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SF 뮤지컬 -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탄생과 죽음 그것은 생명만이 지닌 특권
글 입력 2019.04.0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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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탄생과 죽음 그것은 생명만이 지닌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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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유울모는 우울, 어둠, 죽음 같은 부정적인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밀양림의 행복한 시민이다. 그에게 밀양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선사해주는 곳이었고, 해외지사 감사를 위해 잠시 다녀왔던 바깥세상은 추악하고 더러운 곳이었다. 그러나, 바깥세상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 억압되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고 미처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들여다 보기도 전에 다시 행복한 미래도시 밀양림으로 돌아간다.


 밀양림에 진짜는 없다. 진짜는 곧, 자연스러움을 뜻한다. 밀양림에서 사과는 썩지 않는다. 평생 반질반질하고 먹기 좋은 상태로 윤이 난다. 사람들은 늙지 않으며 스스로 죽을 시간을 설정해놓고 그 시간에 맞춰 숨을 거둔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운 이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밀양림의 관리자 인공지능 판과 밀양림 그룹 회장, 그리고 밀양림의 시장 비잇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밀양림 속에서 바깥세상의 기억은 잊은 채 살아가던 유울모에게, 유전자 테러로 인해 식물로 변해가는 미아보라가 나타난다. 미아보라는 이미 온몸이 식물로 뒤덮여 있었고 계속해서 식물이 자라나 결국엔 사람은 남지 않고 식물로 변해버리는 안타까운 테러의 희생자이다. 유울모는 식물로 둘러싸인 미아보라에게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그것이 곧 바깥세상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함을 깨닫는다. 그는 미아보라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감정을 차츰 확인하고 베일에 싸인 밀양림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기로에 선다.



행복한 도시 밀양림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그녀를 따라 바깥세상으로 갈 것인가.



유울모는 정말 미아보라를 사랑했을까? 작품의 제목에서도 강조하듯 왜 유울모가 그녀, 미아보라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을 본 다음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유울모는 미아보라가 아닌, 바깥세상을 동경하고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미아보라의 겉모습은 흉측하게 변해갔지만, 그는 순식간에 그녀에게 빠져들고 집착하기 시작하여 그녀를 찾기 위해 온갖 곳을 헤맨다. 밀양림처럼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없는 딱 적당히 행복한 도시 속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던 유울모가 미아보라라는 여성을 급속도로 사랑하게 됐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현실에서는 금사빠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방이 우리에겐 결핍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밀양림에서는 결핍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누군가를 더 증오하는 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아보라에 대한 유울모의 사랑은 단순히 남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감정이 아니라, 바깥세상에 두고 온 자신의 어둠, 우울, 죽음이라는 무형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자 집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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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우리에게 3쌍의 반대개념을 제시한다.


자연 vs 반자연

생명 vs 기계

아름다움 vs 추함


유울모는 반자연 속에 살면서 생명을 그리워했으며 추한 모습에 감춰진 자연스러움에 사랑을 느낀다. 김진우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어쩌면 이 한 줄에 다 응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사사로이 아름다웠고 때때로 추하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가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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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보면서 입을 떡 벌렸던 적이 얼마 만이던가. 이 극은 나에게 SF 뮤지컬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장르라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계속 겪어야 하겠지만, 그 선두주자로서 훌륭히 제 역할을 해냈다.


예전 어린이용 SF 드라마 중에 <지구용사 벡터맨>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 보면 매우 촌스럽지만, 그 시절에는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드라마였다. 주 시청자층의 관심을 끈 것만으로도 SF 드라마의 선두주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다. 뮤지컬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역시 같은 맥락으로 뮤지컬 장르의 새 길을 열었으리라 확신한다. 차가운 무대 디자인, 현란한 조명, 다채로운 배우들의 하모니가 어우러져 미래도시 밀양림을 120% 표현해냈다. 자칫 지루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들을 경쾌한 음악으로 풀어냈다.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거창한 무대를 꾸며도 관객들은 그 허술함을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그러한 관객들의 피드백이 나아가 뮤지컬에 있어서 SF 장르의 기틀을 풍성하게 마련해 줄 것이다. 곧, 영화처럼 자유자재로 소재를 넘나드는 뮤지컬 계를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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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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