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러블 트래블: 나는 외국에서 더 한국인이 됐다. [여행]

글 입력 2019.03.2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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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답이 없는 여행자다. 기본적으로 길치라 길을 잃는 건 일상이고, 워낙에 조심성이라고는 없는 성격인데다 술까지 좋아하니 가는 곳 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있다. 게다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데는 선수라 행선지마다 내 흔적 하나씩 남기기 까지. 답이 없어도 어쩜 이렇게 없어서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는 길만 잃지 않고,  죽을 사건사고만 일으키지 않고, 내 오장육부만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천방지축 트러블 트래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반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처음과 달리 7개월 넘게 여행을 지속중이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고, 또 무엇이 그럼에도 여행을 지속하게 만드는 걸까. 말도 많고 탈도많은 내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비로소 나는 한국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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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나는 그 무엇보다 한국인이 된다
 

여행을 떠나올 때 "헬조선을 떠야지!"라는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매일같이 터지는 사건 사고에, 왜 '헬조선'이란 말이 나왔는지 절감케 하는 수많은 병폐들. 미래에 대한 절망감 등등. 한때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한국에 살고있다는 것이 싫기도 했다. 그렇기에 한국을  떠나올 때 나는 드디어 한국에서 해방됐다 생각했고, 한국에 대해서 한동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을 떠나온 순간부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한국에 대해서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 어느때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지각하고 있다. 바로 이 기본 질문때문에.

wher are you from?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름보다 자주 묻게되고, 또 자주 답하게 되는 질문이다. 심지어 그저 스쳐가는 길거리 사람마저도 심지어 영어도 아닌 그들의 언어로 묻곤 한다.(물론 알아듣지 못하지만 감으로 때려맞춰서 '코레, 코리아!'하고 답하면 얼추 기대했던 답이 나왔다는 반응이었다.) 한국에선 대다수가 '당연히' 한국인이었기에 나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걸 굳이 상기시킬 필요가 없었다면, 외국에선  하루에도 수십번씩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상기해야한다. 한국에서 나는 그저 '나'였다면, 여행지에선 '나' 이전에 '한국인'이 됐다. 여행지에서 나는 '외국인'이기에 나는 나의 국적으로 가장 먼저 규정됐다.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나의 특성이 그토록 탈출하고싶던 '한국'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한국이었다. 한국의 북한과의 관계, 음식, 문화, 물가 등 부터 사회적 분위기, 심지어 페미니즘까지. 특히나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은 지대해서 때론 내가 어떻게 한국이라고 답하냐 부터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korea'라고 답하면 열에 아홉은 'south or north?' 라고 다시 묻는 것을 알기에,  두번 대답하기 싫어 보통 굳이 'south korea'라고 답을 하는 편인데. 그렇게 대답했을 때 남한엔 북한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냐 왜 굳이 남한이라 강조하는 거냔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이 정도로 모든 내 대답 하나하나에서 사람들은 한국을 느끼고 싶어했던 것이다.

장담컨데 내가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니 혹은 대다수가 나를 '권희정'이 아닌 'korean'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심지어 내 이름조차도 외국인들에겐 쉽지않기에 더더욱) 깊은 관계를 맺었어서 그들이 고맙게도 내 이름을 기억해준다고 해도 '나'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따라올 이미지는 아마 '한국'일 것이다. 내가 그들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주제는 서로의 문화에 관한 것이었고, 나는 계속해서 한국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늘 그렇듯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끔 한국 문화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나 스스로도 논리적으로 막히는 부분들을 발견하곤 했는데, 그럴때면 한국에서도 하지 않던 한국문화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됐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 중엔 종교가 없는 사람이 많아?'라는 질문이나, '어떤게 한국 전통 종교야?'라는 질문을 들을 때. 어떻게하면 우리 나라 내에서 혼재돼있는 불교와 유교와 샤먼을 설명할 수 있을지, 또 유불교 등의 종교들은 유일신에 대한 숭배보단 철학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고 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기까지 했었다.  한국이 싫어 한국을 떠나왔는데 정작 여기서 그 누구보다도 '한국인'이 되고, 심지어 한국에 대해서 공부까지 하게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원래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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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던 터키 초등학교 급식


이 괴현상은 내가 나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느낄 때, 또 규정할 때 강화된다. 기본적으로는 식사에 관하여. 소위 '유럽권'에서 생활할지 이제 7개월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나는 가끔 서양의 식문화에 놀란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를 따라 1일 영어교사(?)가 됐을 때였다. 자연스레 초등학교 급식을 같이 먹게 됐는데, 나는 급식판의 구조와 테이블마다 놓여져있는 빵에 놀랐었다. 우리나라면 당연히 밥이 있어야 할 자리엔 파스타가 있었고, 각 테이블마다 빵이 놓여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거였는데 한국 식문화가 기본 베이스로 깔려있는 내게는 놀라운 광경으로 보였다.

