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단어의 우주를 만나다 - '단어의 사연들'

글 입력 2019.03.2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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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일상에서 어떤 단어를 떠올리고 곱씹어 보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관심이 많지 않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이겠지만, 그럼에도 이따금씩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내가 지나는 지역의 이름을 하나씩 읽으며 숨겨진 우리말을 찾아내는 정도는 된다.


그렇게 찾아낸 지명이 ‘사천-모래내’, ‘이화동-배꽃마을’, ‘신천-새내’, ‘병천-아우내’, ‘대전-한밭’ 등이다. 한자어의 뜻을 우리말로 풀어보는 간단한 일이지만 이렇게 하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어떤 때에는 그 지역의 지리적·문화적 특징이나 역사까지 보이기도 한다. 이름이 지어진 까닭을 통해 어떤 장소와 친숙해지고 빠르게 여러 장소를 연결 지을 수도 있다.

 

다소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이 책의 내용과 나의 경험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어가 흩어지고 모이는 여러 가지 사연을 통해 우리가 우리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접미사가 같은 단어들로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하고, 같은 어간에서 뻗어나간 낱말들로 단어의 족보를 알아낼 수도 있다. 일반적인 사전에서 이러한 ‘역순 사전’이나 낱말의 족보와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이런 측면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더욱 풍성한 말과 글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제각기 따로 노는 단어는 없으므로, 어간이나 어미, 혹은 유의어와 유사어를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우주를 경험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언어생활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저자 소개



어떤 영역에 관심을 둘 경우 대개 보통 수준을 넘어선다. 특출함을 지향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그 경지가 특이함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단적인 예로, 마라톤을 즐기는데 맨발로 즐긴다. 자신의 특이함은 그러나 근본에 접근해 깊이 파고드는 태도와 습성의 결과라고 자평한다. 아울러 자신의 특이함이 특출함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 역시 다른 사람들이 아직 다루지 않은 특유의 콘텐츠를 담고 있다. 단어를 실마리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생각을 소리에 실어 내는 방식을 포착해 풀었다. 또 주로 영어와 비교해 우리말의 고유한 특성을 이야기했다. 사람은 언어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언어에 대한 생각은 사고에 대한 생각이며 언어 공부가 사유의 조직화·구조화의 기초라고 본다.

 

단어는 오래된 관심사였다. 국어사전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우리말을 궁리했다. 20여 년 동안 주로 활자 매체에서 기사를 썼다. 요즘 글쓰기 강사로 일한다. 수십 년간 길러온 글쓰기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다. 영어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도 한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을 번역했다. 글쓰기 분야 책 《일하는 문장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글은 논리다》를 썼다.



 

단어를 엮는 일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단어를 엮는 일을 해왔다. 신문사에서 교열과 편집을 담당했고 방송사에서는 기자로, 현재는 작가이자 강사로서 단어와 가까운 곳에서 일한다. 기사를 쓰며 딱 떨어지는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단어를 공부하고, 비슷한 단어들의 뉘앙스 차이를 분간하며 자신의 사전을 만들어왔다는 저자. 그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우리말의 특징과 단어 체계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외국어와의 비교를 통해 한글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언어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첫째 장에서는 우리말 고유의 ‘맛이나 무늬’를 ‘단어가 공간에 녹아든 사연’이라는 제목으로 풀어낸다. 사회성을 지닌 언어가 얼마나 그 사회를 비춰 보여주는지 다음과 같은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때’라는 말은 우리말에만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때’와 같은 한 단어 낱말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때를 미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것을 언어를 통해 보여주는 사례이다.


‘억울하다’라는 말은 영어와 일본어에는 없다. 같은 감정을 드러내는 단어를 설명할 수는 있으나 그마저도 ‘억울하다’의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유난히 우리나라에 서럽고 억울한 역사가 많았던 까닭이다.


   

둘째 장에서는 언어의 유래를 통해 우리나라와 한자어의 밀접한 관계를 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우리말의 조어 방식, ‘단어가 헤치고 모여든 사연’을 들려준다. 끝부분이 같은 단어의 묶음에 대한 이야기부터 ‘역순 사전’을 활용하면 우리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한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아껴 써야 할, 저자가 모아놓은 아름다운 단어들로 끝을 맺는다. 미련이 남았는지, ‘도사리’까지 덧붙인 맺음말에도 좋은 단어들이 잔뜩이다.

 

'단어의 사연들' 백우진, 우리말 고유의 무늬를 탐색하다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모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저자가 영감을 받았다는 위 괴테의 말에 책을 읽을수록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게 되었다. 언어의 사회성이나 역사성이라고 하는 것을 이 책에서처럼 적확히 이해한 적이 없었다.

 

영어와의 비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하나, 비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우리말의 특징과 소중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는 ‘우리말을 사랑하자’와 같은 캠페인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조어 방식과 낱말의 유래, 뿌리를 살펴 우리말이 보여주는 단어의 우주를 한 번쯤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가령, 의태어가 많은 언어라든지, 표기할 수 있는 소리가 매우 풍부한 표음문자라든지 하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는 한글을 더욱 한글답게 말하고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까지 말하기 위해, 말을 홀로 생각하며 쓰인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살아있는 단어들이 무한한 우주에서 헤엄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해보았다. 아름답고 좋은 단어들은 잊지 않기 위해 페이지를 접어두고, 새로 알게 된 단어들은 다음에 써보려고 밑줄을 그어놓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쓴 이 글도, ‘뭉근하게’ 누군가의 기억에 남게 된다면 좋겠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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