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사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순이 삼촌 [도서]

우리가 4월에 제주도를 떠올려야 하는 이유
글 입력 2019.04.0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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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19년도 4월을 맞이하였다.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물러가고 따뜻한 햇볕이 찾아오는 때가 되었다. 길을 걸으면 꽃 피울 준비를 시작한 나무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내 고향 제주도는 이미 벚꽃이 만개했다. 꽃을 배경으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가족과 지인들의 사진을 보며 제주도의 따듯한 봄이 벌써 찾아왔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매년 돌아오는 4월 3일, 그날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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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순이 삼촌>, 창비

 


소설은 주인공 ‘나’가 8년 만에 고향 제주도에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비행기 타면 50분 만에 올 수 있는 곳임에도 결코 좁힐 수 없는 마음의 거리로 인해 8년 동안 찾지 않았던 곳, 제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제주도를 찾은 주인공은 두 달 전까지 1년 동안 자신의 서울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해주었던 순이 삼촌(제주도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 부르는 풍습이 있다)을 찾지만, 며칠 전에 시체로 발견됐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듣게 된다. 순이 삼촌에 대한 생각에 잠긴 ‘나’는 어쩌면 삼촌의 죽음은 삼십 년 전에 이미 이뤄진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창작과 비평』 1978년 가을호에 수록된 현기영 작가의 단편소설 <순이 삼촌>은 4.3 사건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 ‘순이 삼촌’이라는 인물을 통해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나타낸 작품이다. 여기서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도에서의 5.10 총선거 반대 시위가 시발점이 되어 일어난 이 대규모 학살은 무려 6년 동안이나 이어졌고 이로 인해 대략 3만 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옴팡밭에서 일어난 무차별한 사격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순이 삼촌은 곧 4.3 사건이 남긴 상처를 상징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가족의 죽음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삼촌의 삶은 전쟁보다 더 참혹해졌다. 정권이 바뀌어도, 군인들이 철수해도 그때 제주도에 있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순이 삼촌이 바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삼촌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특히 심각한 신경 쇠약 증세가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수군거린다는 착각에 시달렸던,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지낼 수 없었던, 결국 가족들이 죽었던 옴팡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삼촌. 순이 삼촌의 기구한 인생은 곧 나에게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소설은 4.3 사건이 일어난 1947년에서 30년 지난 1978년에 발표되었다. 그래서 소설에는 ‘삼십년’이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무려 2019년이다. 30년이 흘렀다는 78년으로부터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제주도에서 97년에 태어나 자란 나에게 4.3은 더 이상 우리 고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역사 교과서 속 몇 줄에 불과할 뿐이었다. 누군가는 4.3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쎄, 조캐, 지나간 걸 개지구 자꾸 들춰내서 멀하간? 전쟁이란 다 기런 거이 아니가서?”

순간 오십 줄 나이의 고모부 얼굴에서 삼십년 전의 새파란 서북 청년의 모습을 힐끗 엿본 느낌이 들었다.


p.72



4.3은 지나간 일이다. 더 이상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하던 군인들은 이제 제주도에 없다. 하지만 기자단 활동을 하던 고등학교 시절, 한 노인으로부터 들은 ‘빨갱이들이 제주도에 남아 있어선 안 된다.’는 말은 내게 4.3의 흔적이 아직도 제주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30년 동안 각자의 어두운 가슴속에서만 갇힌 채 한 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 봐 두려웠다.


p.78~79



그때, 수많은 제주도민의 목숨을 앗아간 건 다름 아닌 국가였다.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가 겨눈 총구 앞에서 쓰레기처럼 짓밟혀버렸다. 우리가 4.3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때 그 일에 대해 국가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가족들이 나누던 대화주제가 농사얘기로 바뀐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4.3을 잊어버렸다. 이젠 그 일을 직접 겪은 사람들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제주도에는 삶의 시계가 그날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남아 있을 수많은 순이 삼촌들에게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기억하려는 노력과 진심 어린 사과일 것이다.


 

제주동백꽃.jpg

동백꽃은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소리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하여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이다.



그 시절 빨간 섬이라고 불렸던 제주도는 지금 봄을 맞이해 형형색색한 꽃들로 가득하다. 그날 비참하게 사라져간 원혼들의 마음속에도 꽃이 필 날이 오기를 바란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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