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처럼이라면 기대해볼 만 하다 [문화전반]

빈티지를 입는다는 것은
글 입력 2019.03.2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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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백화점을 가면, 그곳에서 파는 의류들은 비슷한 인상을 풍겼고 뭔가 전형적인 스타일의 옷들이 많아 쇼핑 하는 재미가 없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맞는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의류가 많아서 둘러봐도 비슷해 보여 어떤 옷을 고르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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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화 된 스타일



예전부터 한국 사람들은 비슷하게 옷을 입고 유행에 민감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행에 민감해서 그 시즌에 유행하는 아이템은 각자 옷장 속에 한 벌씩 있고, 같은 아이템을 장착해 복제한 듯한 느낌을 주는 사진도 유명했다. 물론 유행이라는 것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유달리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국인의 옷 스타일은 개성이 없고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들의 시선에서도 한국인들은 옷을 잘 입지만 어딘가 모르게 획일화된 경향이 있다는 외국인 교수들의 논문이나 기사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경향이 아예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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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옷차림을 분석해 결론을 낸 것은 아니지만,왠지 유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문화를 보며 한국 사람들은 개성이 없는 옷차림을 많이 하고, 남을 의식해 튀기를 싫어한다고 여겼다. 나는 유행의 흐름에 반항하려고 일부러 유행하는 아이템은 불매하고 타국의 패션 스타일을 참고하며 옷을 입기도 했다. 한국사람들의 스타일은 남의 눈에 튀기를 싫어해서 다양하지 못하다고 속으로 불평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된 데에는 의류 시스템이 지대한 영향을 줬다. 가내 수공업을 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현재의 옷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분명 옷을 어딘가에서 구매하면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꼭 존재한다. 하나밖에 없는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거나, 주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회적 시스템 역시 한몫했다. 한국인들은 학생 때부터 공부라는 하나의 방식에 길들어져 자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잘 없었고 공부라는 하나의 가치관만을 주입당하며 교육받았기 때문에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탈선하는 길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대학교에 가면 다 꾸밀 수 있다고 희망을 주기는 했지만, 억압되어있던 개성이 갑자기 자유로워진다 해서 숙련된 감각으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므로 사회적으로 획일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또, TPO에 맞는 옷차림은 언제 어디서든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예절을 중요시했던 오랜 사상적 특성으로 어떤 상황에 맞는 옷차림이 유난히 강요되었던 탓도 있다. 그렇기에 결국 다소 획일화된 스타일이 많았던 것을 온전히 옷을 입는 개인의 능력부족 탓을 할 수는 없다.




다양성의 확대



다행이게도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 곳곳에 심겨 있던 획일화 된 문화를 고찰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런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사람도 늘어 갔는데, 지겨울 만큼 영향이 막대한 SNS와 매체의 발전으로 다양성을 표출하는 시도가 늘더니 지금은 자기를 표현하고 의견을 내는 것이 적극적으로 환영받고 있다. 이제 많은 스타일을 다양한 경로로 접하게 되어 자연스레 안목을 가지며 진짜 자기만의 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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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개인 마켓(SNS마켓, 블로그 마켓 등)을 열어 어떤 스타일을 처음으로 선보이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고 모방하며 다시 그것을 재모방해 스타일을 다양하게 확장해가면서 선택과 공유의 폭 역시 넓어졌다.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가 도래한 듯 다양함이 표출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인의 스타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스타일과 방식에 재미를 발견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 봐도 자기만의 해석을 담아 옷을 입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곤 하는데 그럴 때 그 사람의 가치관을 엿보는 것 같기도 해서 참 재미있다. 가끔 속으로 감탄할 때도 있다. 저 아이템을 저런 식으로 소화해내기도 하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색 조합이 좋은 사람, 디테일을 잘 살리는 사람, 기본적인 아이템에 자기만의 애정이 담긴 아이템을 매치해 작은 재미를 살리는 사람, 화려한 패턴의 아이템을 멋지게 소화한 사람, 그리고 나와 같거나 비슷한 아이템을 색다른 방법으로 해석하는 사람 등 요즘은 온라인 오프라인 구분 없이 향유하는 재미가 있다.


