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특명, 밋밋한 티켓 봉투의 변신 [기타]

글 입력 2019.03.2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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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티켓을 정리하기 위해 티켓을 모아둔 상자를 찾았다. 상자를 열어보니 하얗고 네모난 것들이 가득 들어있었는지 와르르 쏟아졌다. 티켓 봉투였다. 지난 4년 동안 한 번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기 때문에 그동안 본 공연이 이렇게 많았나 싶으면서도 봉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종이와 비닐을 분리해 버리기도 정말 귀찮았고 그냥 간직하기에는 쓸모가 없었다. 어떻게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오늘도 내용물만 쏙 빼내고 다시 상자를 닫았다.



 

추억을 담아둔 포장지,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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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예매사 별 티켓 봉투.

대부분 하얀 봉투에 회사 로고가 박혀있다.



티켓 봉투의 장점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티켓의 구겨짐이나 글씨 번짐 보호, 미관상 목적 외에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예매내역이 보이는 비닐이 달린 무지였다면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었겠지만, ‘인터파크’라는 글자와 회사 특유의 디자인이 “나 공연(또는 전시) 예매했어요.”라고 분명하게 자기표현을 하고 있다.

 

봉투는 ‘예매처에서 수령할 때’ 빛을 발한다. 공연 및 전시는 영화와는 달리 일정 시간 관람을 하면 관객의 눈에 담긴 잔상과 공연장에서의 기억 외에 남는 것이 없다. 즉, 돈을 지불한 소비자가 가지는 물리적인 실체가 거의 없다는 소리이다. 제작사가 영상을 촬영하여 남기지 않는 이상 관객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티켓은 그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물건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담긴 표를 둘러싸고 있는 종이는 추억을 포장하는 일종의 관람객을 위한 예의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용도로 쓰이는 방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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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뮤지컬 '최후진술'의 티켓 봉투

(아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티켓 봉투

봉투의 디자인이 화려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추억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싸맨 종이도 늘어나 감당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보통 대극장의 경우 1,000석이 넘어가니 하루에 한 번, 한 회차 당 쓰이는 봉투의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분명 봉투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텐데 종이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극장과는 반대로 블루스퀘어에서는 일반 예매를 한 관객을 대상으로 티켓을 수령할 때 기본적으로 티켓만 주며 봉투에 담아 주지 않는다. 티켓 부스 직원에게 따로 요청해야 봉투를 받을 수 있다. 블루스퀘어에 처음 갔을 때 이런 체계에 당황했으나 막상 수령하니 불필요한 봉투가 나오지 않아 짐을 줄일 수 있었다.


몇몇 제작사에서는 관객이 사용하지 않는 봉투를 수거할 수 있는 수거함을 공연장 로비에 설치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봉투를 그대로 재사용할 수 있어 관객은 불필요한 물건을 처리하고 제작사는 봉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 상부상조의 사례이다.

 

최근에는 봉투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공연을 특정 사이트에서 예매 시 해당 작품으로 디자인된 봉투를 수령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 사이트 이름이 새겨진 투박한 디자인보다 작품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을뿐더러 관람객의 일부만 받아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티켓 봉투도 이제는 굿즈가 된 것이다.


*

  

애증의 봉투가 변형을 꾀하고 있다. 수령할 때는 관람할 생각에 설레면서도 막상 끝나고 나면 계륵이 되어버렸던 존재가 여러 방안을 통해 가치를 얻고 있다. 내용물인 티켓만 소중하게 티켓북에 담아두던 시기는 지났다. 사소한 것이라도 관람과 관련된 것들 또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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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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