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다시 쓸 때까지] 02. 내 미래의 고양이에게

글 입력 2019.04.0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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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다시 쓸 때까지]

02. 내 미래의 고양이에게

글. 김해서



안녕, 아직 오지 않은 고양이야. 너의 이름은 아마도, '비누' 아니면 '생강'. 그것도 아니면 '마요' 혹은 '네즈'이겠지. 너는 그저 너겠지만, 나는 너를 내 멋대로 콧소리 내며 부르겠지.

나는 아직 한 번도 다른 무언가를 키워본 적이 없단다. 강아지는커녕 금붕어도 거북이도 키워본 적이 없지. 참, 동생이 유치원에서 가져온 누에 두 마리가 있었네. 걔네들이 유년 시절의 유일한 동물 친구였어. 한 마리는 고치 속에서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나방이 됐길래 밤하늘에 날려 보냈어. 사실 내가 그 녀석들을 위해 한 일이라곤 배춧잎 몇 장을 넣어주는 것밖에는 없지. 이후로 나는 오직 나만 키웠단다. 아직 한참은 더 자라야 할 것 같은데 인간 나이 스물다섯이면 본격적인 노화가 진행된다지? 자기 전에 바르는 수분크림이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을, 그저 기분 탓이라고 할 수가 없게 되었어.

어릴 때조차 혼자 노는 게 마음이 편해, 인형극이나 소꿉놀이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는 지금도 내 역할이 뭔지 몰라서 매일 아침 작게 한숨을 쉬며 눈을 떠. 이제 더는 비밀은 아닌데, 사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단다. 그러니 네가 필요해. 매일 조금은 실패한 기분으로 기상하는 내 옆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어. 뭘 해달라는 건 아니란다. 창문으로 새로운 날의 빛이 쏟아지면, 고양이인 네가 고양이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인간은 눈을 번쩍 떠서 노동을 하러 나가는 거지. 캣타워나 쥐돌이 인형, 맛있는 간식을 구할 수 있는 멋진 사냥꾼이 되고 싶어. 매일 눈을 떠서 이 도시를 헤맬 수 있다는 것에 충분히 감사하면서 말이야.

물론 과거의 나였다면, 나와 다른 생김새와 심장을 가진 존재랑 한 지붕 아래서 살 생각을 절대 못 했을 거야. 내가 아직 한참은 더 자라야 할 것 같다고 그랬지? 사실 때로는 이미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 들 때도 있어. 너무 어리거나 너무 노숙한 나머지, 시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내 삶에서 태어날 생명은 없다고 믿었거든. 그런데 고양이라니! 흰색인지, 노란색인지, 검은색인지, 삼색인지도 모를 내 고양이야. 상상하기도 어려운 너를 위해 수많은 이름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웃고 있어. 말도 안 되는 이름을 갖다 붙이며 혼자 키득대고 있어.

벌써 너무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돼. 널 처음 안게 되는 날, 널 떠나보내는 것처럼 울어버리면 어떡하지? 품에 오면 거스를 수 없잖아. 갈대처럼 살랑이는 꼬리 너머로 너의 나머지 거대한 삶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텐데 별수 있겠어? 냉큼 안아 들어야 하는 거겠지. 넌 어디서 올까. 길에서 자란 아이일지, 친구네 고양이가 낳은 아이일지... 눈을 감고 마치 네 등을 쓰다듬듯 허공을 둥글게 어루만지다 보면 이 우주 어딘가에서 널 닮은 그림자가 내게 '미애옹' 응답해주는 것만 같아. 두근대. 책상 앞에서 단어를 골몰하다 뜬금없이 탄생해 버리는 시를 만날 때와 비슷한 경이로움이야.

고양이야, 우리 미래에 꼭 만나자. 같이 건강하자. 늘 우다다 사랑하며 뒹굴자. 매일 신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잠도 푹 자자.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인간이 되어 있을게. 그때 만나!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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