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통학 길, 생각 역 [기타]

글 입력 2019.03.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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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놀 줄밖에 모르던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지금은 취준생이라는 같은 처지가 된 친구들과 요즘은 모였다 하면 인생이야기, 미래이야기뿐이다.

여기서 미래이야기는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고, 졸업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혹은 당장 다음 학기에는 휴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니면 어떤 수업을 드랍할지 말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제는 일상처럼 말하는 우리가 며칠 전에는 꽤 진지하게 인생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풀어보았다.

사실 '꿈'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언젠가는 내 손으로 나만의 일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나의 미래이다. 4학년쯤 되면 보통 'A 기업의 B 직무를 맡아서 C라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미련스럽게도 '아직은, 아직은' 하며 이 생각을 미루고 있다.

'아직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내가 꿈꾸는 나의 미래를 위해 잘 포장된 길 밖으로 한 두 발 정도는 내딛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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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내가 '에세이 감성'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출간된 수없이 많은 에세이들은 입을 모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고,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이라며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직은'이라며 생각을 미루는 것은 게으름을 피우고 회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그렇기에 가끔 내가 '아직은, 아직은' 하며 정해진 길 밖으로 가고 싶을 때마다 이게 내 생각이 아니라 '에세이 감성'에 물든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불안이 드는 것이다.

에세이를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책'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에세이의 저런 감성 어린 글귀를 즐겨 읽을뿐더러, 나를 진짜 '나'로 만들어주는 데에 에세이가 꽤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에세이의 감성 어린 글귀들 덕에 하고 싶은 일을 할 명분이랄까, 용기랄까, 하여튼 그런 식의 긍정적인 것들이 나로부터 뿜어져 나오니까 말이다.

*
 
지하철에 갇혀서(?) 집으로 혹은 학교로 향하는 길, 출퇴근 시간이면 유난히 더 붐비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만날 모든 사람을 이 지하철 안에서 만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고.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문을 닫고 출발하는 지하철에서, 미래의 은인이, 미래의 친구가, 미래의 남편이 같이 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어색할 정도로 딱 붙어있는 내 앞, 뒤, 옆의 사람들이 뭔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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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본 노을 진 한강의 풍경


통학 길 지하철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휴대폰을 보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신물을 읽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통화하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

'노량진'역을 지나면 보이는 창 너머의 한강을 황홀하게 바라보다가 그 풍경이 다시 암흑으로 바뀌면 사람들에게로 그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그때마다 문득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제각기 다른 목적지를 가기 위해, 과연 어떤 역에 정차할 것인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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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로 치면, 갑자기 철로 밖으로 벗어나 버린 열차가 내가 아닐까 싶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일렬로 주행 중인 열차들 틈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철로 밖을 달리는 열차 말이다.  울퉁불퉁 놓여있는 돌멩이들이 나를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하게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직은' 다른 길로도 한번 가보고 싶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나는 지금, 통학 길 생각 역에 정차해있다.

글을 마치면서, 아트인사이트 가족분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 우리도 어쩌면 지하철에서 만났을 수도 있는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퇴근길에서, 통학 길에서, 그리고 각자의 길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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