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의 모습에 오답이 있을까 [기타]

네이버 웹툰 ‘좋아하는 부분’을 읽고
글 입력 2019.04.0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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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 작가의 ‘좋아하는 부분’은 2017년부터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이다. 이 작품은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넘어, 외모 지상주의와 무의식적인 편견이 가득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높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좋아하는 부분이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생각해봤다.



외모가 전부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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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웹툰의 주인공인 ‘우주’는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평가받는 여자다. 이에 단지 외모만으로,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그녀 또한 키 크고 잘생긴 남자만을 집착한다. 그래서 돈을 주는 대가로 잘생긴 남자와 동거를 했으며, ‘한별’이 고백했을 때도 잘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런 고민 없이 거절해버린다. 외모에 대한 평가로 자존감이 낮아진 우주 또한, 결국 외모가 ‘전부’라는 편견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우주의 태도에 한별은 상처를 받고, 실망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나 자신은 과연 아무런 편견이 없는 사람인지 생각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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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필자가 사는 세상은, 외모로 많은 것을 판단하는 듯하다. 한때 ‘같은 패션, 다른 외모’,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말하며 못생긴 사람과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비교하는 개그들이 넘쳐났다. 그뿐만 아니라 살찌고 못생겼다고 불리는 여자가 예쁜 척을 하면 남자들이 질색하는 콘셉트의 콩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주변엔 이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유머로 치부하고 웃으면 그만이었다.

이처럼 모두가 웃으면 그만인 상황과 말들이, ‘우주’라는 캐릭터의 자아를 만들어낸 듯하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나의 못생김을 말하는 세상에서 무뎌지기 위해선, 자존감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자존감이 잘생긴 사람만을 동경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슬픈 건 우리 모두 우주라는 캐릭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외모의 기준이 너무도 당연하게 정해져 있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주관적인 기준만으로 내 삶을 평가받고, 상대를 평가한다. 나 자신 혹은 친구, 가족 등이 우주의 모티브는 아니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우주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 결국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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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에서 묘사하는 세상은 말도 안 되게 개념 없었다. 살이 찐 한별과 우주가 함께 다녔을 땐 ‘끼리끼리 논다’는 비웃음이, 살이 빠져서 날렵해진 한별과 우주가 함께 다녔을 땐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라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난무했다. 우주는 어떤 이에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남자를 꼬드기는 여자로, 또 어떤 이에겐 분수를 모르는 여자로 그려졌다. 그런데, 이처럼 개념 없는 세상 또한 현실이다.

얼마 전 한 연예인 커플의 결별 소식이 세간에 알려졌다. 이를 두고 안타까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여자보다 남자의 키가 작아서 어울리지 않았다’는 등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또한 한 여자 아나운서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는 결혼 상대의 외모를 평가하며, 단순히 재력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누리꾼들이 많았다. 아무도 그들이 어떻게 만나서, 어떤 사랑을 했는지에 대해선 관심 두지 않았다. 그저 판단하기에 바빴다.

이처럼 누군가가 가진 조건을 두고, 그 사람의 사랑을 함부로 재단해버리는 편견들. 이는 우리 사회에 당연하게 퍼져 있었다.


“예쁘고 날씬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용인되면서,
왜 살찐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변태로 취급받아야 해?”


주인공인 한별은 살찐 여자를 좋아한다.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위와 같이 반문한다. 그리고 체형, 키, 돈의 유무, 학벌 등, 이러한 것들이 사랑의 정답과 오답으로 분류되는 것을 비판한다. 한 사람이 가진 성격 중 어느 한 가지를 오답으로 정하면 그 사람의 사랑, 삶 자체도 오답이 되는 순간들. 이처럼 오답이 난무한 세상을, 좋아하는 부분에서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그 날카로움을 그냥 무시해선 안 된다. 우리 모두 어느 순간 오답을 정하는 이가 될 수도, 오답이 되는 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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