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적 없다 - "최후진술" 파헤치기 1 [공연예술]

(15)64년생 월드스타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3.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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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과 천재와 문과 천재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다는 건지, 이 극을 보기 전에 머릿속에는 의문만 가득했다. 갈릴레오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사람 맞나?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이 사람들이 친했나? 아니 근데, 둘이 죽어서 만난다고? 저승에서? ... 아니, 뭐라고?



대체 무슨 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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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요한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 줄여서 ‘대화’를 출간한 후, 책 속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휘말린다. 화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갈릴레오는 본인의 기존 견해를 철회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책을 새로이 쓰기로 교회와 약속한다. 허나 그는 죽음을 앞둔 상황.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있던 갈릴레오는 어느 날 저승에 당도해버린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가이드 아래 신에게 심판을 받으러 항구로 향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하지만 그 어떤 활자도 이 극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차라리 넘버를 듣는 편이 낫다. 줄거리가 허무맹랑하다는 뜻은 아니고,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나 극을 이끄는 분위기를 설명하기에는 글자가 역부족이란 뜻이다.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등 역사책과 과학책에서만 보던 인물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이어지는 게 이 극의 정체성이다. 장면 장면이 주는 유쾌함, 그리고 가사 한 줄 한 줄에 숨은 시니컬한 시선이 이 극의 포인트다.


여러분 제발 책 쓰지 마세요.
제 멋에 겨워서 함부로 책 쓰면 무식의 증거가 그대로 남아요.
게으른 정신을 그대로 들켜요.
재치 있는 문장이라 착각하지 마세요, 파렴치한 배설물을 전시하지 마세요.
너절한 생각을 인쇄하기엔 나무의 생명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나 소중하답니다.

- 코페르니쿠스


재치 있지도 않은 파렴치한 배설물을 전시하고 있는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책은 태우기라도 하면 되지, 인터넷에 남은 기록은 지울 수도 없는데. 여하튼 저런 코믹한 가사를 희대의 과학자 프톨레마이오스와 갈릴레오가 춤을 추며 부른다는 게 아이러니다. 극 전체에 깔린 유쾌한 아이러니는 재미를 더하고, 조금은 빈약한 서사의 완충제 역할을 한다.

방식이 어찌 되었든 극이 주는 메시지는 참으로 진솔하다. 천국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부정하려던 갈릴레오는 결국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신께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대화’의 속편 원고를 내던진다. 갈릴레오가 주인공이라 하여 이 극의 주제가 ‘지동설’인 것은 아니다. 이 극에서 중요한 건 진실이다. 극 속 갈릴레오의 우여곡절은 결국 천국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진실을 되찾는 여정이라 볼 수 있다. 지구가 돌든 말든, 어쨌든 갈릴레오는 진실을 주장했고, 진실을 지켰다.





갈릴레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적 없다?: 고증 살펴보기



이 극을 본 후 갈릴레오가 궁금해졌다. 이런저런 기록을 살펴보다가 문득 ‘고증을 살피는 게 의미가 있는 극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극의 중심은 갈릴레오의 생이 아니라 갈릴레오를 통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극은 갈릴레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논하는 정극이 아니다. 그러니 재미로만 봐주자.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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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가 정말 만났을까?


갈릴레오와 셰익스피어, 그 둘의 공통점은 1564년생 ‘월드스타’라는 것밖엔 없다. 갈릴레오의 저서 ‘대화’가 제목처럼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것은 맞으나, 이 서술 기법은 셰익스피어의 직접적 영향이라기보다는 그 당시의 유행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교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대화 형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베일 속에 감추려던 의도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로마와 피렌체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여행을 정말 싫어하던, 한 마디로 정말 꼬장꼬장하고 자존심 강한 ‘집돌이’였다. 이런 갈릴레오가 영국까지 가서 셰익스피어를 만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만큼 이 극의 소재와 전개가 참신하고 특이하다. 공통점이라고는 탄생 연도밖에 없는 두 역사적 인물을 64년생 월드스타로 묶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감탄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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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출생지인 피사.
더불어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서
낙하 실험을 했다는 설이 있지만, 거짓이다.


둘째, 브루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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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


사실 갈릴레오나 셰익스피어처럼 널리 알려진 과학자는 아니지만, 갈릴레오보다 훨씬 더 문제적인 인물이 바로 브루노였다. 갈릴레오는 한 평생 내내 교회 앞에서 지구가 돈다고 주장한 적도 없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단 발언을 한 적도 없지만 브루노는 자그마치 범신론을 주장한 학자였다. 한 마디로 교회의 유일신 사상에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 학자였던 것이다. 이 외에도 브루노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거나 예수의 신성에 반기를 드는 등 그 당시 의미구조로 통했던 기독교적 교리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를 걸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브루노는 캄포 데이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에 처한다.

이 당시에는 이단죄로 고발당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죄다 화형 시킨다면 탄내 때문에 도시가 마비될 터였다. 실제로 화형 탓에 발생되는 연기와 탄내 때문에 타 기관이 민원을 넣은 사례도 존재한다. 그만큼 화형은 잦은 일이 아니었거니와, 만에 하나 화형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산채로 불에 태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최소한 미리 기절을 시킨 후에 불에 태우는 게 일종의 예우였는데, 브루노는 그러한 예우도 받지 못한 채 산채로 태워졌다. 그리고 여전히 교회에서는 브루노의 명예를 복권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브루노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갈릴레오와 실제로 만났(을 수도 있)다. 극 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갈릴레오는 피넬리의 저택에서 지식인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갈릴레오나 브루노의 저서에 서로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갈릴레오의 서적에서 브루노의 견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피넬리 저택 지식인 모임에서 이야기를 해 본 게 아니냐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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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의 정체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공연 정보

공연명 : 뮤지컬 최후진술

일시 : 2019. 3. 16 ~ 2019. 6. 9

장소 : 예스24 스테이지 2관
(구. 대명문화공장 2관)

등급 : 만 8세 이상

관림시간: 총 100분

티켓정가 : R석 66,000원, S석 44,000원



참고 서적
다나카 이치로 저, 서수지 역, '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윌리엄 쉬어 & 마리아노 아르티가스 저, 고중숙 역, '갈릴레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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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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