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주 - 부끄러운 것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영화]

글 입력 2019.03.2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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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백이 주는 감성이 참 묘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취향이 흑백을 컬러보다 더 선호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나도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많을 때, 그래서 오히려 더 절제하게 될 때, 함축하게 될 때 흑백의 표현이 그런 것들을 더 잘 담아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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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화면으로 흘러가는 영화 동주를 보는 내내 힘들었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 시인을 원했고 펜으로만 무엇인가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에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의 고뇌를 절절히 느꼈다. 사실 ‘동주’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동주의 친구 송몽규의 캐릭터 또한 두드러지는 영화였다.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의 흡입력 있는 연기가 송몽규라는 캐릭터를 더 입체적이고 빛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주변 지인들의 반응 또한 영화 동주 속 송몽규의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는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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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글에서는 소리 없이 강한 인상을 남겼던 윤동주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각자의 개성을 따라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송몽규는 활동적이게 강했고 윤동주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강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엇이 더 옳고 나은 운동이 아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도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의 모습을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다. 누군들 저 상황에 처하면 힘들지 않을까. 그렇지만 윤동주만큼 펜을 통해, 문학을 통해 강하게 자신의 뜻을 전할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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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지만 쓸 때마다 모순적이게도 자괴감을 자주 느끼는데, 그래서인지 윤동주와 극 중 윤동주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의 연기에 상대적으로 더 이입이 되곤 했다. 윤동주는 영화 내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인 ‘글’로 인해 가족과 부딪히고 자신의 내면과 부딪힌다.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글’이 사랑하는 조국의 해방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고뇌하는 장면에서는 참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자신의 사랑하는 것들이 어떻게든 간에 나로 인해 충돌하게 될 때의 기분은 어떨지 정말 알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윤동주는 펜 끝으로 진정한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독립운동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고 부끄러워하며 자책하였다. 그러한 고뇌와 자괴감을 느끼는 윤동주의 감정이 영화 속 모든 순간에 묵직하게 깔려있다. 컬러가 아닌 흑백의 화면은 그러한 윤동주의 감정을 끊임없이 느낄 수 있도록 극대화시킨다.


펜대로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분들 중 어쩌면 많은 분들이 극 중 동주처럼 자책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힘이 없다는 일부사람들의 생각이 윤동주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신념을 갉아먹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했다.


부끄러운 걸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라는 말은 괴로워하는 윤동주에게 극 중 정지용 시인이 건넸던 구절이다. 정지용 시인의 말에 덧붙여 감히 말하자면 윤동주의 일생은 전혀 부끄럽지도 않았으며 최선이 되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는 윤동주의 모습은 그것 자체만으로 ‘자기성찰’이라는 요소까지 포함한 숭고한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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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마지막으로 치 닫을 때, 취조하는 일본인 형사에게 역으로 윤동주와 송몽규가 각자의 방식대로 충고하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부분에서 똑같이 일본인 형사를 당황시키지만 그 방식은 각각 달랐다. 그 장면을 다른 장면들에 비해 다소 빠르게 전환하면서 윤동주와 송몽규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그 때, 흑백으로 표현되어 그런 것인지 인물의 표정에 양감이 살아있었다.


흑과 백으로만 표현된 인물들의 얼굴들에서는 날 것의 감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장면에서 나는 흑백 명암을 따라 몰입을 했고 가슴깊이 울렁임을 느꼈다. 또한 윤동주의 시들이 영화 속 배경과 함께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연출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잔잔한 감동이 일게 만들었다. 청각적인 효과와 시각적인 효과가 딱 맞물려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마치 윤동주의 성격과 인생처럼 전체적으로 조용하지만 깊이 있었고 절제되어 있지만 여운 있게 강했다. 강하늘이 연기한 윤동주 시인을 보며 느꼈다. 이런 게 조용하면서 강한 것이구나. 이준익 감독 특유의 여운이 깊게 남는 연출력과 흑백 화면이 어우러져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흑백의 화면은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문학으로 엮어 절제된 농축을 보여주었다.


글은 글쓴이의 정신을 온전히 담는 그릇 같은 존재이다. 글은 참 더도 않고 덜도 않고 딱 그만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세상에 몇 안되는 솔직한 존재이다. 글은 힘이 없다고 속삭이는 몇몇 이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차분하고도 곧은 윤동주의 글. 그러한 윤동주의 정신과 정신을 담은 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잘 담은 이 영화 ‘동주’까지. 모두 차분하면서도 곧고 강하다. 외유내강의 분위기가 영상으로 표현된다면 이 영화가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장 표현하고 싶은 것들은 오히려 생략될 때 여운이 깊게 남는 법이다. 그런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동주’가 지금처럼 계속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으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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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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