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촛농이 흐른 곳(2) [도서]

<창작과 비평 182호>를 읽고
글 입력 2019.04.05 11: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candles-2628473_1920.jpg


「비평이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양경언은 비평 담론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사회 전반'으로 확장한다. 그러므로 김현의 『지혜의 혀』를 가장 먼저 언급하면서 "'혁명의 낭만화'를 문제화"하는 그녀의 시도는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글의 결을 신선하게 한다. 『지혜의 혀』는 지어진 시기나 내용을 보아도 촛불집회를 연상하게 만드는 뉘앙스가 다분하다.

시는 단순히 '시'로 남아있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쓰는 구어체로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면서 시가 그저 문학으로 남지 않고, 현실로 나오도록 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으면서 시는 그저 낭만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양경언은 이 논의를 문학으로 확장한다. 그에 따르면, 문학작품이 "'별 볼 일 없으리라' 여겼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 때, 비평은 그러한 문제들이 "'지금으로 충분한지' 거듭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수행한다.


*


물론 이전에 비해 문학비평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추락한 것은 사실이다. 표절 시비를 비롯한 문단 내 성폭력 문제 속에서 이러한 현상은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문단이 비평을 위해 노력한 전방위적 움직임으로 문단에서 벌어지는 페미니즘 운동을 양경언은 우선으로 보여준다.

페미니즘과 연관된 논쟁은 랑 시에르의 '현실-되기의 정치' 이론에 기반으로 한다. 그에 따르면, 시간이 지나며 예술이 삶과 맹목적으로 분리될 때, 문학은 사회 참여적인 기능을 상실한다. 그러면서 문학의 사회 참여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삶의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문학이 현실 사회를 조명하면서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점들은 부각된다. 『82년생 김지영』을 시작으로 사회 전반에 붉어진 페미니즘 논쟁은 대표적인 예시로 볼 수 있다.

이때, 문학이 사회를 담는 방식은 단순히 문제 현상을 제기한다고 생각하기에는 곤란하다. 양경언은 문학이 "폭력과 차별의 현실을 "고발"의 차원에서 담는 "사회적 담론의 형식"과는 다르게 "'살아 있는' 존재의 삶 속에서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차별점이 있다고 본다. 문학은 언론 보도가 아니다. 그렇기에 사회 현상을 고발하면서도, 미디어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쓴다.

앞서 언급한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예시로 살펴보자. 섬세한 표현과 내용으로 담긴 주인공 '김지영'이 여성으로 겪은 삶 자체는 허구다. 하지만, 책을 읽고 그 안의 문제를 환기하면서 김지영의 삶은 독자 각각이 느끼는 여성의 문제로 확장된다. 김지영이라는 개인의 상황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김지영은 더 이상 책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


문학은 독자와 작품이 함께 연결되어 공감하는 '정동'이라는 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른 부차적인 가치를 배제하고 '문학-독자'만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 "'커먼즈'로서 문학의 위상"을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최근 문단에 많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학이 자본과 권력에 굴하지 않아야 한다면, 어떠한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양경언은 어려운 논의를 최진석의 평론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렵게 읽히기는 하다. 그에 따르면, 최근 들어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글을 사유하는 방식은 많아졌다. 최진석은 "비평가의 전통적 위상"은 떨어졌다고 보며, 비평은 "작가와 독자를 연결"시키는 역할에 초점을 두어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양경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평으로 작가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독자가 어떠한 소설과 내용에 흥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평가'로 구분되어 있는 이들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한다.

그는 비평가가 문학 비평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전에 "'비평가'는 다른 무엇도 아닌 '독자'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누구나 글을 자유롭게 읽고 비평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문학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면, '누가' 말하는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논조다.



[크기변환]chinese-17422_1920.jpg
 


문학비평은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을 나누는 현장이므로 중요하다. 그래서 가벼운 엔터테인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에 활력을 찾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필요성을 양경언은 바라본다. 문학비평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부조리를 타파하는 데 있다. 촛불이 켜진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비평은 결국 "문학을 어떻게 기억할지를 끊임없이 겨루는 논쟁의 장"으로 기억된다. 촛불이 바라본 방향은 촛농으로 굳어져 흔적을 남긴다. 그 방향은 지금도 어디로 나아갈지 꾸준히 논의되며 정해지고 있다. 비평은 앞서 말했듯, 사설이나 기사와는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 비평만이 할 수 있는 역할로 사회 문제를 고심하면 새로운 문학비평의 위상을 재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원종환.jpg
 

[원종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