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히피 로드] 아르헨티나 – 장국영이 추던 춤, 탱고의 기원을 찾아서

글 입력 2019.03.3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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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 장국영이 추던 춤, 탱고의 기원을 찾아서



글 - 여행작가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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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양조위 주연의 <해피투게더 Happy Together>를 처음 본 건 1997년 런던에서였다. 칸 영화제에서 이미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었던 터라 극장 앞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매표소가 열리길 기다리며 <아비정전>의 매표소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왜 아비(장국영)가 수리진(장만옥)에게 읊조리던 대사 있잖은가.


“1960년 4월 16일 3시 1분.......우린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1분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인터넷이 전 세계를 연결해주던 시절도 아닌 터라 당시 런던에서 체류하던 내가 <해피투게더>에 대해 아는 건 ‘왕가위 감독, 장국영·양조위 주연.’ 그게 전부였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여권에 아르헨티나 입국도장을 찍는 장면이 지나간다. 1995년 5월 12일. 그리곤 꺼진 침대에 누워 램프에 그려진 이과수 폭포를 바라보는 사내. 꽁초 수북이 쌓여있는 재떨이, 찌그러진 맥주캔, 마시다 만 1.5리터 생수병. 등 돌린 채 얼룩진 거울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내가 등장하고 첫 대사가 흐른다.


“아휘,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화면이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당황스러웠다. 사내들끼리의 베드신. 이게 뭐지?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다. 더구나 대사는 중국어, 자막은 영어. 영화 포스터를 보고 남성들 간의 버디무비를 기대했기 때문일까? 1시간 반이 지나 극장 안에 불이 켜지자마자 내 입에선 불평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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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늘 어긋난다는 거. 그래서 아프다는 거. 동어반복이잖아.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감독상까지 수상한 이유가 뭐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단 말처럼 속은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영화 배경은 왜 홍콩이 아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지?


왕가위가 만든 영화 중 ‘내 멋대로 순위’ 맨 아래로, 장국영이 나온 영화 중 ‘내 멋대로 순위’ 맨 아래로 <해피투게더>를 밀어 넣었다. <해피투게더>는 정말 ‘구름 사이로 언뜻 비치는 봄빛(春光乍泄)’처럼 내 생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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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건 <해피투게더>를 본 지 20년이 지난 후. <해피투게더> 촬영지라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오직 탱고, 탱고, 탱고! 탱고 때문에 온 터라 첫날부터 탱고를 보고, 탱고를 듣고, 스텝을 밟았다. 우노, 도스, 트레스, 콰트로! 하나, 둘, 셋, 넷! 숙소의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면서도 스텝을 밟았다. 신코, 세이스, 시에테, 오초!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한 바퀴 더! 누군가가 엘리베이터 CCTV를 돌려봤다면 참 황당했을 것이다. 동양인 사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허공을 부둥켜 안고 탱고스텝을 밟는 꼴이라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소 중 하나는 콜론극장(Teatro Colón)이다. 완공까진 비극오페라 마냥 사건과 사고로 점철되었던 건물로 처음 설계를 맡은 건축가가 부지를 선정하는데 1년, 극장을 짓기 시작한지 1년 만에 사망. 바통을 이어받은 건축가는 살해당하고, 공사비를 대던 물주는 파산. 건축 중단 후 10년 지나 세 번째 건축가가 원안이던 이탈리아식 설계에 프랑스식 극장을 접목해 짓기 시작해서 1908년에야 완공했다고 한다. 가이드 투어가 있는데 비용은 180페소(1.5만원)정도, 공연을 보는 것도 아니고 비어있는 극장에 들어가 가이드의 설명만 듣는다고. 차라리 공연을 직접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콜론극장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세계적 반도네온 연주자 다니엘 비넬리의 <탱고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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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인데 90페소(7,500원)? 매표소로 달려가 표를 구했다. 꼭대기 좌석이면 어때! 극장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고 좌석이름도 멋졌다. 천국의 앞자리(Delantera de Paraiso).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춤이 자아내는 긴장감과 맞먹는 대단한 연주였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커튼 뒤로 사라진 연주자가 앙코르 곡을 연주하기 위해 다시 무대로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탱고를 들을 수 있는 탕게리아(탱고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탱고를 추는 밀롱가(탱고 전문 공연장)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스텝 연습도 멈추지 않았다. 귀국하면 나를 몸치라 놀리던 친구들에게 “원조의 나라에서 탱고를 배우고 온 사람이야! 왜 이러셔?”하고 본때를 보여야지 다짐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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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몸으로 추는 게 아냐. 스텝이 아니라 음악이 먼저지. 가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가장 좋아. 탱고 가사는 시(詩)거든. 정말 가슴 아픈 시들이지. 가사를 음미하며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가 탱고가 가슴으로 느껴지면 그때 스텝으로 옮겨. 탱고는 ‘네 개의 다리, 하나의 심장이 추는 춤’이라고 해. 즉, 심장이 먼저라고!”


