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본 영화 레이디버드 [영화]

글 입력 2019.04.0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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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고픈 이야기가 정말 많은 영화인데, 그래도 다시 꺼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하나밖에 없다.

이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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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엄마에게


"엄마도 그때,
그 길을 달릴 때,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어?

엄마도 그렇게
이 지겹고 당연한 풍경에
왠지 모를 아름다움에
감상에 젖었었어?

이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우리 그때 사이 별로였잖아."



라고 묻는 장면. 동시에 이 영화의 엔딩 장면.

그냥 예전에 맡았던 향기를 맡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처럼 문득 이 장면이 떠올라서 이 영화를 다시 본 것뿐이다. 그런데 처음 봤을 때의 감동보다 더 큰 감상에 젖는다. 결말을 알고 나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여서, 그들의 존재감이 더 다가오는 느낌. 모든 장면과 모든 인물들이 생명력을 얻은 기분이었다. 내 시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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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속에서 딸의 질문에 대한 엄마의 직접적인 대답은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 모두는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이미 엄마는 너무도 당연하고 지겨운 퇴근길 다리 위를 운전하며 혼자만의 감상에 젖었었다.


고즈넉한 다리

주황색 빛을 띠는 정면 위 햇살

빛을 내는 강가

서로 다른 색의 간판

무뚝뚝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수많은 자동차들의 뒷모습

내 차



그렇게 아련한 선율의 음악이 흘러나왔었다. 차문을 닫고 내리자마자 그 음악은 마무리도 없이 끝이 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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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리뷰를 보다가 2% 부족한 느낌이라는 평을 보았다. 지루하다 잔잔하다 그냥 조용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부럽다. 어떻게 이 영화를 그렇게 담담하게 볼 수 있지. 나는 두 번을 보면서도 똑같은 장면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데.

그냥 또 다시 생각해보자면, 노을 진 다리 위를 운전하며 느꼈던 두 사람의 감정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냥 공감이 가서, 나도 그럴 때가 있었던 것 같아서, 다시 꺼내본 것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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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동안 우울증 약을 먹고 있던 아버지와, 그럼에도 항상 푸근한 웃음을 짓던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일에 지원을 하고 회사의 면접 자리에서 아들을 마주치면서도 당신의 서류를 내려놓은 채 아들의 넥타이를 매만져주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과.

일터 내내 다친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직장 동료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주며 집으로 돌아온 후, 크리스틴, 이거 치워. 나 다시 출근해야 해. 요리 하지마. 징징거리지 마. 아빠 실업자됐어. 그 말을 아빠한테 듣고 싶어? 라는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야만 하는 어머니와.

딸에게 솔직한 마음을 드러낼 수 없어 늦은 밤 홀로 식탁에 앉아 쓰던 말을 지우고 또 지우고 계속해서 종이를 구기던 어머니의 모습과, 틀린 문법, 틀린 단어를 딸에게 들켜 놀림 당할까봐 끝내 마음을 전하지 못하던 그런 어머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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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모습이 보여서, 크리스틴의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처음 봤을 때의 느낌보다 더 큰 감정을 느낀다. 딸의 홀로서기와 어른이 되는 과정의 이야기 그뿐이 아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성장 이야기.
그런데 그들의 성장의 크기가 눈에 띄도록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서, 처음 봤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요즘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어른도 어른 나름이라고. 나이만 먹는다고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 드라마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왔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래.
우리 딸이 좀 너그럽게 봐줘.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아."



이제는 그 말을 꺼낸 아버지의 용기와 솔직함이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무게의 크기보다 더 근사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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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언제나 널 사랑하는 걸 알잖아."

"아니, 사랑 말고, 좋아햐냐고 물었어."

"난 언제나 네가 최선의 모습이기를 바라."

"이게 지금 나의 최선이라면?"



그 말을 끝으로 딸은 문을 닫고 탈의실로 들어갔는데.

닫힌 문 밖에서 문틈 사이로 계속해서, 우물쭈물 할 말을 찾는 엄마의 모습과, 작업복도 벗지 못한 채 딸의 기분을 맞춰주려 쇼핑에 나섰던 엄마의 그 피곤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 했던 그 표정이, 딸의 서운한 표정한보다 왠지 더, 조금 더, 슬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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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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