지 않은 그림, 보지 않은 영화, 듣지 않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결국, 이 글은 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나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여기, 나의 마음을 구매로 움직인 10권의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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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철학> _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_ <그을린 예술> _ <나는 뇌가 아니다> _ <사람, 장소, 환대> _ <침묵의 봄> _ <A Tale of Two Cities> _ <철학의 이단자들> _ <합리적 의심> _ <디디의 우산>



책을 소유한다는 것 _ 충만함과 죄책감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혐오와 불안감, 무교양주의 그리고 예술의 지향점에 대한 의문과 맞닿아 구매한 책이 있다. 단순히 추천을 받아 구매한 책도 있고, 원서 이용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구매한 책도 있다. 딱딱한 하드커버의 만화책이라서, 표지의 탱글한 젤리 푸딩이 보기 좋아서, 작가가 유명해서 구매한 책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어 구매했다는 사실이다. 읽는 것은 대여할 수도, 전자책으로 읽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실물을 소유하고자 했을까? 책을 읽을 땐 반드시 밑줄을 그으며 읽는 버릇이 있다거나, 전자책은 눈이 시려워서 싫다거나 하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실물을 소유한다는 데에는 그 아래 묘한 이유가 하나 숨어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되고 싶고, 이 책의 내용을 소유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책을 사고 읽지 않았을 때 내게 충만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나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만화책을 사 놓고 읽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위 있어 보이는 것 같은 철학책을 사 놓고 보란 듯 책장에 꽂아 놓았으나 읽지는 않았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은 내가 만들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내가 다른데서 오는 자책이다. 그런데 정말로, 나는 왜 책을 읽을까? 왜 책을 읽은 사람이 되고 싶을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일까?


   

 

책을 읽는다는 것 _ 함께 읽기



이 현실이 게임이라면 책을 읽을 이유가 더 명확할 것이다. 내가 책 한권을 읽을 때마다, 적어도 내 능력치에서 [독서]나 [지력] 같은 것이 1씩 올라가는 것이 눈에 명백히 보일 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책이 시험 범위라면 점수로 보답받을 것이다. 전공 분야와 관련이 있다면 자소서에 한 줄 적어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에세이나 논문을 쓰기 위한 참고자료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시험도 보지 않고, 관련된 글을 쓸 계획도 없고, 자소서에 적을 일도 없다면? 그렇다면 책을 왜 읽을까? 책 읽기의 순수한 재미를 찾는다면 그거야말로 좋은 일이겠지만 현실에는 책보다 재미있을 것 같은 일들이 너무 많다.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책 말고도 다른 매체들도 많다. 그것들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것만 같은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책을 읽으라고 하고, 읽으려고 한다. 적어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을 동경한다. 다른 매체에 비해 정보와 생각을 더 깊이 있게, 가득 담을 수 있기 때문일까? 대체 책은 뭘까? 왜 책은 특별한 대접을 받을까? 말했듯이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매해 독서를 다짐하지만 매해 흐지부지되고 마는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니 책을 읽은 오늘의 내가 그렇지 않은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가지, 책을 조금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안다. 함께 읽기다.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현실에서는 녹록치 않아 보일지라도 감상을 나누는 경우에서만큼은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영화,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은 그냥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함께 보고 난 뒤 이야기 나누는 것은 더욱 재미있으니까. 책도 다를 것 없다. 운이 좋게도 내 주변엔 독서와 가까운 친구들이 몇 있다. 그들은 내가 한달에 한 권이라도 읽게 만드는 감사한 원동력이다. 어렵지 않다. 독서가 취미인 친구가 가까이 있다면 더 쉽겠지만 없어도 문제없다. 취향이 맞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는 친구들에게 같이 책을 읽자고 넌지시 말을 건내보자. 새해이거나, 새학기 이거나, 무언가 새로운 다짐을 할만한 시기라면 더욱 알맞은 타이밍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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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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