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세계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영화]

국내 신작전 17: <SFdrome: 주세죽>,<눈의 마음: 이후>,<스윗 골든 키위>
글 입력 2019.03.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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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다큐페스티벌 2019

Seoul Independent Documentary Film Festival

2019.03.2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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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롯데시네마 홍대 입구점에서 진행되었던 2019 인디 다큐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한국 독립영화 협회가 주최하는 이 영화제는 2001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제19회를 맞이했다. 인디 다큐페스티벌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독립 다큐멘터리 정신을 기반으로 한 여러 영화들을 상영한다. 작년에 처음 다녀왔던 부산 국제 영화제 이후 두 번째로 방문하는 영화제였다.


인디 다큐 페스티벌은 사회적 영향력과 미학적 성취를 위해 국내 여러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연구자, 그리고 관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이 영화제가 지향하는 '실험' , '진보', '대화', 이 3가지 키워드는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평소에 자주 접할 기회가 없는 독립 다큐 영화들이었기에 더욱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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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서 상영작들을 둘러보던 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영화는 <스윗 골든 키위>였다. 모국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영화는 김소영 감독의 두 단편영화 <SFdrome: 주세죽>, <눈의 마음: 이후>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었다. 낯선 세계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러, 낯설지만 새로운 기분을 안고 영화관 안으로 입장했다.




#1 SFdrome : 주세죽

25min 55sec, 김소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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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죽이 남긴 글을 살려내고,

그녀가 꿈꾸던 유토피아 세상을

우주로 열린 중앙아시아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고 싶었다.



영화는 사회주의 여성 혁명가였던 주세죽의 이야기이다. 주세죽(朱世竹)은 1898년 출생하여 일제강점기 시절 활발한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그녀는 중등학교 시절 3.1 운동 참여로 인해 구금되어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후 상하이로 유학을 떠나 활발한 항일운동을 이어나갔고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였다.


주세죽은 1928년 일제의 체포를 피해 소련으로 피신하여 생활하지만, 일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스탈린에 의해 1938년 카자흐스탄으로 5년간 유배되었다. 이후 1945년 한국의 광복 소식을 접하고 조선으로의 귀환을 청원하지만, 스탈린의 거절로 그녀는 영영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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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상당히 정적이고, 고요하다. 영화는 황량한 평원에 우뚝 서있는 집 한 채와 함께 긴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장면의 사이사이엔 물살을 거슬러 나아가는 마네킹의 뒷모습이 카자흐스탄의 풍경과 함께 오버랩 되어 삽입되어 있다. 주세죽의 얼굴 또한 풍경 뒤로 희미하게 떠오른다. 영화의 후반부엔 주세죽이 망명되었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카자흐스탄의 우주선 발사기지 Cosmodrome에서 로켓이 발사된다.


영화가 담아내는 장면들은 지독히도 단순하지만, 남겨진 메시지의 무게는 상당했다. “어둠 속에서(in the dark)”, “정처 (at home)”, “화광동진 (Toward the world)“, 총 3파트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지혜로운 자세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2 눈의 마음: 이후

16min 55sec, 김소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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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길목. 함께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풍경을 감싼다. 차를 타고선 그 눈길을 얼마쯤 달렸을까. 한 여성이 누군가를 위해 추모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곤 고려인의 삶의 장면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연이어 등장한다.


영화는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1920년 4월, 일본인 군대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이주하여 살아가던 조선인들을 대량 살해한 신한촌 사건(新韓村事件)에 대한 이야기이다. 4월 참변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 이전에도 일본인들은 한국인 여성 사회주의자 김 알렉산드라 스탄게비치, 동방의 레닌이라 불리던 김 아파나시 등을 처형하는 등 많은 이들의 삶을 좌절시키고 망가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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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은 서서 빛을 발하고 있어

창문 밖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지

그런데 이 슬픔은 어디에서부터 온 걸까?

이렇게 살아있고 건강하므로

살아있음을 슬퍼하지 마


빅토르 최, <슬픔> 中



또한 일제 강점기 시절,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서 살아가던 고려인들은 소련 당국과 스탈린에 의해 척박하고 황량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국경을 넘어 치열하고 고달프게 살아가고, 무참히 살해되고 만 고려인들의 역사를 담아낸 김소영 감독. 우리는 이를 통해 탈북 고려인과 독립운동가의 존재, 그리고 그 삶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차량은 다시 눈으로 뒤덮인 도로를 달려나간다. 그리곤 빅토르 최의 <슬픔>이 가사와 함께 울려 퍼진다.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최는 1980년대 러시아 록을 주도하며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사회적 반향을 가져왔고,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도 저항정신 속에서 끊임없이 자유를 부르짖었다.




#3 스윗 골든 키위

20min 47sec, 전규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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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여성들을 항상 생각한다.

그 이야기가 정말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치 키위처럼

아주 일상적인 것임을 나누고 싶었다.



영화는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상반된 두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감독의 고모는 뉴질랜드에 정착해 30년 넘게 살아가는 한인 1세대이다. 그녀는 키위를 포장하는 공장해서 일하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한국에 온다. 한국으로 보내질 키위 상자엔 상태가 좋은 애들로만 채우고, 종종 키위 몇 개를 더 얹기도 한다는 고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을 그리워한다. 조카에게 건네는 말들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련히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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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뒤로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진희가 있다. 지금은 잠시 한국에 돌아와 있는 그녀이지만, 앞으로도 한국에 정착해서 살 생각은 없다.


그녀는 한치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 하기보단 그냥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다고, 사회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삶에는 여러 색깔과 모양이 있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을 온전히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것이 한국에서의 삶이든, 타지에서의 삶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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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방문했던 인디 다큐 페스티벌이다. 상영되는 영화는 독립영화인 만큼 보다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면모로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펼쳐낸다. 관람했던 세 단편영화 모두 쉽게 읽히는 영화는 아니었다. 특히나 김소영 감독의 두 단편은 사전 지식의 부족 때문인지, 감상 직후 영화가 얘기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영화 뒤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 나의 감상은 달라졌다. 왜 장면들을 자주 오버랩하여 표현할 수 밖에 없었는지, 영화의 질감이 왜 그토록 무거웠는지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현재의 모습 뒤에 떠오르는 과거의 얼굴과 이야기가 건네는 메시지를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눈의 마음: 이후>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함께 삽입되는 곡들도 참 좋았다.


*


독립영화들은 낯설고, 친절하지 않다. 때로는 난해하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인 경우 각색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내기 때문에 꽤나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불편함을 끈질기게 응시하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 모습은 모두 우리가 정말로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니까 말이다.


단단하고 곧은 얼굴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국내외 수많은 독립다큐 영화들.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삶의 여러 단면과 목소리를 담아내 우리에게 들려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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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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