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쩌면 거장의 마지막 인사 - 라스트 미션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37번째 연출작
글 입력 2019.03.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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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나이 아흔 살, 연기와 연출 모두 할리우드 영화 최정상 자리에 있는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37번째 연출작 <라스트 미션>이 지난 주 국내 개봉했다.




영화 <라스트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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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미션>은 87세 마약 운반자의 이야기다. 실제 멕시코 카르텔을 위해 마약을 수년간 운반하다 90세에 체포된 레오 샤프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레오 샤프의 이야기를 <그랜 토리노>의 각본을 맡았던 닉 쉥크에게 작업을 맡기고, 본인은 영화의 제작 및 감독, 주연을 도맡았다.


영화의 원제는 ‘The Mule’이다. ‘mule’은 ‘노새’, 속어로는 ‘마약 운반책’을 뜻한다. 평생 일을 우선시했던 노인이 마약 운반을 하고 있으니, 중의적으로 훌륭한 제목이다.


한편, 국내 개봉 제목인 ‘라스트 미션’은 무언가 의미심장하다. 말 그대로 영화 속 마지막 운반 미션이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어쩌면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캐릭터 얼 스톤에게서 자꾸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노장의 모습이 보인다.




87세 마약운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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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얼 스톤은 형형색색의 백합을 재배하는 훌륭한 원예가다. 그는 백합 컨벤션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축하파티에 가느라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은 가지 않는 빵점짜리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2년 뒤, 인터넷의 발달로 얼의 백합 농장은 완전히 망했다. 게다가 평생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했던 얼은 손녀를 제외한 가족들에게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딸은 결혼식 이후 아버지와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얼에게 다가와 운전만 하면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41개주를 횡단하며 딱지 한 번 떼인 적 없는 수준급 드라이버 얼은 제안을 수락하고, 그의 마약운반 미션은 그렇게 시작된다.




노년에 결국 깨달은 것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그는 멕시코 카르텔이 들이대는 총에도 겁먹지 않고 마약 단속 경찰을 가볍게 따돌리는 여유까지 지녔다. 컨트리 음악을 흥얼거리며 화이트 샌즈를 지나고, 중서부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사먹으며 주어진 미션을 유유히 즐긴다. 그를 시종일관 감시하는 조직원 훌리오에겐 ‘인생을 즐기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압류된 집과 농장, 참전 용사들의 아지트를 되찾고, 손녀의 학비와 결혼식 비용까지 지원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얻을 수 없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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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다 사도 시간은 못 사겠더구나.”



일평생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했던 그는 노년에야 모든 걸 뉘우치고 후회한다. 고속도로 모텔의 한 음식점에서 얼은 그를 쫓고 있는 베이츠 요원(브래들리 쿠퍼)과 조우한다. 결혼기념일을 까먹은 베이츠에게 얼은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죽을 각오를 하고, 미션 도중 병상에 누운 부인 곁으로 가 임종을 지킨다. 이번만큼은 그가 일보다 가족을 택한 것이다. 비로소 얼은 부인과 딸에게 과거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고 진심을 전한다. (참고로 영화 속 딸은 실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딸인 앨리슨 이스트우드가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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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메리.”

“어제보다 오늘 더?”

“내일은 더 사랑할거야.”




거장의 담백하고 진한 연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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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답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결국 그가 이 영화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쉽게 말해 “스마트폰 그만 들여다보고 가정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간단한 메시지를 노련미로 116분 러닝타임에 따스히 녹여낸다. 오프닝과 엔딩의 수미상관, 관조적 롱테이크로 곁들인 엔딩 크레딧, 끝나고 짙게 남는 여운은 그의 전작들에서 익히 보던 것과 같다.


더불어 이 영화에선 젠더와 인종 문제까지 아우른다. 얼 스톤은 “깜둥이(Negro)”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백인 노인이다. 하지만 기꺼이 미션 도중 마주친 레즈비언의 오토바이와 흑인의 자동차 문제해결을 돕는다. 또한, 인종차별 당하는 멕시코 조직원을 경찰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이런 요소는 흔히 ‘모범적 보수주의자’라고 불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치적 면모를 잘 보여준다.




살아있는 영화 전설의 ‘어쩌면’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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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하나까지 연기하는 거장의 얼굴엔 60여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말 이 영화가 그의 ‘라스트 미션’인걸까. <스타 이즈 본>을 통해 본격적인 연출 커리어를 시작한 브래들리 쿠퍼에게 삶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스트우드를 바라보는 쿠퍼의 표정에서도 대선배에 대한 존경어린 눈빛이 물씬 묻어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본 기분이랄까. 그저 수많은 그의 영화를 보고 울고 웃었던 팬으로서 왠지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 영화가 그의 마지막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 이미 <그랜 토리노>로 배우로서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10년 만에 스크린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동년배를 연기하면서 그 또래로 보이기 위해 연구를 했다는 그는 아직 몸도 마음도 정정하다.


그러나 가족보다 일을 우선으로 삼은 과거를 후회하고 반성하는 주제에는 지난 수십 년 영화에 몰두했던 그의 자기고백이 담겨있다. 이젠 정말 그도 한숨 돌리고 싶은 게 아닐까. 살아있는 영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어쩌면’ 작별인사, <라스트 미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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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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