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로라를 찾아 떠난 여행, 핀란드 Saariselkä [여행]

마이너에 대한 고찰 05
글 입력 2019.04.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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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1월 말, 이름을 읽을 줄도 몰랐던 핀란드의 Saariselkä로 떠났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이곳을 가게 된 건 ‘오로라를 보겠다.’는 목표 하나였다. 조금 서두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결론부터 말해보자. 나는 일주일이 넘는 이 여행에서 결국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수십 가지가 떠오르지만, 그냥 그 시점에 내가 오로라를 볼 운명이 아니었거니 생각할 뿐이다.

그럼 이 여행에서 내가 얻은 건 대체 무엇일까? 오로라를 보겠다는 하나의 목표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그 하나의 목표조차 이루지 못했으니 과연 이건 ‘실패한’ 여행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다. 이런 진부하고 클리셰적인 말을 하게 되다니 정말 유감이지만, 결과는 어떻든 내가 겪은 모든 과정은 나에게 무언가를 남겨주었다. 나는 이 여행의 과정에서 친구를 얻었고, 다시 보기 어려울 풍경들을 눈에 담았으며, 한 번도 디뎌보지 못한 북극 땅을 밟았다.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일정이라고 생각했다. 5일 정도를 Saariselkä에 머무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밤새 배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장장 2~3일 정도를 탈 것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스웨덴 집까지 돌아오는 것도 마찬가지. 정리해보면, 오로라를 보기 위한 5일을 확보하기 위해 나는 오고 가는 데만 5일 정도를 쓴 셈이다. 가성비가 최고로 중요한 요즘 시대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지만, 또 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따뜻한 서울에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가 소중하고 그립다. 시간이 지나고 미화가 되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여행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동시에 내 기억 속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행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01. 질리도록 먹었던 맥도날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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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맥도날드.
왼쪽에 빨간색의 음식이 고구마 튀김이다.


우선 우리는 여행의 반 이상을 고속도로나 바다 위에서 보냈다. 스웨덴 남부에서 핀란드 북부까지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멀었고, 비행기 대신 버스와 배를 타고 갔으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고속도로에는 한국처럼 엄청난 규모의 휴게소가 없다. 웬 공터에 맥도날드와 버거킹, 그리고 맥시(스웨덴의 햄버거 브랜드)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하루에 몇 끼를 고속도로 위에서 때워야 했으니 배는 고프고, 선택지는 ‘어떤 브랜드의 햄버거를 먹을 것인가?’ 정도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한국인인 나에겐 꽤 괴로운 시간이었다.

한두 번의 햄버거는 즐겁게 먹을 수 있지만, 그다음은 지겹다. 그래서 되는 대로 메뉴에 변화를 주면서 다른 햄버거, 혹은 다른 사이드메뉴를 먹곤 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웨덴 맥도날드에만 있다는 고구마튀김. 감자튀김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사이드 메뉴였는데 질리고 물리는 햄버거들 사이에서 유일한 희망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버텼을까 싶지만, 아마도 고구마튀김이 큰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땐 질리도록 먹어서 평생 더는 안 먹어도 되겠다 싶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니 바로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모두 지친 표정으로 햄버거를 씹어 삼키고 있는 진풍경.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눈이 마주치면 서로 알 수 없는 연민과 공감을 느꼈던 그때.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한배를 타고 고행길을 걷고 있다는 묘한 동료애가 생기기 시작한 게, 아마 n번째 맥도날드를 갔을 때였던 것 같다.



02. 헬싱키로 향하는 배 위에서 봤던 달, 그리고 일출의 기억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향할 땐 배로 이동했다. Viking Line이라는 꽤 크고 유명한 배였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당연히 예산이 많지 않은 우리는 배의 가장 아래 칸, 꼴등 칸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비좁은 내부가 네 사람의 침대를 모두 펴면 방 안에서 활동하기도 어려운 정도여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레스토랑이나 로비에서 보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함께 한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술도 한잔하는 사이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밖은 밤이 되어 완전한 깜깜한 세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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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달 사진, 희미해서 아쉬운,
그래서 그때의 기억이 더 소중한 사진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우리 배 말고는 어디에서도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물이 철썩이는 소리, 그리고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까만 밤이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훨씬 선명한 달빛이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사람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달을 보고 있으니 거기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봤던 달이 얼마나 강하고, 단단하게 느껴졌는지, 그 아래에 있는 내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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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밤을 보내고 나니 다시 해가 찾아왔다. 지난밤의 새하얀 달이 떴을 때보다 훨씬 다채로운 색깔들이 어우러진 그 풍경은 또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붉은색, 주황색, 푸르스름한 색이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하늘과 그 사이를 줄지어 가로지르는 구름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비추는 바다의 색. 기억 속 그 순간의 모습이, 그리고 다채로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홀린 듯 바라보고 셔터를 누르다가, 일출을 보면서 아침을 먹었다. 이땐 오로라를 보지 못할 거라는 걸 몰랐지만, 가는 과정에 충분히 아름다운 자연의 한 면을 봤던 것 같다.