심지어는 '쌀'에 대해서도 그랬다. 서양 특히 터키에선 보통 밥을 기름에 볶아서 먹기에(필라프) 쌀은 살 찐다, 빵보다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는데. 일단 한국에선 기본 밥을 지을 때 기름을 넣지 않고 끓이기에 건강하다는 설명이 필요했던 건 그렇다 쳐도. 볶음밥을 만들더라도 쌀을 끓이고(밥을 짓고) 그 후에 볶는 것을 당연시 했던 내게 쌀을 바로 기름으로 볶는다는 것은 컬쳐쇼크였고, 쌀을 끓이고 그걸 또 볶는다는 건 그들에게 컬쳐쇼크였다. 그리고 내게 당연한 일이 그들에게 컬쳐쇼크로 다가온 다는 것이 내겐 또 다시 컬쳐쇼크였고. 그 문화권 내에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기본적인 부분에서 또 놀라고마는 나 스스로를 보며 나고 자란 문화는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찌됐든 나는 '한국식 식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너네 개 먹는다며?", "너네도 벌레 먹어?"모두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했고. 벌레(메뚜기)나 개를 먹는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가지고도 미개한 취급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도살 방식 등 여러 문제 때문에 현재 개를 먹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하지 않고, 실제로 나는 단 한번도 개를 먹어본 적이 없음에도 개를 먹는 문화를 가졌었다는 것만을  가지고 미개한 취급을 당할때면 '한국인'으로서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나라의 기후환경이나 종교, 식용으로 쓰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정보도 없이 그 나라의 문화 자체를 비난하는 건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으로서도 옳지 않지만. (무슬림들이 어떻게 더러운 돼지고기를 먹냐고 미개한 취급을 하거나, 힌두교 사람들이 어떻게 신성한 소를 먹냐고 미개한 취급을 하는 걸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걸 다 떠나서 그들이 한국을 무시할 때면 '내'가무시당한 기분이 들고 유쾌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미묘한 기분이었다. 한국 내에서 나는 수도 없이 '한국인적 특성'들을 비난해왔고 내가  한국인이란 사실을 자조하기도 했는데 몇발짝만 외국으로 나왔다고 나 스스로 조차도 나를 '한국인'으로 규정하고 한국이 비난당할 땐 내가 비난 당하는 기분까지도 느끼는 것이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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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타국까지 나가서
굳이 한국인을 만나는 이유: 문화적 공감대
 

이뿐만 아니다. 모두가 그나마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선 나는 내 사고가 '한국적'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분위기를 싫어했기에 '한국적 사고'를 배척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외국인들과 교류를 통해 나는 내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생각보다 굉장히 한국적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대표적인 예를 꼽아보자면 나쁘게 말하자면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좋게 말하자면 남을 배려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고가 그랬다. 외국에 나와보니 한국은 정말 '눈치사회'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서로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는 사회였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무척이나 신경쓰는 사회였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남에 대한 배려도 잘 발달해 있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란 고민때문에 남들을 더 신경쓰게 되고, 남들의 기분을 신경쓰다보니 그게 자연스레 배려로 굳어져서 만들어진 결과라 하겠다.

그렇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자라난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본적인 배려들조차 외국인들에겐 당연치 않은 경우들도 비일비재. 어찌보면 저게 자신의 주관대로 인생을 산다는 방면에선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겐 굉장히 기본적인 배려였기에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내 웃는 얼굴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원체 잘 웃기도 하고 웃는 얼굴이 일종의 배려라 생각해 나는 대부분의 경우 항상 웃고있는데 꽤 많은 친구들이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왜 항상 웃고있는 거야?' 라는 질문이나, '어떻게 그렇게 늘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 있어?'라 묻기도 했다. 웃는 얼굴이 예의라 생각했던 나는 그 질문에 깜짝 놀랐다. 딱히 웃는 얼굴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질문 이후로 웃는 얼굴 조차도 어찌보면 한국적 행동양식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거기에다가 '다른' 것들을 보게되면 자연스레 한국의 것과 비교하게 된다. 이런건 한국이 낫구나, 이런 문화는 우리가 많이 뒤쳐졌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등. 내가 가장 잘 알고있고 가장 익숙한 것이 우리 문화고 우리 사회이니만큼 다른 문화나 사회를 보면 가장 먼저 한국의 것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본의아니게 한국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해외에 나오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한국에서도 멀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는 해외에 나와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한국인이 됐다. 민족주의자가 되고싶은 생각따위 없고 '국민성'이라는게 뭐 그리 대단하고 변치않는 특성이라 생각하고싶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나와서 '한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재평가하게 된 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또한 국가 경제사정이나 이미지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절감하고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기도 했다. 평소 국가보단 개인의 삶이지!라 생각했다면, 이번 여행을 통해서는 그 국가가 개이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깨달았달까. 덕분에 애국심까진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국가발전에 이바지는 못해도 누가되진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어느 정도는 하게됐다.

*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한국에 대해서 고민하고 매일매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상기시키면서도 돌아가고싶지는 않다는 것일까. 참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 사랑스러우면서 증오스러운 나라. 아, 대한민국이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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