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쉿! 우리만의 비밀이야 [도서]

필리파 피어스의 『학교에 간 사자』를 읽고
글 입력 2019.04.0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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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파 피어스 『학교에 간 사자』를 읽고 난 뒤에 나는 어딘가에 잠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내가 다녀온 곳은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고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공간에서 동물 친구들과 함께 뛰어노는 환상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 안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며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했다.


이 책은 조금 비현실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비현실적이면 어떤가? 현실적인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문학은 유일하게 상상의 나래를 가득 펼쳐볼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인데! 필리파 피어스 작품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상상 가득한 공간에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내용에 잘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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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학교에 간 사자』는 불순하고 의도적인 주인공의 감정을 행동으로 옮겨 독자의 마음을 통쾌하게 해준다. 대표적인 작품이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이다. 거절당한 팀의 화난 마음을 ‘무지무지 잘 드는 가위’로 해소한 것이 매우 신선했다.


팀이 가위로 양탄자, 의자 다리, 소파, 어항을 ‘싹둑싹둑’ 자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속 시원했다. 물건을 자르는 장면에서 “싹둑싹둑”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장면이 더욱더 매력 있고 생생하게 살아났다.

 

결말은 그렇게 일을 벌여놓은 게 끝이 아니다. ‘깨진 물건을 감쪽같이 붙여주는 접착제’를 사용해 물건들을 다시 원상태로 복구시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엄마 아빠에게 비밀로 한다. 필리파 피어스의 작품들은 주로 이렇게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주인공이 경험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말하거나 알리지 않는다. ‘비밀’로 간직한다. 그래서 마치 주인공과 나(독자) 사이에 비밀이 생긴듯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효과로 내용의 흡입력이 강해지고 주인공에게 쉽게 빠져든다. 「여름휴가 때 생긴 일」, 「안녕! 폴리」, 「비밀」 등의 작품이 그러하다.

   


양탄자가 산산조각 날 때까지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로 싹둑싹둑, 싹둑싹둑!


-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 中





어릴 적 나를 떠올리는 이야기



작가는 아이들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도망」에서 짐이 프랫 아줌마 몰래 도망을 치고 복잡한 시장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장면은 아이의 불안하고 두려운 심리가 생생하게 잘 표현되어있다. 어린 시절, 서울의 큰 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내 기억이 떠올랐다. 슬픔보다 두려움이 커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손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훅 떠오르면서 짐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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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때 생긴 일」에서 앤디가 생쥐를 가엾어하고 쥐덫을 숨기는 감정도 섬세하게 표현되었고 「깜깜한 밤에」에서 해우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장면도 그렇다(누구나 한 번쯤 밤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은 인기척에,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에 귀신이 내는 소리가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왔나? 하는 으스스 한 생각을 하여 머리가 쭈뼛 서고 내내 식은땀을 흘리다 잠이 든 어릴 때의 내 기억처럼). 이렇게 장면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인상깊었다.

   



작은 세상에서 큰 것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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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의 공포와 고립, 강렬한 감정에 접근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어린이 책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필리파 피어스 (해외저자사전, 2014. 5., 교보문고)


 

필리파 피어스의 문장이나 표현은 간결하고 단순하다. 내용도 복잡하지 않다. 또한 주인공도 마음이 편안해지면 단잠에 빠지고 불안하면 으앙 하고 울어버린다. 느끼는 감정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품들이 하나같이 아주 생생하고, 복잡한 표현 없이도 주인공의 정서가 잘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으로 솔직하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처럼 자기감정에 솔직해지고 즐거운 상상으로 가득한 자유로운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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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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