기계적으로 스텝을 밟는 나를 보고 숙소 주인 페데리코가 말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듯해서 ‘탱고의 역사’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때는 19세기 말, 많은 사람이 아메리카로 왔지.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등.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넘어온 이민자 말이야. 유럽을 출발한 배는 신대륙의 항구에 사람들을 내려놓았어. 북미는 뉴욕, 남미는 리우데자네이루와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들이 첫발을 내디딘 부두를 사람들은 ‘보카(입)’라고 불렀지. 여객선은 ‘입’을 벌리고 사람들을 토해냈고, 사람들은 신대륙의 ‘입구’에 첫발을 내디뎠어. 그 무렵 유럽이민자의 대부분은 사내였지. 뭐가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곳에 여자와 아이를 데려올 순 없잖아. 구대륙에서 생의 종점까지 맛봤을 사람들을 보카에서 새로운 생을 시작했지. 몸뚱이 빼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보카 인근에 자리 잡고 고된 일에 종사했어. 밤이면 값싼 술을 들이켜다가 울컥 눈물을 흘리기도 했을 거야. 떠나온 고향이 떠올랐을 테니까. 두고 온 여자가 사무치게 그리웠을 테니까. 사내들은 악사가 켜는 음악을 듣다가 슬픔을 못 이겨 다른 사내를 부둥켜안고 춤을 췄어. 누군가와 춤을 추지만, 저마다 다른 사람을, 지금 곁에 없는 사랑을 떠올렸지. 남녀가 추던 춤이 아니라 남남이 추던 춤. 이것이 탱고의 기원이야. 그 후 인구가 점점 더 많이 유입되고 서민 거주지가 부두에서 내륙으로 퍼지면서 탱고의 중심은 산텔모로 옮겨갔어. 가난한 예술가, 음악가, 춤꾼, 창녀들이 어울려 살던 거리. 29번 버스를 타면 산텔모를 지나 보카까지 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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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Boca), 산텔모(Santelmo), 29번 버스, 어디서 본 버스 번호더라? 순간 내 생의 저편으로 가라앉았던 영화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홍콩출신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함께 아르헨티나로 왔다가 싸우고 헤어진다. 아휘는 산텔모(Santelmo)의 탱고바 <BAR SUR>에서 웨이터로 일한다. 그는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29번 버스를 탔다. 29번 종점 보카(Boca)에 낡은 아파트가 있었다. 어느 날 보영이 나타나고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를 할퀴고, 바라보고, 질투하다가 다시 헤어진다. 아휘는 이과수 폭포를 보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그제야 20년 전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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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남미 히피 로드>

(2019년 4월 15일 발간)의 일부입니다.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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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2년간 '장기 체류 후 이동 Long stay & Run'하는 기술을 연마한 후, 한국과 다른 대륙을 2년 주기로 오가며 '장기 체류 후 이동'하는 여행기술을 평생 수련하고 있는 여행가.


EBS세계 테마기행 여행작가. <길 위의 칸타빌레>,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길 위에서 책을 만나다>,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남아메리카를 떠돌며 전직 방랑자였거나 현직 방랑자인 자매, 형제들과 어울려 보낸 800일간의 기억. 방랑의 대륙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가 건져 올린, 사금파리 같은 이야기를 당신 앞에 내려놓는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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