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를 찾아라 [문화 전반]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를 찾는 여정
글 입력 2019.03.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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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기를 극도로 꺼렸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매번 다른 친구 집을 돌아가며 놀곤 했지만 내 차례가 올 때마다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단 많은 식구가 살아 집이 비좁았기 때문이고 거기에 더불어 버리지 않는 습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집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살기에 불편함은 없지만 보여주기엔 창피한, 그런 집이 내 어린 시절의 집이었다.

 

집이 창피하기 시작했던 그 발단은 사업하시던 아버지가 재고들을 창고 대신 집으로 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공간에 짐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집의 쓰임은 주객 전도되고 물건이 사는 집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세력은 집안을 넘어 복도까지 나아가더니, 겉으로 보기에도 흉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지금의 집은 정말 많이 나아졌다. 위의 언급한 어린 시절로부터 3번의 이사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여과과정을 거쳤다. ‘이게 아까워서 어떻게 버리느냐,’하며 쌓아두길 좋아하시던 아버지도 이젠 오히려 나서서 쓰지 않는 물건을 되팔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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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는와이프> [출처: tvn]

 


이런 집안에서 자란 내가 강제적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야 했다. 바로 복학을 위해 기숙사로 올라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가져갈 수 있는 짐은 한정적인데, 왠지 모르게 필요할 것만 같은 짐들을 넣다 보니 캐리어가 도저히 닫히질 않았다. 엉덩이로 캐리어를 뭉개며 지퍼를 힘껏 당기는 나를 지켜보시던 할아버지께서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자잘한 물건은 서울에서 사래이.’ 하시며 오만 원 지폐를 건네시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제외하기 시작했다. 매일 한 개씩 쓰기위해 챙겼던 7개의 수건 중 2개를 제외하고 수영을 하지 않을까 해 넣은 수영 세트는 집에 와서 즐기자는 마음으로 덜고 혹시 몰라 챙기는 여분의 옷가지들을 제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불필요한 짐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가방 속에 채워 넣으니 가방은 물론 마음도 한결 후련해졌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지금도 최소한의 살림으로 그럭저럭 불편함 없이 간소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적은 옷가지로 나름의 패션을 구사하고 책상과 서랍엔 꼭 필요한 것들로 차있는 여백의 미가 묻어있다. 가끔 먹다 남은 우유팩의 꼭지를 밀봉할 집게가 없다거나 옷을 걸 옷걸이가 없을 땐 바로바로 필요한 만큼만 사서 그것을 보충하고 있다. 그렇게 최소한의 물건들로 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그 와중에 미니멀라이프의 창시자급인 죠슈아 필즈 밀번은 불쑥 책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비웃는다. 그리고 난 되묻는다.



“그런 것도 미니멀라이프야?”


“그럼 미니멀라이프는 뭔데?”




절제를 통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만으로도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고 부른다.

 

미니멀 라이프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만 남기는 것을 중심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영향을 받아 2010년대 즈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여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데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미니멀 라이프의 근간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라이프, 어디서 왔니?


 

미니멀라이프는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2007년에 발생한 미국 최대의 금융위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함께 미국 경제는 침체되기 시작했다. 지속되는 장기 불황에 미국 사회 구성원들은 과거의 삶과 비교하며 무비판적인 소유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0년,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개설한 웹사이트 ‘미니멀리스트’가 혜성처럼 나타나 영미권 사람들의 세계관에 신선한 충격을 가한다. 소위 말해 당시 잘 나가던 20대 청년 두 명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를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목적이 뚜렷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이트는 개설 1년 만에 방문자가 10만 명이 넘었고 각종 언론에 집중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단샤리(斷捨離)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단샤리는 요가의 행법인 단행(斷行), 사행(捨行), 이행(離行)의 첫 글자를 딴 단샤리는 ‘끊고, 버리고, 떠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 열풍을 타고 마리 콘도의 정리법이란 책이 영미권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하면서 한국에서도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미니멀라이프’라는 카페가 2014년 말에 개설이 되어 현재까지 약 17만 명의 회원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카페에서는 ‘미니멀라이프’카페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게시판 또한 굉장히 간소화되어있다. 카페의 대문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미니멀 라이프를 제안한다. 그 안에는 미니멀 식단을 소개하거나 미니멀 게임을 통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것을 서로 장려하기도 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의 등장


 

보통의 미니멀라이프 서적은 다소 현학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모두 잘났다. 잘만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았다거나 집안의 모든 물건을 버리고 그 어떤 것의 굴레에서도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란다. 특히 ‘돈’에서 말이다. 읽다 보니 멋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일까?’하는 의문도 공존했다. 이는 곧 결국 내 삶과는 동떨어진 일이구나, 하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그냥 ‘그들의 이야기구나.’가 끝이다.

 

그러던 중에 <강과장>이란 유튜브 채널을 접했다. 이 사람 굉장히 궁해 보이고 짠하다. 하지만 이 매력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일단 그는 ‘돈’을 위해 강제적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책에서 등장하는 미니멀리스트들과는 궤가 다르며 애초에 그들의 축에 속할 수 없는 변종이다. 하지만 그는 완벽히 미니멀라이프를 행하며, 즐긴다.


 

▲유튜브 <강과장>



처음 봤던 그의 영상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가 35살이나 처먹고 4평 원룸에 사는 이유’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상황에 맞는 사진들로만 이야기를 설명하는 10분가량의 동영상은 그 어떤 유튜버보다 진솔했고 그 진심은 구독자들의 가슴에 와 닿았다.

 

돈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함께 불가피한 이사가 겹치게 되자, 그는 짐을 줄이고 원룸으로 이사하는 미니멀라이프를 실행한다. 그리고 동시에 불필요한 소비습관을 개선하려는 다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동영상 이후의 그의 영상에는 일주일 동안 돈 안 쓰기, 일주일 동안 소시지로 버티기 등의 콘텐츠를 보여주며 어떻게 그가 그 약속들을 지켜나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그는 돈을 아낀다. 그리고 모은다. 하지만 그것에 고통받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든다. 소비를 줄이는 와중에도 그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일주일에 한두 번 회식을 즐긴다. 더불어 안 쓰는 물건들은 되팔거나 공유하는 모임에도 참가한다. 가끔은 구두쇠와 미니멀리스트 사이의 아슬한 줄타기를 하지만 이런 모습은 영락없는 미니멀리스트다.

 

나는 <강과장>의 자발적 자린고비 영상들을 보고서 숨통이 트였다. 꽉 조였던 미니멀라이프 서적에서 벗어나 그 쓰임에 맞게 실생활에 자유롭게 펼쳐진 느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왠지 모르게 난 그를 계속 응원할 것 같다. 강과장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 아니 어쩌면 이미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그를 위해.



*

 


참고문헌


조슈아 필즈 밀번, 라이언 니커디머스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리스트」

팟티 -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미니멀리스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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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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