물론 아직도 한국인들은 눈치를 많이 보고, 획일화가 있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한국인들의 미의 의식에 대해 비난하는 의견도 많다. 물론 미의 의식 자체에 대해서는 또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흐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고 그런 통념에 이번만큼은 다른 관점으로 보려고 한다. 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지금은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이고 그런 시도들, 즉 다른 사람의 다름에 대해 맹목적 거부가 조금은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빈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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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로 예전에는 세련된 것이 기준으로 작용해서 빈티지 의류를 입으면 누더기 같다는 편견이 존재했다. 내가 입은 빈티지 스타일을 보고 무작정 이상하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현재 흐름과 다른 것이 무조건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옛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뉴트로의 영향으로 빈티지 의류를 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성행하고 있다. 그런 흐름에 대해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최근에 한국의 대표적 빈티지 판매 시장인 동묘시장과 광장시장의 매출이 뉴트로 흐름으로 급성장했다는 뉴스 기사를 보며 빈티지 스타일과 의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괜히 뿌듯했다.


 




빈티지의 매력



단순히 뉴트로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빈티지를 좋아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빈티지가 매력 있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빈티지 의류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빈티지는 하루에 몇천 톤씩 버려지는 옷 중 다시 입어도 되는 유일무인한 아이템들을 선별해 재탄생한 의류를 의미한다. 그래서 빈티지 의류의 가장 큰 특징은 어디서 왔는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이 될 수도 있다.


빈티지 의류 역시 어떤 유행과 시대에 만들어진 옷이지만 그 시대가 지나갔다면, 혹은 더는 생산하지 않는다면 정말 세상에 유일무이한 옷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빈티지가 매력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점은 나와 같은 옷을 입는 사람들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고, 내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면서도 고유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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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빈티지는 발견의 발견을 거듭해 탄생하는 아이템이다. 쏟아지는 폐기의류 사이에서 한번 발견되고, 안목 있는 빈티지 의류 판매장 주인으로부터 한번 또 발견되고, 자기의 스타일에 맞는 아이템을 발견해내는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발견의 재미가 있다. 빈티지의 인기에 영향을 준 뉴트로를 유행 이상으로 긍정적인 인식을 갖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옛것을 맹목적으로 가려내지 않고 관심을 두고 재미를 발견할 준비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패션에 관심을 갖고 본다. 그리고 그런 젊은 세대들의 반응을 기성세대 역시 흥미롭게 바라본다. 빈티지도 그런 맥락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그리고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 <꽃> 처럼 빈티지도 오래 볼수록 매력을 느낀다. 최근 SNS나 개인 블로그를 통해 빈티지 의류를 사고파는 사용자들이 많아졌다. SNS라는 특성 자체는 순간의 시선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만, 빠르게 소비되는 SNS의 틀 안에서도 빈티지는 자세히 봐야 한다. 과연 얼마나 오래된 것일지, 디테일은 어떤지 등을 말이다. 어디에 헤진 곳은 없는지 확인하면서도 들여다볼수록 예쁨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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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거라면



물론 이런 빈티지를 또 하나의 유행으로 여기고 결국은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것이라고 치부되는 다르고 낯선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받는 것에 의의를 둔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이전에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태도가 유지된다면 지금으로부터 십 년 후가 기대된다. 지금과는 또 다른 재미가 가득한 세상을 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적어도 지금대로라면 자기의 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도들이 늘어날 것이다. 시도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완성형으로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것은 평생의 시간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어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서툴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시도하는 일만큼 멋진 일이 있을까.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존중받고 환영받는 시대에 희소성 있는 빈티지가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래서 빈티지를 비롯해 더 많은 별종의 것들이 인기를 누리며 인정받고 새롭게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촌스러운 것이든 좀 남들과는 다른 것이든 좋아하는 옷 마음껏 입어요. 눈치 보지 말고.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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