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미안해와 괜찮아 [영화]

글 입력 2019.04.0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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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적인 부부가 있다. 일본의 단편영화 '미안해와 괜찮아' 속 신혼부부 '료'와 '아사'가 그 주인공이다.


켄타로.jpg
남편 '료(사카구치 켄타로)'와
아내 '아사(오오시마 유코)'
     

#01
아내 아사는 직장인 남편 료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식사를 마친 남편 료는 출근 준비를 하고, 아사는, 설거지를 한다. 양복 재킷을 입으며 남편 료가 말한다. "설거지 미안해. 밤에는 내가 할게." 그러자 아내 아사가 말한다. "괜찮아. 잘 다녀와"

#1.5
아내 아사는 생각한다. 남편 료는 참 상냥한 사람이라고.

#02
남편 료가 출근한 후, 아내 아사도 나갈 채비를 한다. 준비를 마친 뒤 집을 나서려는데, 문 앞에 쓰레기봉투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분명 남편 료가 버리기로 약속했던 그 쓰레기봉투였다.

#03
아내 아사는 료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만 뿌리면 이제 완성이다. 그때 남편 료의 문자가 도착한다. '오늘 일이 있어서 늦게 갈 것 같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사의 문자가 료에게 도착한다. '알았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조심히 와.'

#3.5
아내 아사는 생각한다. 언제부터 자신이 료의 사과를 받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그러나 이내 생각을 내려놓고 홀로 오므라이스를 먹는다.

#04
남편 료는 늦은 시각 집에 도착한다. 자신을 기다리느라 깨어있는 아내 아사를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어. 다음에는 제대로 연락할게. 미안해." 아내 아사는 말한다. "괜찮아. 일이 있었던 거잖아." 그러자 료는 말한다. "이 시간까지 깨어있고... 피곤하지 않아?"
"응. 괜찮아." 아사가 말한다.

#4.5
료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리고는 멈칫한다. 그러나 이내, 이유 모를 멈칫거림을 그만둔다.

#05
다음 날 아침, 넥타이를 매며 남편 료가 말한다. "어제 쓰레기봉투랑 설거지 미안해. 오늘이야말로 설거지 내가 할게."
아사는 말한다. "괜찮아. 잘 다녀와."

#06
오늘 밤도 남편 료는 늦는다. 그리고 아내 아사는,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는 것이 오히려 료를 걱정시키는 일일까 괜스레 신경이 쓰여 먼저 자기로 한다.

#6.5
그러나 쉽게 잠에 들지 못하던 밤, 남편 료가 도착한다. 료가 자느냐고 묻지만 아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1. 미안하지 않아

아내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한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내 아사에게 향하는 그의 모든 말과 표정, 그리고 생각은 '미안해'로 가득 찼다.

'언제'부터였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왜'인지는 더 모르겠다. 왜 아내 아사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않는지 말이다.  결혼하기 전에도 몰랐지만, 결혼한 후에도 모르겠다. 어떻게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지. '결혼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결혼을 해도' 모르니까 답답할 뿐이다.
 
언제까지고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안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말은 '괜찮다' 뿐이니, 언젠가는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언젠가'도 아니다. '이미'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모든 말과 표정, 그리고 생각에 가득 찬 '미안해'가 행동에는 없는 것을 보면, 알 것 같다. 이미 미안하지 않지만 미안하다고 하고 있는 것을.


 
2. 괜찮지 않아

남편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한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료에게 이렇게나 미안한 사람이 되었는지 말이다.
 
결혼하기 전에도 몰랐지만, 결혼한 후에도 모르겠다. 어떻게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지. '결혼했으니까'라는 말이 더 이상 많은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다. 덩그러니 남겨진 쓰레기봉투를 본 순간 그의 상냥함을 잊어버린다. 그의 늦은 귀가 소식은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에게 '괜찮다'라고 말한다. 이미 그가 알 수도 있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만약 그가 모른다면, 알아줬으면 좋겠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3. END

#07
"나 조금 취했으니까, 오늘만 말할게. 왜 항상 괜찮다고만 하는 거야? 항상 웃고, 불평 없고. 이게 내 그릇이 작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아, 나는 역시 아사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구나' 해서 점점 자신이 없어져."

"진짜는 말이야, 그런 말을 하는 아내가 되기 싫었어. 남편이 집에서 편하게 쉬게 해주는 그런 아내가 되고 싶었어. 난 소중한 사람 격려해주는 것도 못해. 료에게 나는 이상적인 아내일까, 자신이 없어져,"

"내가 아사에게 '괜찮아'라고 말하게 한 거네.."
"응, 나는 료에게 '미안해'라고 말하게 한 거고.."

"솔직하게 말해줘. 지금 내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을."
"나는, 료와 같이 나이 들고 싶어. "

"우리 그것 때문에, 결혼했잖아?"



4. 미안해와 괜찮아.

두 단어 모두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아주 조그만 것에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솔직한 마음과는 다르게 '괜찮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배려와 존중에서 나온 이 상냥한 단어는, 때때로 사람을 아주 못나게 만든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아주 가식적인 사람으로 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 속 내가 꼽은 명대사가 있다.


결혼하는 사람에게 충고.jpg
끝엔 우리모두다 비슷하다는 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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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사람과 결혼하세요." 

나는 그저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 말을 믿어버렸다. '상냥한 사람'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 '미안해와 괜찮아'는 '상냥한 사람'에 대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기서 말하는 상냥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도 그 정의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도리어 정확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하나는 미안하다는 말이 언제나 '괜찮아'라는 말을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안하다는 말에 언제나 '괜찮아'라고 대답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미안해'와 '괜찮아'는 삶을 찰나로 만든다. '미안해'와 '괜찮아'만이 오가는 대화에는 사랑도, 활기도, 재미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쌓여 지루한 일상이 되고, 지루한 일상은 끝내 추억 없는 삶이 되어버린다. 죽는 순간 나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볼 때, 나의 삶을 공들여 추억할 거리 없는 찰나의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미안하지 않아'도 괜찮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미안하지 않고 괜찮지 않은 오늘 덕분에, 내일이 더욱 기대되기 때문이다.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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