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히피 로드] 아르헨티나 –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이 추던 춤, 탱고의 기원을 찾아서 2

글 입력 2019.04.0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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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이 추던 춤, 탱고의 기원을 찾아서 2



글 - 여행작가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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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추던 춤이 아니라 남남이 추던 춤. 이것이 탱고의 기원이야. 그 후 인구가 점점 더 많이 유입되고 서민 거주지가 부두에서 내륙으로 퍼지면서 탱고의 중심은 산텔모로 옮겨갔어. 가난한 예술가, 음악가, 춤꾼, 창녀들이 어울려 살던 거리. 29번 버스를 타면 산텔모(San Telmo)를 지나 보카(Boca)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산텔모, 보카, 29번 버스, 어디서 본 버스 번호더라? 순간 내 생의 저편으로 가라앉았던 영화 <해피투게더 Happy Together>가 떠올랐다.


홍콩출신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함께 아르헨티나로 왔다가 싸우고 헤어진다. 아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내 산텔모 지역의 탱고바에서 웨이터로 일한다. 그는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29번 버스를 탔다. 29번 종점 보카에 낡은 아파트가 있었다. 어느 날 보영이 탱고바에 나타나고 재회한 두 사람은 낡은 아파트에서 서로를 할퀴고, 바라보고, 질투하다가 다시 헤어진다. 아휘는 이과수 폭포를 보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왜 홍콩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영화를 찍었지?” 20년 전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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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가 만든 영화는 단순히 이성애에서 동성애로 변주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었다. <해피투게더>는 탱고의 기원·대표곡·정서를 스토리·배경·캐릭터에 모두 담은 작품. 탱고의, 탱고에 의한, 탱고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아르헨티나 탱고의 역사를 알면 <해피 투게더>가 왜 남녀가 아닌 남남의 사랑 얘기를 그리는지, 왜 이 영화의 촬영지가 ‘산텔모’와 ‘보카’인지, 왜 머나먼 이국에서 일하는 사내들을 그리는지, 그 모든 세세한 장면들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20년이 지나고서야 난 왕가위의 칸 영화제 수상을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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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탱고는 그 후 남성 이민자의 뒤를 이어 도착한 창녀들과 추는 춤으로 인식되면서 퇴폐문화로 낙인찍혔다. 본토에서 탱고는 침체기에 빠졌다. 그 사이 유럽으로 건너간 탱고는 새로운 문화를 찾던 프랑스 상류층의 기대에 부응하며 꽃을 피웠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역수입되며 탱고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윽고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이 된다. 탱고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춘 세계인들에게 <해피투게더>는 경이로움을 안겨줬을 것이다.


“탱고에 관한 모든 것을 단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 내다니!”


<해피투게더>의 후반부, 보영(장국영)이 바 수르(Bar Sur)에 갔다가 낯선 사내와 탱고를 추는 장면이 있다. 두 남자는 서로에게 끌려 탱고를 추는 게 아니다. 낯선 사내는 그곳에 없는 사랑을, 보영은 그곳에 없는 아휘(양조위)를 그리며 춤을 춘다. 탱고의 기원!


29번 버스에 올랐다. 어차피 보카가 종점이니 내릴 정류장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선창가라지만 대서양이 아니라 플라타 강과 접한 강변 부두, 버스가 종점에 섰다. 난 카미니토 거리의 페인트칠을 한 양철집 사이를 지나 관광객들과 거리가 먼 식당에 이르렀다. 값 싼 술과 안주를 파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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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볼리비아에서 왔다는 사내와 동석했다.


그와 술을 나눠 마시는데 젖먹이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사내를 찾아왔다. 거친 말투의 사내는 지폐 몇 장을 여자에게 건넸고 여자가 뒤돌아설 때 "여자들이란!"하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의 아내라고 했다. 부부가 볼리비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온 건 6개월 전.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라고 한마디를 하더니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사내가 그만 술을 마시고 아내의 생일을 챙기러 갔으면 싶었지만, 사내는 얘기를 끝내려고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볼리비아에 있다는 이상한 교도소에 대해서만 줄창 떠들어댔다. "분명 감옥이긴 한데 가족들이 들어와 지낼 수도 있고, 일반 마을과 다를 바 없이 가게들도 있어.". 사내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술집 주인에게 계산서를 달라고 요청했다. 사내가 안주는 자신이 계산하겠다며 나섰다. 술값을 치르고 작별인사를 하며 돌아서는데 사내가 등 뒤에서 소리쳤다.


“이봐 친구! 좀 전에 ‘여자들이란!’하고 투덜댔지만, 실은 아내를 사랑해,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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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동안 관광객들로 흥청거렸던 보카의 부둣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음울한 분위기로 바뀌어있었다. 가로등 아래서 건들거리는 녀석들이 나를 항해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돌아보았을 때, 마침 옆을 지나던 현지인이 ‘그냥 지나가’라는 눈치를 줬다.


"얼른 가. 해지면 이곳은 우범지대야. 그 카메라도 얼른 감춰"


정류장에서 15분을 기다리자 29번 버스가 왔다. 종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버스였다. ‘아, 매일 아휘는 종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버스를 탔던 거구나!’ 문득, 조금 전에 만났던 볼리비아인 부부에게도 이곳이 종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절망한 사람들에겐 종점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위 글은

<남미 히피 로드>

(2019년 4월 15일 발간)의 일부입니다.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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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2년간 '장기 체류 후 이동 Long stay & Run'하는 기술을 연마한 후, 한국과 다른 대륙을 2년 주기로 오가며 '장기 체류 후 이동'하는 여행기술을 평생 수련하고 있는 여행가.


EBS세계 테마기행 여행작가. <길 위의 칸타빌레>,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길 위에서 책을 만나다>,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남아메리카를 떠돌며 전직 방랑자였거나 현직 방랑자인 자매, 형제들과 어울려 보낸 800일간의 기억. 방랑의 대륙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가 건져 올린, 사금파리 같은 이야기를 당신 앞에 내려놓는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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