03. 겨울왕국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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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시작점을 지나 버스로 우리가 머무를 숙소까지 들어가는 길에 앙상하고 키가 큰 나무들이 줄지어있고 사방이 온통 흰색인 광경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몰랐던 곳에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따뜻한 버스 안과 내 눈에 담기는 차가운 기운이 상반되어서였을까, 내가 진짜로 이곳에 왔다기보다는 TV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드디어 Saariselkä에 도착했다. ‘북극’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 탓에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추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조금은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 내려서 숙소까지 짐을 들고 가는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저릿저릿 아파왔고, 가리지 않은 얼굴과 귀는 순식간에 빨개지고 얼얼해졌다. 푹푹 들어가는 눈밭을 조금 걸어가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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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아늑했던 숙소에는 벽난로와 핀란드식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었고 무엇보다 5명의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라 더 좋았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밤새 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으며, 놀다 지쳐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어나면 온통 하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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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었던 눈사람.
눈이 아주 많아서 3층이나 쌓아올릴 수 있었다.


우리 숙소가 있던 곳은 드문드문 다른 숙박객들의 숙소도 함께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머무르는 몇 안 되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밤이 되면 휴대용 미러볼을 들고 나가서 노래를 크게 틀고 아무렇게나 춤을 추고, 눈 위를 뒹굴고 놀았다. 그러다 우리가 노는 소리를 듣고 옆집 친구들이 나와서 함께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며 즐겼다.

내가 한국의 어디에서, 아니 내가 살아가는 공간의 어디에서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눈과 내 친구들과 나무들밖에 없는 공간이라서 우리는 더 자유로웠고, 더 행복했다. 출발하기 전, 그리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까지 ‘북극’이라는 겨울 왕국은 우리에게 커다란 겁을 먹게 했지만, 막상 그곳에서의 우리는 하나도 춥지 않았다.



04. 기다림, 또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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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Saariselkä에 가서 특별히 ‘한 것’이 있나? 생각해보면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집 앞에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거나, 딱 한 번 크로스컨트리와 산행을 갔던 것이 다였으니까. Saariselkä에서 지내는 5일 동안 대부분 시간은 숙소에서 지냈고, 그곳에서 요리를 해 먹거나 핀란드식 사우나를 즐기거나, 집 안의 벽난로에 불을 지피거나, 밤새 친구들과 떠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별거 아닌 것들을 하면서 우리가 기다린 건 ‘오로라’였다.

다들 그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왔으면 아주 작고 희미한 흔적 같은 오로라라도 보고 가야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로라를 관측할 가능성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도 깔고, 종종 집 밖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 날. 첫날부터 하늘이 뿌옇기 시작하더니 결국 마지막 날에는 완전히 구름으로 뒤덮여서 하늘도 땅도 하얀 세상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날이라 아쉽고, 정말로 오로라를 보지 못하는 건가? 서운했으며, 조금은 허무하기도 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오랫동안 달려왔고 기다렸으며 또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정말로 볼 수 없는 건가.

여기까지인 이 여행의 과정을 들으면 허탈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못 봤다는 거니까. 그러나 막상 오로라를 못 보고 Saariselkä를 떠나는 날, 아쉬움보다는 ‘그래도 잘 놀았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또 이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말고 언젠가 오로라를 보러 다시 이 겨울 왕국에 찾아오라는 의미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

결국 나의 오로라 없는 오로라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래도 나는 이 여행에서 오로라를 제외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함께한 고생과 행복, 돈 주고 사지 못할 경이로운 자연의 순간들, 다시는 갖지 못할 기억, 마지막으로 아직 보지 못한 오로라에 대한 기대. 여행과 여행이 아닌 것들, 그 모든 것들을 하는 것에 있어 실패라는 결과는 있을지 몰라도 실패한 과정은 없다. 살아가는 긴 순간들 속에서 수많은 실패를 맛보지만, 그 속에서 또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마련이니까.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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