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 [문화전반]

소심이의 발악과 고통에서 얻은 교훈
글 입력 2019.04.0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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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前 룸메이트는 나와 2살 차 형이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에 비해 그 형은 제법 너스레를 떠는 성격이었다. 초면인 나에게 자신의 숨은 과거 이야기를 펼쳐놓고는 끝에 와서 자신이 이상하지 않는지 반문했다. 처음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하는 사람이구나, 조용한 나와 잘 어울리겠거니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해본 그는 오히려 자신의 못된 치부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무례했다. 함께 생활하는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그는 끊임없이 통화를 해댔다. 그것도 시끄러운 스피커폰으로 지속되는 통화에 내 신경은 온통 그와 그 여자 친구의 목소리에 집중됐다. 더욱 큰 고통이었던 것은 그가 그토록 실컷 통화하고선 사과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통화 끝에는 매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너스레를 떨며 사과를 반복했다. 난 그것을 용인할 만큼 착하지 않았지만 웃는 얼굴로 사과하는 그에게 쉽사리 화를 낼 수 없었다.

 

참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나는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에게 밖에서 통화는 것까지 바라진 않지만 조용히 통화할 수 없느냐고 물어봤고 이번에 그는 이전과는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사과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의 소강상태를 거치더니 여전히 그는 전보다는 ‘덜 시끄러운’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갔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 방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방을 옮기는 것에 대한 부담과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할 용기, 여타 다른 압박감이 전해져서 쉽사리 방을 옮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가장 최선의 방법이자, 극단적인 방법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 그는 결정타를 뻥하고 날렸다. 내가 잠시 세탁실에 다녀온 동안 그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듣고 있었고, 나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2시간이 넘게 노래가 지속됐다. 또다시 그는 사과를 무기로 앞세워 나에게 동의를 구했고, 난 단념했다. 그는 달라질 수 없는 인간이다.

 

끝내 나는 방을 옮겼다. 그가 외박한다고 미리 이야길 한 날, 나는 이때다 싶어 방을 옮겨버렸다. 떠날수록 더 정중해지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깨끗이 청소를 했고 난 작은 쪽지를 하나 남기고 그 방을 떠났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니, 이 선택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과연 나의 대처가 최선이었을까, 무례한 사람에게 난 적절히 대처한 것인가, 말로써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을까, 만약 이런 사람이 내 직장 상사였다면, 또 이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올바른 행동강령은 무엇일까' 같은 꼬리를 무는 질문에 나는 답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학교 도서관을 향했고 심리학책들이 가득한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두 책을 골랐다.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가타다 다마미 작가의 「나는 왜 저 인간에게 휘둘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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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가나출판사

 


나는 20대를 거치면서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을 참기만 하면 스스로 무기력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 자신으로 살고 싶었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방해하는 외부 소음에는 여유롭게 음 소거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해서 몸을 가꾸듯, 자기표현의 근육을 키우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고, 그 결과로 나는 매일 밤 누군가 준 상처를 곱씹고 자책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p.11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정문정 작가는 기성세대들의 수많은 무례함을 온몸으로 겪어왔다. 타인의 무례함에 우물쭈물 거리던 사회 초년생 시기를 지나 이제는 어느덧 웃으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온 그녀는 과거의 그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무례함 대처 요령’을 선사한다. 그 요령은 ‘인지’ ‘반문’ ‘대응’ 순서를 거친다. 먼저 내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인지’시키고 그 발언을 도리어 ‘반문’하여 객관화한다. 마지막으로 웃으며, 혹은 보다 진지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정문정 작가의 대처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용기’로 생각된다. 충분한 인지의 과정을 거치고 그것을 밖으로 내뱉는 ‘발화’점이 어떤 관계서든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어쨌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들은 궁예처럼 관심법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심한 이들에게 이 발화까지의 여정은 매우 험난하다. 그들도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세상의 소심이들은 발화 뒤의 다가올 어색한 상황들과 그 말을 꺼내는 것까지가 고통이다. 도리어 그것보다 자신이 참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일단 참고 본다. 그리고 끝내 말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보단 그냥 회피하는 성향이 더 크다. 건강하지 못한 습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습관과 성향은 끝내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정문정 작가는 직관적인 에피소드들을 파트별로 나누어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결국 그것을 관통하는 강조하는 것들이 서로 존재한다. 특히 그녀는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돼’라는 파트에서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인용하며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 ‘이 상황이 정말 그런 상황인 거야?’와 같이 질문을 던지는 작은 행동이 나중에 큰 결과로 나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 심리학에서도 이러한 자아 성찰을 내성법(introspection)이라고 말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신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와 기능을 스스로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트라우마의 근원을 찾아 나간다. 보통 이런 내성법에 능한 사람들은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방법으로 나아간다. 그에 반대는 보통 자기 절망의 늪으로 빠진다.


우리는 내성법을 스스로 체화 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이 방법이 정문정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이다. 불편함이 발생하는 상황에 감정적이고 때론 냉철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보다 ‘나’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괜찮아?’라는 위로는 어쩌면 남이 아닌 자신에게 더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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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다 다마미 「나는 왜 저 인간에게 휘둘릴까?」 샘엔파커스 출판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휘두르는 사람과 휘둘리기 쉬운 사람의 상관관계 사이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먼저 자신이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해로운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도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가타다 다마미 「나는 왜 저 인간에게 휘둘릴까?」 p.169


가타다 다마미의 책 「나는 왜 저 인간에게 휘둘릴까?」에서는 더 세세한 사례들이 열거된다. 특히 작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살아오면서 더 세밀한 임상 경험들을 소개한다. 보통의 인간관계에 관한 책들이 피해자인 휘둘리는 사람의 입장을 위주로 쓰였다면 이 책은 사람을 멋대로 휘두르는 무례한 사람들의 심리적 원인과 그 특징을 말해준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무례함을 선사하는 사람들의 ‘권위’와 ‘힘’의 논리를 지적한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목표를 찾는다. 그리고 휘둘리기 쉬운 사람을 서서히 잠식해나간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심리학에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집 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해 놓고 “집이 왜 이렇게 어둡지?”하는 아내의 말에 “당신이 예민한 거야.” 하며 질타하고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하는 남편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용어는 가해자들의 심리적 잠식을 대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자신이 감정 학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자각했을 때 거리를 둘 것 강조한다. 보다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고 상대방보다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결론은 둘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적절하게 대처하라.’ 이 청량한 솔루션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직접 행하기는 참 어렵다. 솔루션 책을 읽는다고 해도 막상 나를 휘두르는 사람 앞에선 입 한번 뻥끗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도 어떡하는가, 이미 답은 있는데 행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용기에 달린 문제다.

 

이번 발 빠른 나의 룸메이트 탈출기에서는 비록 ‘쓴소리하기’ 퀘스트는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점을 시사했다. 나는 사람을 교화시킬 도덕 선생님이 아니며 그는 내 감정을 소비하고 노동할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모든 사람을 신경 쓰기엔 내 감정이 너무 아깝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참지 않고 바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깨달은 것까지 이번 경험에서 얻은 성찰이다.

 

마지막으로 정문정 작가의 말을 빌려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엔 단호하게



[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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