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문화전략

글 입력 2014.07.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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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6  27                 

 

전략의 창조



1976년  처음으로 프랑스를 갔다

유학을 간 미국 대학 캠퍼스 여기저기 게시판에 벨기에 왕복 비행기 세일이 300불이라고 붙어 있었다  파리로 바로 가는 것은 비싸니 브뤼셀이 기착지였다

서울에 계신 어머니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갔으니 간이 큰 거였고 작은 돈으로 갔는데 어떻게 버티었는지 기억에 잘 없다

그렇게 황홀한 프랑스의 문화 예술과 인연을 맺었고 뉴욕이나 와싱톤에서 6시간의 거리를 멀지 않다고 느끼며 가게 되었다
한 여름 소르본느 기숙사에 있은 적이 있지만 대개는 짧은 기간이다

한국에서 서양 문화의 미국에 가서 많은 것이 새로웠다면 거기에서 고급 문화라고 느꼈던 것은 프랑스에 가보니 미국이 아니고 프랑스의 것이었다

예술과 문화를 내가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 영향이 크다
자라난 문화 감각으로 여러 분야의 문화를 바라보게 되었다

6시간의 거리가 한국에서는 12시간이 된다
지루한 비행이지만 프랑스의 방문은 늘 설레인다

공항에 내리니 스산한 날씨, 어스름이 되는 저녁이기도 했지만 시내로 달리는데 전에 본 파리가 아니었다  왠지 빛이 바래 보였다 


왜일까

새롭지 않아서인가

세상을 좀 경험해서인가

우리나라의 힘이 그간 좀 커졌기 때문인가

 
공항서 달리며 첫 눈에 들어오는 게 건물 옥상에 보이는 삼성 LG 광고판들이다
그런 것도 관계가 없는 건 아닐 것이나 도시에 떠있는 공기가 같은 색이 아니었고 샹젤리제 즐비했던 세계 최고급 상점들은 어디서나 흔히 보는  H&M Zara Gaps Banana Republic Mark & Spenser 로 바뀌어 있었다

쌀쌀하기만 한 5월, 관광객 방문 세계 제1위의 프랑스에 아직 본격적으로 관광객이 밀려오는 계절이 아니었는데 길을 오가는 파리지엔들의 어깨가 쳐져 보였다

지난 몇 해 많이 내려간 유럽의 경제 탓이겠고 사르코지가 싫어 무조건 사회주의 올랑드를 뽑고 보니 복지에 이민에 경제 정책 등, 인기율이 5% 밖에 안되며 다시 사르코지라도 불러오게 하고 싶은 분위기로 정치적으로도 쳐져 있었다

서울의 아침에서부터 파리의 밤까지 31시간의 긴 생일을 맞으며 여러 추억이 지나간다   날이 새면 파리에 하루 있다 남불 니스로 가야 한다

하루 스케줄로 16구의 마르모땅 미술관과 오랑저리 미술관을 택했다
파리 제일 고급 주택가에 있는 마르모땅에는 일찍부터 줄이 우리 집 앞 토속촌 삼계탕 집 줄 만큼이나 긴데 인도자 신용석 선생이 예전 신문사 파리 특파원 패스를 보였는지 곧바로 티켓을 끊어 온다

콜렉터 마르모땅이 작품과 집을 기증했고 모네 Claude Monet 1840 - 1926 의 
역사적인 그림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가 거기에 걸려 있다

사진을 찍듯 사실화를 그려온 세상에 모네 등 몇 화가가 순간의 인상을 자신이 받은 느낌대로 개성있게 그리기 시작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어 비판을 받았는데 모네의 '인상, 해돋이'  타이틀로 조롱하듯 인상파로 불리우다 100년 너머 세계인의 넘치는 사랑을 받게 된다 

루브르와 오르세, 크고 대표적인 미술관들을 지나 그보다 작은 규모의 오랑저리를 간다
모네의 대작, 수련 Water Lily 8점의 넓이가 합치면 91미터가 되는데 그 작품들을 위해 지은 미술관 내 두개의 타원형 방을 가득 채운다  
언제 보아도 걸작이다

모네 상설전과 함께 기욤므와 장 월터, 일생의 콜렉숀 전시도 마침 있는데 두 콜렉터가 차례로 같은 부인과 결혼을 한 것도 흥미롭지만 둘 다 콜렉팅을 하게 된 것이 부인의 영향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모네 르노아르 피카소의 눈에 익은 작품들이 어제이듯 내 앞에 펼쳐진다

어수선한 서울과 긴 비행에 지치고 내린 파리에 쳐졌는데 갑자기 생기가 났다 
그 곳에만 있는 위대한 예술과 문화의 힘에 힘을 받는 것이다
빛이 바랬다고 생각한 파리는 오래 된 그 미술의 힘으로 빛이 나고 내 생각도 확 바뀌게 된다   유럽도 이제 별거 아니네 라고 마음 먹으려다 기가 죽는다

내가 한없이 바라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던 백범 김구의 생각도 떠오른다

1950 년 초, 프랑스에서 공부한 피터 현이나 전익상 선생의 말을 들으면 그때의 프랑스는 형편이 없었다고 한다
전쟁 후 미국이 도와줘 일어나고 70년대가 가까워져서야 오늘의 프랑스 모양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드골의 정치적 동지였던 작가 앙드레 말로의 공이 크다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된 그는 미술을 선택해 모네 피카소 마티스 샤갈 르노아르 레제 같은 프랑스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설득해 파리와 남불 방스, 쎙 폴 드 방스 등에 그들의 미술관을 의욕적으로 짓게 된다 

프랑스에만 있는 콘텐츠와 소프트 웨어를 꿰뚫어 보는 안목과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걸 알아챈 앙드레 말로는 그의 조국을 그 후 수 십년 관광대국으로 만든 1등 공신이 된다

그가 세운 문화정책과 보석을 꿰찬 문화전략, 그 문화 리더십이 위대하다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추진하여 그가 만들어낸 세기적 미술관들을 다시 돌아보며 그 예술가들의 고뇌의 창조와 말로의 통찰력과 전략의 창조가 부럽기만 하다

우리도 세계가 공감할 우리의 예술 중 문학이든 미술, 음악, 연극이든 선택하고 특화해 우수한 전략과 정책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간절하다

흔히 예산 부족을 말하나 앙드레 말로의 미래를 보는 눈과 문화전략의 창조적 발상이 당연히 먼저다 

 
2.png▲ 모네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 1891 - 마르모땅 미술관 2014 5 8

3.png▲ 모네의 수련 Water Lily 1891 - 파리 오랑저리 미술관 2014 5 8

4.png▲ 모네의 내가 좋아하는 '수련' 1891 - 오랑저리 미술관 2014 5 8

5.png▲ 장 월터와 기욤므 화상의 콜렉숀, 기욤므가 돌아가자 그 부인은 쟝 월터와 결혼했다

6.png▲ 프랑스 최대 화상으로 많은 명화를 미술관에 기증한 기욤므 초상화

7.png▲ 르노아르 - 오랑저리 미술관 파리 2014 5 8

8.png▲ 가구, 그림과 인테리어의 초미니 작품 - 오랑저리 미술관 2014 5 8

9.png▲ 앙드레 말로의 이름은 이 시립 도서관처럼 거리 곳곳에 새겨져 있다 - 201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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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뒤 꽃과 함께 " 프랑스의 위대함과 세계의 자유 사이에 20세기의 계약이 이루어지다

파리는 분열되고 박해를 받았으나 파리는 자유를 얻었노라" 라고 쓰여져 있다

세계 동상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골 동상  -  파리 그랑 팔레 앞 201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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